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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동 성착취 처벌 올리자더니…'솜방망이' 처벌은 그대로

[취재파일] 아동 성착취 처벌 올리자더니…'솜방망이' 처벌은 그대로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자를 더 무겁게 처벌하도록 기준이 바뀐 지 1년 5개월째입니다. 지난 2021년 1월 1일부터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안이 시행됐는데, 상습범은 29년 3개월까지도 선고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동안 관련 양형 기준이 없어 선고 형량이 제각각에다 국민 법 감정에 비해 낮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요. 양형 기준 변경 후 1년, 판결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아동청소년 성착취란?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음란물은 그 자체로 성착취 및 성학대를 의미한다며 지난 2020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습니다. 이에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라는 용어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로 변경됐습니다.

SBS는 실제 처벌이 강화되고 있는지 판결문을 통해 확인해봤습니다. '음란물'과 '성착취물'을 키워드로 지난해 1심 판결문을 검색해, 피고인 734명을 추렸습니다. 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판결 등을 제외한 뒤 아동·청소년 상대 성범죄자는 83.2%, 611명이었습니다.

박세원 신정은 취재파일용

피고인 611명 중 징역형은 83.5%(510명)였지만, 이 가운데 실형은 26.7%(147명)에 불과했습니다. 집행유예는 평균 2.1년 수준이었습니다.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로 막상 실형을 살지 않은 경우가 절반 이상인 겁니다.

박세원 신정은 취재파일용

벌금형에 그친 경우는 전체 가해자 중 88명(14.4%)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선고된 벌금은 평균 572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징역형 선고 늘었지만, 실형 선고는 오히려 줄어

박세원 신정은 취재파일용

지난 2020년 판결문과 비교해보면 징역형 선고 비율은 높아졌지만,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 선고는 오히려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20년 나무여성인권상담소가 같은 기준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10명 가해자 중 징역형은 77.8%(397명)였고, 이 가운데 실형은 47.6%(189명)이었습니다. 벌금형에 그친 경우는 전체 가해자 중 123명(24.1%)이었습니다.

지난 2020년과 2021년 판결문 속 사건의 유형이나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1년 새 징역형 선고 비율이 늘었고, 그중 실형 선고는 오히려 줄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n번방 이후 검색해 다운로드…여전히 성착취물 범죄는 성행

양형기준 변경 뒤에도 여전히 뚜렷한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 상황. 판결문 속에서는 n번방 사건 뒤 오히려 관련 내용을 검색해 아동 성착취물을 내려받은 남성도 있었습니다. 이 남성에 대해 재판부는 "배우자와 어린 딸을 부양하고 있다"고 참작해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11살, 12살, 13살 남자아이들에게 몸 사진을 찍게 강요한 뒤 성착취물을 만들고 강제 추행까지 한 남성도 있었습니다. 과거 성범죄에 대한 집행유예 기간에 저지른 범행이었습니다. 강화된 양형 기준에 따르면 성착취물 제작은 기본 징역이 5~9년형, 다수 피해자가 있으면 7년 이상, 상습적이면 징역 10년 6개월 이상인데, 1심 재판부 판단은 '징역 3년형'이었습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18차례 성착취물을 올리고, 3년간 성착취물 40개를 다운로드 받아 소지한 또 다른 남성. 이 남성은 청소년 성 매수 전력까지 있었지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성착취했지만 아동청소년시설 취업제한은 42.7%

박세원 신정은 취재파일용

성착취물 범죄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이뤄지고, 재범 우려도 큽니다. 성착취물 저장과 유포뿐 아니라 추가로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101건에 달했습니다. 아동에게 받아낸 성착취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불러내 강간하는 등 범죄는 악랄했습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인만큼 이들에 대한 아동청소년 교육시설 취업 제한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1심 선고 중 취업 제한 조치(42.7%)가 선고된 건 절반에 못미쳤습니다.

디지털 기기로 이뤄지는 범죄라 범죄에 이용된 휴대전화나 외장하드 등 몰수도 필요하지만 지난해 1심 선고 중 디지털 기기 몰수(49.4%)가 선고된 것 역시 절반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재판부 결정은 지난 2020년 판결과 비교했을 때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재작년 판결에서도 디지털 기기 몰수는 32%, 취업 제한 조치는 35.3%로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성범죄 전력 없으면 양형에 유리…반성해도 감형

성범죄 전력이 없거나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면 감형되는 건 여전했습니다. 전체 피고인 중 12%는 성범죄 전력이 없다는 게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됐습니다.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걸 감형 이유로 든 판결은 90%에 달했습니다.

박세원 신정은 취재파일용

양형 사유엔 황당한 이유도 다수 적혀있었습니다. 피고인이 클릭 한 번에 3천 건을 내려받게 된 것이라든지, 영상에 피해 아동 얼굴이 안 나왔다며 형이 줄어든 판결도 있었습니다. 피고인이 교통사고로 골절상을 입었다거나, 사회초년생이라거나, 자식이 있다는 등 감형 사유도 다양했습니다.

피고인들이 감형 받은 이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판결문 속 아동청소년 성착취는 잔인했고,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 부모들의 절규까지 느껴졌습니다.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연락하게 된 10세 여아에게 성착취물을 요구해 22개의 사진과 영상을 받아낸 한 남성. 이 남성에 대한 판결은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에 그쳤습니다. 판결문에는 남성이 피해자 측에게 용서받지 못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가해자에 대해 엄벌을 요구하는 피해자는 많았습니다.

일상 파괴하는 성착취…실형 47.6% 판결은 적당할까

백미연 경기도 디지털성범죄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장은 아동청소년 성착취에 대해 "오프라인으로 접근해 아동이 성착취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게 만들고, 유포 협박, 실제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생활과 인격을 파괴해나가는 끔찍한 범죄"라고 지적했습니다.

한 아동의 일상을 파괴하는 범죄. 그렇다면 재판부의 이 같은 판결은 적당할까.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여전히 피해자 감정과 피해 정도에 못 미치는 판결이 이뤄지고 있다"며 "성범죄는 재범률이 높아 벌금과 집행유예 정도로 가볍게 처벌하면 또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뀐 양형 기준에 비해 여전히 판결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박세원 신정은 취재파일용

(기획 : 박세원, 신정은 / 분석 :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 / 도움 : 박시언, 유은서, 정휘윤, 최예원 스트립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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