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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플레이션에 저격당한 자산시장, 암울한 과거 반복하나?

약세장에 공식 진입한 미국 S&P500지수

탐욕에서 공포로, 금리 인상 직격탄 맞은 자산시장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에 대처하기 위해 유례없이 많은 돈을 풀었던 미국 연방준비은행(FRB)이 긴축에 나서면서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던 주식과 부동산, 가상화폐 등 자산시장이 '탐욕' 모드에서 '공포' 모드로 급격히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S&P500지수는 지난 13일 연초 대비 20% 이상 하락하면서 미국 금융시장은 공식적인 약세장에 진입했고, 한때 3조 달러가 넘었던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의 시가총액은 1조 달러대가 무너졌다. 미국의 부동산시장도 신규 주택 수요가 급감하면서 역사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14일 미국의 30년 만기 모기지대출 금리는 연 6.28%로 치솟았다. 지난 1월 초 3.29%보다 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1주일 전만 해도 5.55%였던 모기지대출 금리는 무서울 정도로 오르면서 주택 경기를 급격히 얼어붙게 하고 있다. 주택 경기 침체에 미국의 부동산회사 컴파스(Compass)는 10%, 레드핀(Redfin)은 8%를 감원하겠다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신고했다.

지난 5년 동안의 비트코인 가격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면서 비트코인에 올인했던 나스닥 상장 소프트웨어회사 마이크로스트래티지(MicroStrategy)는 담보 부족 사태에 몰렸다. 한때 6만 달러를 넘었던 비트코인 가격은 14일 한때 2만 843달러까지 하락했고, 비트코인에 39억 7천만 달러를 투자했던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1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회장 겸 CEO 마이클 세일러(Michael Saylor)는 비트코인을 담보로 코인전문은행 실버게이트(Silvergate)로부터 2억 500만 달러를 빌려 코인 매입에 나섰고, 비트코인을 담보로 제공했다. 코인 매입 단가는 3만 700달러로 코인 가격이 2만 1천 달러 아래로 하락하면 담보 부족이 발생해 추가로 증거금을 내야 하는 상황,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주가는 연초 대비 75%나 하락했다.

미국 CNBC 방송에 따르면 지난 1920년 이후 약세장에서 평균 주가는 최고치 대비 38%가 하락했고, 18개월 동안 지속됐다. 지난 1937년부터 1946년 사이 대공황으로 발생한 최악의 약세장은 62개월 동안 계속됐고, 주가는 86%가 하락했다. 최근의 약세장은 코로나19 대확산이 있었던 지난 2020년 상반기, 미국 주택시장이 붕괴하면서 나타난 2007-2009년, 기술주 붕괴로 나타난 2000-2002에 있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

돌연 위기 모드 전환, 금융시장에 무슨 일이?

지난 2020년 초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2차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경기 침체가 닥치자 미국 연준은 연 1.75%였던 기준금리를 0%로 전격 인하하고, 5조 달러에 육박하는 유례없는 규모의 달러를 추가로 방출했다. 코로나 이전 4조 달러였던 미국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현재 9조 달러에 육박한다. 연준의 이런 비상조치는 한때 국제 유가가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주가가 급락하는 등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를 틀어막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을 끌어 올렸다.

지난 25년 동안의 미국 기준금리(파랑)와 다우지수(검정)

올들어 코로나19 규제가 점차 해제되고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이렇게 천문학적인 규모로 실시됐던 금융 완화 정책은 인플레이션으로 부메랑이 되어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급이 부족해진 가운데 수요는 갑자기 살아나면서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와 곡물의 공급까지 차질을 빚으면서 지난 5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8.6%가 올라 오일쇼크 여파가 최고치에 달했던 1981년 이후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개월 전 대비 물가 상승률은 1%를 나타냈다.

뉴욕연방은행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1년 후 기대인플레이션은 6.6%, 3년 후 기대인플레이션은 3.9%로 나타났다.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 2%보다 턱없이 높은 수치다.

뛰는 물가 잡기에 나선 미국 연준은 지난 3월 공개시장조작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 목표치를 0~0.25%에서 0.25~0.5%로 0.25%p를 인상했다. 이어 5월 FOMC 회의에서 0.75%~1.0%로 0.5%p를 인상했다. 금리 인상 외에도 6월과 7월, 8월 매달 475억 달러의 유동성을 흡수하고, 9월 이후에는 매달 950억 달러의 유동성을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뛰는 물가는 좀처럼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4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미국의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8%, 1년 전보다는 10.8%로 최고 수준을 이어갔다. 인플레이션이 더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되면서 15일 FOMC 회의에서는 기준금리를 0.75%p 추가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CNBC는 시장 전문가들이 90% 이상 0.75%p 인상을 점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준이 0.25%p씩 점진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스몰 스텝(small step)이 아니라 0.5%p를 올리는 빅 스텝(big step)에 이어 0.75%p 인상이라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취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시장이 공황 상태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전망, 트레이딩이코노믹스

"미국 기준금리 계속 올라 내년에는 3.5%…인플레와의 전쟁은 계속된다"

원론적으로 금리와 자산 가격은 정반대의 추이를 보이고, 통화량과 자산 가격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금리를 올리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하락하고, 통화량을 늘리면 자산 가격은 오르는 패턴을 보인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이자 비용을 늘려 투자와 수요를 줄임으로써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미국 연준이 지난해 말부터 금리 인상과 양적 완화의 종료 그리고 통화량 축소를 예고했던 만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자산 가격의 하락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금리 인상의 폭과 통화량 축소 규모이다. 연준은 6월 금리 인상에 이어 7월과 9월에 있을 정례 회의에서도 0.5%p씩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이 보는 내년 말 미국의 기준금리는 3.5%에 달한다. 불과 2년 만에 기준금리가 0~0.25%에서 3.5%로 수직 인상되는 것이다.

미국의 기준금리(파랑)와 주택 가격 상승률(검정)

지난 2000년 IT 버블 붕괴에 대처하기 위해 금리를 내렸던 연준은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지난 2004년 6월부터 2006년 6월까지 2년 동안 기준금리를 1%에서 5.25%로 수직 인상했다. 그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주택대출이 일제히 부실화했고, 대부분 금융기관이 부도 위기에 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사상 초유의 금융시장 붕괴 위험에 직면한 연준은 2007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기준금리를 0~0.25%로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무제한으로 금융기관들이 보유한 채권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현금 공급에 나섰다. 유사 이래 1조 달러에 머물렀던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4조 달러로 늘리며 3조 달러를 금융시장에 공급하는 사상 초유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인 양적 완화를 단행한 것이다. 이후 2015년 12월까지 7년 동안 미국의 기준금리는 제로에 머물렀고, 사상 초유의 제로금리는 사상 최장 기간 지속됐다.

미국 연준의 자산 규모(파랑)와 다우지수(검정) 추이

초장기간 초저금리가 지속됐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 2%를 넘나드는 안정된 수준을 보이자 미국 연준이 긴축을 너무 늦게 시작하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경제 통계 사이트 트레이딩이코노믹스(Tradingeconomics)의 조사 결과 앞으로 5년에서 10년 동안의 장기 물가 예상치는 3.3%에 달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70여 년 동안 물가 상승률이 5%를 넘는 상황에서 연준이 경기 침체를 유발하지 않고 기준금리를 인상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보도했다. 1945년 이후 연준이 경기 침체를 유발하지 않고 물가 잡기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물가 통계 기준 변경을 감안한 소비자물가(좌)와 근원물가(우)

현재 미국의 인플레이션 정도가 고물가를 잡기 위해 당시 미국 연준 의장 폴 볼커(Paul Volker)가 기준금리를 19%까지 올리면서 경기 침체를 유발했던 1981년대 상황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전 미국 재무장관 래리서머스(Larry Summers) 등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1983년 변경된 물가 통계 기준을 적용할 경우 1980년 3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3%가 아닌 11.4%이며,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핵심 물가)은 13.6%가 아닌 9.1%라고 밝혔다. 지난 5월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8.6%였음을 감안할 때 현재의 인플레이션 상황은 1970년에서 1980년대 초 석유파동 사태 당시와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기준금리(파랑)와 경제 성장률(검정)

물가가 전방위로 오르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평가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 정치전문사이트 파이브써티에잇(Fivethirtyeight)의 조사에 따르면 취임 500일을 넘긴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는 부정 53.6%, 긍정 39.7%로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보다 13.9%p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압도하면서 그 차이가 1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한 번 오른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 기대인플레이션을 잡기는 쉽지 않다. 임금처럼 1년 이상의 장기 계약이 많은 가격의 경우 시장 상황에 따라 쉽게 조절하기도 힘들다. 통화정책이 총수요를 줄여 물가 안정으로 나타나는 데는 최대 2년이 걸린다는 분석도 있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기관으로서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통한 물가 잡기는 더욱 어렵다.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물가 억제 조치가 그만큼 과격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미국 신규 모기지 신청 지수

주택시장도 흔들, "기본으로 돌아갈 때"

지난 10일 미국 포춘지(Fortune)는 미국의 주택시장이 2006년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위축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크 잔디(Mark Zandi) 무디스 애널리틱스(Moody's Analytics)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이 변화는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주택시장의 교정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고 있다. 20.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연간 주택 가격 상승률이 앞으로 1년 동안은 0%에 머물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ortgage Banker's Association)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주간 주택 모기지 신청 규모는 2021년 같은 기간보다 20.5%가 감소했고, 지난해 최고치보다는 40%가 줄었다. 미국 모기지 프레디 맥(Freddi Mac)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렌 키퍼(Len Kiefer)는 "이 모기치 신청 규모의 감소는 2006년 이후 가장 의미심장한 움직임이다. 지난해 미국의 신규 주택담보대출 모기지 원리금 상환액은 35%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 민간 부분의 임금 상승률은 4.8%에 머물렀다. 이것은 미국의 주택 가격 상승에 따른 모기지 대출 규모의 증가와 금리 상승에 따른 것으로 매월 670달러가 증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마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는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작년 12월 3.11%였던 미국의 30년 만기 모기지 대출금리는 14일 6.28%까지 상승했다. 이런 대출금리 상승은 미국 연준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최근 모기지 대출 신청의 감소는 주택 버블 붕괴의 신호탄이 됐던 2006년의 모습과 유사하다. 최근 모기지 대출 감소는 부실 대출이 많았던 2008년 상황과는 다르지만 일부 가격이 크게 오른 지역에서 주택 가격은 앞으로 1년 동안 5~10%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주택 가격 상승률

최근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하락은 수요를 줄여 가격을 끌어내리려는 중앙은행들의 정책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올린 인플레이션이 언제 잡힐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불황 속에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8일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의 경영 기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재 세대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에 익숙하지 않다며, 코로나19와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다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물가 상승으로 실제 기업의 이익에 착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매출 규모보다는 물가 상승을 감안한 이익과 현금 흐름을 중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용과 재고를 줄이고 생산성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경영기법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조언이다.

미국의 전기자동차회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10%의 감원 계획을 밝혔고, 코로나 시대에서 잘 나가던 미국 IT업체들의 근로자는 5월에만 1만 7천 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속에 규모 확장을 하는 시대에서 긴축의 시대로 전환이 시작됐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내실을 추구하는 원론적인 경영의 기본으로 전략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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