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딸의 선택에 반대한 적이 없었던 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적잖게 당황했다.
"아니, 제가 가는 지역은요, 우크라이나 서부라 비교적 안전한 곳이에요. 별일 없을 거라니까요."
"네가 전쟁을 아니? 예측할 수 없는 게 전쟁이야. 전장에는 적군과 아군이 있지만, 희생에는 적과 아군이 없는 거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는 전선을 함께 누비던 친구 둘을 잃을 줄 몰랐고, 베트콩의 게릴라 전을 제압하기 위해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로 평생을 투병하게 될 줄도 몰랐을 것이다. 다행히 딸은 지난 4월 12일부터 33일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고 무사히 돌아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일이 지났다. 6월 3일이 꼭 100일째다. 양국의 군사력 차이로 금방 끝날 것으로 예상됐던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결사 항전하면서 장기화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었다. 러시아는 동부 지역으로 화력을 집중하면서 돈바스 지역의 요충지 세베로도네츠크의 대부분이 함락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의 무기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반격도 더 거세지고 있다. 전쟁 100일 동안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지만, 여전히 치열한 총성이 울리고 있다.
"안전한 곳에서 취재하면서…" 위험을 취재할 자유는?
변명 같은 사실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8월부터 '여권법'에 따라 취재 기자들에게도 여행금지 제도를 시행했다. 샘물교회 피랍사건 이후 여행 금지 국가의 입국은 예외적으로 허가를 받도록 법이 바뀌면서 국내 언론은 우크라이나 상황을 외신 보도를 통해 접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발발 한 달여가 지나서야 일부 취재진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우크라이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나마 갈 수 있는 지역은 수도 키이우에서 500km넘게 떨어진 서남부 체르니우치주였고, '하루 4명 이내, 방문 기간은 3일 이내' 조건이 붙었다. 한국기자협회보 김고은 기자는 "기자들은 전쟁의 공포가 아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취재한다. 그 과정에서 위험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이를 감수할 자유와 책임이 언론에 있다. 언론의 자유는 안전한 상황에서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지역일수록 정보가 제한되고 통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진실을 대신해서 전할 책무가 언론에 있다"고 보도했다.
"평온해 보인다고요?" 거대한 난민캠프가 된 '체르니우치'
이 작은 도시에 6만 명이 넘는 피란민들이 몰려들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피란캠프다. 전 세계 구호단체와 봉사단체가 이곳에 몰려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체르니우치 주가 운영하는 난민 보호 시설도 이곳에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주변국 자원봉사자들이 마련한 거대한 난민 구호 캠프가 들어섰다. 하루 세 끼 식사, 이발 서비스,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임시 숙소도 마련돼 있다.
전쟁 중에 '일상'을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
눈발 날리던 한겨울 시작된 전쟁은 유채꽃이 필 때까지 이어졌고, 학교는 얇은 옷이 필요한 피란민들이 언제든 가져다 입을 수 있는 창고를 마련했다. 교사들은 매주 생필품이 필요한 지역으로 물건을 보낸다. 또 체르니우치로 피란 온 피란민들에겐 무료 생필품 보급소 역할도 한다. 실내 체육관과 운동장에 있는 축구 골대와 배구장 그물은 아이들과 선생님 손에서 위장막으로 재탄생했다. 우크라이나의 모든 초등학교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대면 수업을 중단했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됐고, 대신 학교는 피란민 쉼터와 군수 물품 보급소, 군사훈련 시설이 됐다.
학교 3층 낡은 실내 체육관에서 경쾌한 음악과 박자를 맞춘 발소리가 들렸다. 우크라이나 국립민속 무용단이 우크라이나 전통음악에 맞춰 신나는 춤사위를 펼치고 있었다. 수도 키이우에서 활동해 왔지만, 전쟁통에 공연장과 연습실이 없어 체르니우치까지 피란해왔다. 화려한 무대 대신 야외 공원에서 무료 공연을 한다. 무용단 책임자 다니엘의 말이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춤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희망'을 주제로 한 공연을 할 겁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요" 지구과학 교사이자 이 학교 교장 선생님인 세르게이는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커피 마시다가…" 미사일 폭격으로 민간인 사망
르비우와 수도 키이우에는 전 세계 취재진들이 모여있는 미디어센터가 있다. 미리 프레스카드를 발급 받아야 현지에서 취재가 가능하다. 폭격 현장, 어린이 병원, 기차역, 시청 앞 광장 등 어디서 취재하든 수차례, 때론 수십 차례 씩 취재증과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미디어센터가 제시한 취재 주의사항을 읽어보니 다시 한번 이곳이 전시 상황임이 실감났다. '군복과 헷갈릴 수 있는 녹색의 옷은 입지 마십시오', '투항에 대비해 흰색 천을 갖고 다니십시오', '안테나가 달린 장비는 갖고 다니지 마십시오. 간첩 혐의로 기소될 수 있습니다', '무기와 비슷하게 생긴 물건을 소지하지 마십시오' '구급약을 항상 휴대하십시오' 등의 내용이다.
전쟁터에서 아들이 돌아왔다…매주 합동 영결식
전사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뉴욕 타임스'는 미국 정보기관 추정치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 전사자가 4월까지 5,500~1만1천 명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일 룩셈부르크 의회 영상 연설에서 러시아 침공 이후 군인과 민간인 등 우크라이나인 1만4천 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지난주 유엔은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사망자가 4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러시아는 올해 3월 군인 1,351명이 숨졌다고 밝힌 이후 희생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소 3만명의 러시아 군인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토의 약 5분의 1이 러시아에 점령됐다" 밝혔다. 또 "점령당한 면적이 12만5000㎢로 이는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을 합친 것보다 큰 면적"이라며 "30만㎢에 달하는 국토가 지뢰와 불발탄으로 오염됐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에 점령된 우크라이나 영토는 한반도 면적(약 22만3000㎢)의 절반에 달한다.
"우리 집이, 마을이, 도시가 사라졌어요…이젠 어디로"
잔혹한 전쟁…"도망치는 여성들 감금해 집단 성폭행"
"피해자들은 대부분 러시아군에 의해 집단 성폭행을 당했어요.
러시아군 점령 지역에서 도망치는 과정에서 발생다고 말합니다."
르비우에 본부를 두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성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 헤리스티나를 만났다. 협회는 지난 4월부터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돕고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러시아군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민간인 여성들이다. 협회는 피해자들의 심리 상담과 치료를 지원하고 법적인 자문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빙산의 일각이에요. 98%는 아직 입 밖으로 그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으니까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1만 5천여 이르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세르히 드보르니크 유엔 주재 우크라이나 대표부 고문은 2일(현지시간) 국제법 위반에 대한 책임과 처벌 관련 유엔 안보리 공개 토론에서 전쟁 100일 동안 1만5000건 이상의 전쟁 범죄가 벌어졌고 지금도 매일 2~300건씩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군 퇴각 후 키이우 지역에서만 1200구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됐다. 80여 일 간 결사항전 했던 동남부 마리우폴의 경우 러시아군이 장악하고 있어 그나마도 피해 상황 집계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 사건도 1,042건 제기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까지 어린이가 최소 261명 사망하고 260명이 부상했으며 145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러시아로 강제 압송된 어린이는 2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잔혹한 전쟁…총상 입고도 이웃 주민 구한 15살 리사
리사가 고향 도네츠크를 탈출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리사는 포격 소리를 듣고 폭탄이 떨어진 곳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남성 2명이 폭탄 파편을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을 목격했다. 병원은 차로 1시간 거리. 전쟁터 한복판에서 운전하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자 리사는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우크라이나에서는 18살부터 운전면허를 딸 수 있지만, 리사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운전을 배워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지뢰와 시체가 깔린 곳을 지나야 했고, 러시아군의 총격으로 리사는 다리에 4발의 총을 맞았다. 다리를 다친 채 32km를 더 달렸고, 다행히 20분 뒤 우크라이나 군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서 리사와 부상자는 목숨을 구했다. 리사는 일부 발가락을 잃고, 무릎 뼈가 부서졌다.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도록 그대로 둘 수는 없었어요. 무엇이든 해야 했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종전이 아닌 승리"
"제 아들이 12살입니다. 이 아이가 6년 뒤 전쟁터에서 무기를 들지 않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는 것이 바람이냐고요? 아뇨. 종전이 된다고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반복될 것입니다. 종전이 아닌 승리를 원합니다. 다시 이 땅에서 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죠."
전쟁이 장기화 하면서 전쟁 종식에 대한 입장도 엇갈린다. 우크라이나가 일부 영토를 내주더라도 전쟁을 멈추는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서방에서 나오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크름반도와 동부 돈바스 일부 지역을 러시아에 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와 주변국들은 영토 침해를 용납할 경우 향후 또 다른 전쟁의 구실을 마련해 줄 뿐이라고 강력히 반발한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크라이나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가 지난 13~18일 우크라이나 국민 2천 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물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 중 82%가 '영토 포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다.
어쩌면 뉴스 너머 먼 곳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석 달 내내 본 식상한 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 차례의 미사일 공격, 사망자와 희생자 수, 오르는 국제 유가와 물가. 누군가에겐 숫자로 헤아려지는 세계사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도 러시아의 폭격 소리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우리가 겪고 있는 전쟁의 참상을 꼭 세상에 알려달라'고 취재진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33일 간의 취재를 마친다.
(구성: 장선이 기자, 콘텐츠디자인: 옥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