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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KAI 사장 연임' 꾀하는 어떤 이들…낙하산 · 내부 승진 외 제3의 길?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의 새 수장 자리에 이번에도 항공우주산업 문외한인 낙하산을 내려보낼 것인지, 항공우주산업 전문가를 임명할 것인지 논란이 벌어지는 와중에 지난주부터 안현호 현 사장의 연임이 추진된다는 깜짝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안 사장이 연임을 시도한다는 이야기는 KAI 내부뿐 아니라 방사청과 방산업계, 그리고 대주주인 수출입은행에서도 확인됩니다.

연임으로 가는 구체적 로드맵도 나오고 있습니다. KAI의 자체 인사위원회에서 안현호 사장을 차기 사장 후보로 옹립해 이사회에 추천한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인 안현호 사장이 정권 교체에 아랑곳 않고 자리 보전을 꾀하는 다소 이상한 상황입니다. 전 정부가 느지막이 임명한 공공기관장들이 자리를 안 비켜줘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3년 임기를 거의 채운 전 정부의 낙하산 사장이 연임을 바란다니 당장 대주주 수출입은행과 여당 국방위 쪽의 공기가 싸늘해졌습니다.

조립과 도색이 끝나 조립동 밖으로 옮기진 KF-21 시제기

KAI는 다음 달부터 한국형 전투기 KF-21 비행시험에 돌입합니다. 앞으로 4년간 무려 2천200회 이상 KF-21 시제기를 띄워 무수하게 쏟아지는 결함을 적기에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KF-21의 성패와 KAI의 미래가 판가름 나는 절체절명의 시간에 접어들었습니다. 동시에 사장 임기 만료에 따른 "8번째 낙하산이냐", "전문가 내부 승진 또는 외부 전문가냐" 결정의 갈림길에서 돌연 낙하산 연임론이 고개를 들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5대 하성용 사장이 정권 교체에도 버티다 검찰의 대대적 수사를 불러 KAI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던 5년 전 여름이 떠오릅니다.
 

안현호 사장의 연임 추진

안현호 KAI 7대 사장

안현호 사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산업자원부와 지식경제부에서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산업자원부 1차관을 거쳐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초대 일자리수석에 내정됐습니다. 검증 단계에서 낙마했습니다. 낙마의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부름을 받아 2019년 9월 KAI 7대 사장에 뽑혔습니다. 남은 임기는 석 달입니다. 전 경남지사 김경수 계파로 분류됩니다. 구(舊)여권 인사들과 두루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대주주(지분율 26%)인 KAI의 사장 자리는 이른바 정권의 전리품에 속합니다. 지금까지 7명 사장 모두 낙하산이었습니다. 8대 사장도 낙하산이 유력했지만 KAI 발전과 KF-21의 성공을 위해 이제는 항공기 개발과 해외 마케팅에 정통한 내부 인사의 승진 또는 외부 전문가의 기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방산업계, 국방부, 공군, 방사청에서도 내부 승진 또는 외부 전문가의 사장 선임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KAI 일각에서 안현호 사장 유임이 추진되는 것입니다. KAI 핵심 관계자는 "노사가 구성한 인사위원회에서 사장 후보를 선정해 이사회에 추천하는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소개했습니다. 인사위는 단수 후보라면 안현호 사장을, 복수 후보라면 안 사장과 그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김형준 부사장을 추천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의힘 국방 관련 당직자는 "지금 시끄러운 전 정부 임명 공공기관장들은 임기라도 많이 남았지만 KAI 사장은 임기도 끝났다", "수출 목표를 부풀려 환심을 사서 연임하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고 꼬집었습니다.
 

수출입은행 "말도 안 된다!"

대주주인 수출입은행도 KAI 안현호 사장의 연임 추진과 인사위 구성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수출입은행 고위 관계자는 "안 사장이 연임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인사위에 대해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는 "규정에도 없는 행위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사장 추천은 대주주의 권리"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수출입은행의 다른 관계자는 "KAI가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많은 기회가 동시에 펼쳐진 지금이 진짜 위기이다", "바르게 경영하지 못하면 기회를 놓쳐 나락에 빠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동부 유럽의 전투기 수요가 새로 생기고 미국의 훈련기 시장이 커질 테니, KAI가 정신 바짝 차리면 만년 세계 60위권 이하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회 앞에서 삐끗하면 기사회생도 어렵습니다.

그만큼 KAI의 차기 사장은 중요한 자리입니다. 항공기 개발과 마케팅, 해외 시장 개척으로 단련된 '진짜 선수'에게 맡겨야 합니다. 새 정부 낙하산의 선임, 전 정부 낙하산의 연임 둘 다 위험합니다. 방위산업에 정통한 새 정부 안팎의 인사들 사이에서 "23년 낙하산 악습에 찌들어 KAI의 조직 문화는 정치판처럼 변질됐다", "KAI에 공정의 DNA를 이식하면 직원들의 사기, KF-21의 성공 가능성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희망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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