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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도서관》 [북적북적]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도서관》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42 :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나종호 지음, 아몬드 펴냄)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는 일에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해요. 
병원에 오기로 결정하신 것, 그런 용기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에요. 정말 잘하셨어요.”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中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는 일’, 그런데 도움을 청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일, 그래서 그 일을 해낸 사람에게 잘했다고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 오늘 <북적북적 342회>에서 소개하는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의 저자이다.  
 
나는 내 환자들을 위해 글을 쓴다…(중략)… 내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그들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조현병, 조울증, 경계성 성격장애, 알코올 중독 같은 진단명 뒤에 숨은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조금이나마 편견을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중략)… 
‘대중매체는 정신과 환자의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정신과 환자는 정신 질환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 범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음에도, 매우 중증의 치료받지 못한, 그중에서도 소수의 위험한 정신과 환자에 대한 내용만 보도되고 이는 편견을 강화시킨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中 
 
예일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의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은 제목처럼 ‘뉴욕 정신과 의사’가 만난 수많은 ‘사람 책’- 환자들의 이야기다. ‘사람 도서관’은 ‘사람 책’을 빌려주는 곳이다. 종이책이 아니라 ‘사람’이 책인 곳. 이용자는 원하는 ‘사람 책’과 30여분간 대화를 나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소수인종, 에이즈환자, 이민지, 조현병 환자,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 책’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없애고 낙인이 옅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진료실에서 만났던 환자 한 명 한 명이 마치 사람도서관의 책 같았다고. 독자가 갖고 있을 낙인과 편견도 이 ‘사람 책’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라지길 바란다고. 

저자인 나종호 교수가 절대 놓지 않는 말이 있다.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는 말이다. 저자는 ‘누구도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볼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구는 나에게 타인의 경험과 관점,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자경문과 같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렇게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여러 환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신 질환은 특별한 사람만 걸리는 병도 아니고, 편견을 갖고 낙인 찍을 게 아니라고 말이다. 저자 역시 한국에서 ‘명문대 나온 중산층 남자’ 라는 주류였지만 미국에 건너가 ‘유색인종 이민자’라는 소수자가 되었듯, 삶의 어느 단계에서 누구든 약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정신 질환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 실린 ‘애도’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혹, ‘정신질환은 완전히 남의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가족이나 매우 가까운 사람에 대한 ‘애도’의 마음, 깊은 슬픔은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슬픔이 너무 깊어 빠져나오지 못할 경우, 이 역시 치료가 필요한 정신 질환에 해당한다. 진단명은 ‘지속적 애도 장애’. 만약 ‘나는 조현병에 절대 걸릴 일 없지’, ‘알코올 중독은 나약한 인간들에게나 해당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애도’에 대해서까지 ‘나는 아니’라고 자신만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독 정신질환자 대해서는 환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시선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 이야기를 통해 정신질환이 의지가 나약한 특정한 사람들만 걸리는 병이라는 편견을 멈춰 세운다. 그리고 ‘낙인’과 ‘혐오’를 넘어서는 힘, ‘공감’과 ‘이해’를 말한다.  
 
영문으로 동정(sympathy)과 공감(empathy)은 매우 유사해보이지만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큰 차이가 있다. 동정은 그리스어인 ‘sun(‘함께’라는 뜻)’과 ‘pathos(감정)’를 합친 데서 연유한다. 즉 동정은 어떤 사람의 바깥에서 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다. 반면에 공감은 그리스어의 ‘em(‘안’이라는 뜻)과 ‘pathos’를 합친 말에서 왔다. 타인의 감정을 그의 안에 들어가서, 마치 그 사람의 거죽을 입고 느끼듯이 이해하는 것이다. …(중략)… 따라서 동정심은 나와 고통을 느끼는 주체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반면 공감은 고통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中 

‘공감’이란 바로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걷는’ 일인 셈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고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여기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쓰고 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는 특히, 저자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내용인 ‘한국의 자살’에 대한 글을 집중적으로 읽어본다. 우리가 ‘자살’이라는 말을 ‘순화’하는 목적에서 쓰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이제는 ‘자살’과 동의어가 된 이 말이 문제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이 글은, <북적북적>에서 놓치지 말고 들어보시길 권한다.  
 
그토록 힘들었음에도 나는 정신과에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당시 내 안에는 ‘정신과에 가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또 ‘남들 다 힘든데 나만 왜 이리 엄살인가’ 싶어 자책도 했다. 고백하자면, 그때 내 마음에도 정신 건강 치료를 향한 낙인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중략)… 
이제 나는 정신 질환이 뇌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생기는 의학적 질환임을 안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기전이 분명한 원인이 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도 한때는 낙인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신과 의사로 여러 해 수련을 받고 환자를 만나면서야 비로소 내 안의 낙인과 편견을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었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中 

나와 다른 존재를 조금 더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결국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수련해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끝이 없는 과제가 아닐까. 그 과제를 풀어가는 독자들을 ‘사람 도서관’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와 출판사로부터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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