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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기자, 통역사, 방송인…'경계인' 안현모

[그사람] 기자, 통역사, 방송인…'경계인' 안현모

1. <어쩌다 기자가 되다>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기자가 될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통번역대학원 졸업을 앞둔 2009년 SBS CNBC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몇 달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어로 경제 정보를 전달하고 영어 뉴스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했고 나중에는 앵커로 뉴스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 해외로도 나가는 채널이었는데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소문이 났다. 방송 잘하고 영어 잘하는 재원으로 알려지면서 SBS 경력 기자에 응모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좀 더 어려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입사지원서를 냈다. 경력 기자로 채용되는 과정에서 SBS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다. 계열사 기자를 본사 기자로 채용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이 기자 출신이 맞느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있었다. 입사 과정에서 다소 논란은 있었지만 100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SBS 기자가 되었다. 누군가는 간절하게 원하는 타이틀인데 자신은 조금 쉽게 기자가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다른 사람이 와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그 때문에 기자가 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게 늘 조심스럽다고 했다.
기자 생활 7년, 특히 SBS에서 보낸 4년여의 시간은 꽤 힘들었던 시절이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훈련을 충분히 받지 않은 상태에서 경력 기자가 되었으니 더 그랬다. 유난히 출신과 성분을 따지는 배타적인 언론사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텨 내기 힘든 조직 문화'였다. 아침에 눈 떠서 제 시간에 출입처에 나가고 밤에는 집에 잘 찾아와서 옷 잘 갈아입고 잠자리에 드는 것 하나하나가 과제였다. 조직과 동료들에게 내가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괴롭기도 했다. 1년 후, 5년 후를 생각하는 것은 사치였다.

"너무 단도직입적인 말이지만 술을 마시는 게 힘들었어요. 지금은 좀 덜하고 코로나 기간 거치면서 많이 바뀌었다지만 그 당시에는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힘든 부분이 있었어요. 취재원들을 만나면 술로 교분을 쌓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저는 술을 마시면 졸리고 했던 말도 잘 기억이 나질 않거든요."

그 시절 이 사람은 위축되어 보였는데 때로는 당신들의 시선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오만함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 시절이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힘들었지만 배운 것이 많은 시절이라고 했다. 기자 시절이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했다.

"뉴스를 하면서 제가 속한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실히 생겼어요. 내 친구들은 다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커리어가 있고 혹은 어느 특정 지역에 살고 이렇게 정의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저와 같은 교육을 받지 못했을 수 있고 사는 지역이 다를 수도 있고 그런 거를 항상 의식하면서 살았어요. 기자 생활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제 시선이 넓어져서 그게 제 삶의 균형추 역할을 해준 거 같아요.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해요"

그사람 안현모

2015년 부장과 부원의 관계로 일 년을 같은 부서에서 일할 때 '당신이 나중에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든 기자로 일했다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이 사람에게 한 적이 있다. 조직에 녹아들기 위해 애쓰는 게 눈에 보이긴 했지만 언론사에 뼈를 묻을 사람은 아니었다. 기자가 아닌 다른 일을 하면 타고난 재능을 더 잘 발휘할 사람이었다. 기자로서 일이 어느 정도 몸에 익어가고 힘든 고비는 넘겼다 싶었을 때 회사를 그만 뒀다. 언론사 안에서 자신이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자기만 먼저 내리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더 도전적이고 어려운 일을 해보고 싶었단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안정된 직장과 기자라는 타이틀을 과감하게 버리고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당장 오라는 곳도,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2. <족쇄를 끊고 날개를 얻다>

안현모

기자를 그만 두고 더 유명해졌고 더 바빠졌고 돈도 더 많이 번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영향력도 더 커진 듯하다. 동시통역사, 방송인으로 맹활약 중이다. 번역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나오고 광고도 찍었다. 그래미상, 아카데미상, 빌보드 시상식 방송 중계에서 영어 실력을 살려 단골 진행자로 활약 중이다. 지난 2018년 북미 정상회담 당시 외신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실 많은 연예 기사나 작가님들이 제가 북미 정상회담을 동시통역했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제가 꼭 정정을 하죠. 북미정상회담을 통역한 분은 현장에 계신 분들이었고 저는 그것이 중계된 것을 통역을 한 거다, 그것도 외신 보도를. 북미 정상회담을 한 것 아니죠. 꼭 정정을 합니다."

방송 동시통역은 실수를 하면 곧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베테랑 동시통역사들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일이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밀폐된 부스 안에서 2인 1조로 짝을 이뤄 교대로 통역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대형 스튜디오 무대 위에서 그 일을 해냈다. 폐쇄된 공간에서 진행하던 방송 동시통역을 무대 위로 끌어낸 사람이니 동시통역을 일종의 무대 예술로 만든 사람이다. 이 사람보다 동시통역을 잘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이 사람만큼 외신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 때 외신이 북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했어요. 그런데 동시통역의 문제가 외신을 1:1로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서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안현모 씨는 기자 출신 답게 맥락을 알고 전달을 하니까 저희로서는 대단히 만족스러웠죠. 이렇게 동시통역을 하는 사람이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시청자 눈길을 잡아 끌기도 했고요." 양만희 2018년 SBS 북미정상회담 방송단장

SBS는 이 사람의 동시통역을 타사와 차별화하는 포인트로 삼고 보도자료까지 만들었다.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이 사람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시청률 곡선이 치솟았고 '안현모'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방송에서 동시통역을 하는 것을 공중 곡예를 하는 것에 비유했다. 한순간만 방심해도 줄에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보통 통역사들은 부스 안에서 소리에 집중해서 일하잖아요. 안현모 씨처럼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몸과 얼굴을 드러내며 일하는 통역사는 거의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런 거 같아요. 그때는 제가 스스로 무덤을 판 거 같아요. 지금 듣기만 해도 너무 힘든 감정이 느껴질 정도인데 내가 그때 왜 이런 일을 하려고 했을까 싶어요. 그런데 제가 의외로 용감해서 도전하는 거를 겁내지 않고 즐겨요. 저는 결혼도 쉽게 했잖아요. 굉장히 위험한 도박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한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용기가 조금 줄어드는 거 같아요. 특히 통역과 관련해서 저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높게 형성되어 있어서 요즘에는 조금 두려워요. 그 프로젝트를 위해서 내가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수 없을 때 괜히 잘못할까 봐 요즘에는 몸을 좀 사려요."

-찾는 곳은 많죠?
"많죠. 그런데 제게 말도 안 되는 무대 예술을 주문할 때도 있어요. 그건 안 된다고 하죠."

몇 시간 통역을 위해 한 달을 준비하기도 하고 충분히 준비할 여건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무대라도 오르지 않는다. 당신이 가장 유명한 통역사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떤 행사에 가면 저를 동시통역사라고 타이틀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바로잡으려고 해요. 그냥 방송인으로 해달라고. 행사 관계자 분들이 국제회의 통역사나 동시통역사가 방송인이라는 말보다 훨씬 근사한 타이틀 아니냐고 하시는데 저는 방송 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방송인이 더 맞는 거 같고 저보다 통역 일을 더 많이 하시는 분들, 부스에서 얼굴도 없이 목소리만으로 늘 현장에서 통역을 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는데 제가 동시통역사다 이렇게 알려지는 게 죄송한 마음이 있어서 방송인이라는 호칭을 선호하죠. 제가 방송에 많이 나왔기 때문에 유명한 거지 동시통역사로서 제가 커리어가 깊고 그런 것은 아니죠."

3. <재능이 아니라 환경이 좋았다?>

언니들과 함께 어릴 적의 안현모 모습

딸만 셋인 유복한 가정에서 막내딸로 태어나 비교적 순탄하게 자랐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는 주말이면 아이스박스에 먹을 것을 가득 채워 지프차에 싣고 가족들과 함께 피크닉을 다녔다. 뭔가 이국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이야기다. 수동식 기어를 막내딸에게 쥐어 주고 그 딸의 손을 잡고 기어를 조작하던 아버지의 손을 기억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공부를 잘하라는 말은 안 했지만 자기 밥벌이는 자기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 영화를 원어로 알아듣고 싶어 같은 영화를 100번씩 보는 막내딸에게 부모님은 초등학교 때부터 원어민 교사를 붙여줬다.

"저는 외국어에 재능 있는 사람도 아니구요.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좋았을 뿐이에요. 누구든지 그 정도 환경이 있었으면 영어는 저 정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외국어에 재능이 있다고 하면 좀 민망해요"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2002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은 집과 학교만 오가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때 만났던 남자친구는 이 사람이 도서관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 그 때문에 MT도 미팅도 못 했고 나이트클럽 한 번 가보지 못 했다고 했다. 교환 학생으로 펜실베니아 대학에 1년 유학을 다녀왔다. 100% 순수 국산 동시통역사는 아닌 셈이다. 대학에 입학한 2002년은 월드컵, 노사모 열풍과 대선,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두 소녀 추모 촛불 시위로 한국 사회가 유난히 뜨거웠던 해였지만 그런 사건들이 이 사람 삶에 큰 영향을 준 거 같지는 않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제 개인의 문제밖에 몰랐던 것 같아요. 제 앞가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더 많이 고민했던 거 같고 사회적인 훨씬 더 큰 대의 같은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런 고민은 기자가 되면서 더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기자가 되니까 그런 문제가 보이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때 반성도 했죠. 왜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았을까."

아나운서나 연예인이 되라는 권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고 미인대회에 나가보라는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미국 유명 디자인 스쿨에 들어가기 위해 1년 동안 학교를 휴학하고 미술학원에 다니기도 했지만 영어 특기를 살려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갔다. '통역사를 하면 어떻게든 밥벌이는 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작은 언니를 비롯해 집안에 동시통역사가 4명이나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것 많이 보고 많이 배우며 살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무엇이 꼭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밥벌이가 급하지 않은 사람의 여유가 느껴졌다.

4. <선망과 질시, 그리고 허상과 실상>

그사람 안현모

학생들을 상대로 가끔 강연을 한다. 그 영상을 보면 학생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 사람에게 온전히 주목한다. 학생들에게 이 사람은 배우고 싶고, 닮고 싶고, 흉내 내고 싶은 셀럽, 인플루언서인 것이다. 댓글 역시 멋있고 닮고 싶다는 말로 도배된다. 연예인이 아니지만 연예인 이상의 지명도를 갖고 있다. 사람들의 콤플렉스를 자극할 만한 요소가 많은 사람이다. 영어가 그러하고 학벌이 그러하고 외모가 그러하고 부가 그러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참 외적인 것을 중시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제가 많이 해요. 어디를 나왔다, 건물이 있다, 외모가 어떻다 같은 거요. 예를 들면 제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게 20년 전이거든요. 제가 20년 전에 이룬 성과에 대해서 두고두고 이렇게 칭찬을 듣는 것이 정말 민망해요… 저는 그것보다는 어제 어떤 내용을 살았느냐, 어제 24시간이 어땠느냐가 그 사람을 칭찬하는 근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건물 안에서 하루하루가 어떻게 채워지는지가 훨씬 중요하고 그런 거 없이도 훨씬 알차게 사는 분들도 많아서 정말 그런 이야기 들으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사람이 영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출연 연예인들이 탄성을 지르는 모습은 우리 사회 영어 콤플렉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방송인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영어의 힘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특별하구나, 영어가 벼슬이 될 수도 있고 영어가 한이 될 수도 있고 영어가 콤플렉스를 유발하는 동기가 될 수도 있고 저는 너무 놀랐어요. 영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고 그래서 너무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어떤 한 가지 조건에 의해서 사람들의 자존감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가진 한두 가지 조건 때문에 그 사람이 가진 인간으로서 존엄성, 자존감, 위엄 이런 게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는 영어를 잘하지만 누구는 요리를 잘할 수 있고 누구는 체력이 자신보다 좋을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아이가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후배들이나 동생들, 젊은 여성들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마음보다는 자기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연예인이나 가수 아이돌을 보면서 정작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말도 했다.

-그런 이야기는 상당히 의외입니다. 지금 남편이 하는 일은 꿈의 공장 같은 일 아닌가요. 사람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사업을 하시는데…
"그러니까요. 이게 예능 출신 남편과 기자 출신 아내가 만났을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남편은 그런 판타지와 로망을 계속 만들어내야 되는 사람인데 아내는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줘서는 안 된다, 배제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니 정말 웃기는 조합인 거죠."

안현모의 남편 라이머와 안현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집을 공개한 적이 있다. 얼핏 보기에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부부가 살기에는 크고 화려한 집이었다. 그런 집에 사는 사람이 각자 자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자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을까.

"그 집은 남편이 저랑 만나기 전에 전세로 계약한 집인데요… 이거는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봐요.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고 경쟁 사회에서 잘한 거를 계속 부각시켜야 하고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해 계속 보여줘야 되고 그런 세상이지만 저는 제 성취에 대해서는 저 스스로 만족하는 걸로 끝나요."

뭘 해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다. 기자를 할 때도, 통역사를 할 때도 그랬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때도 그랬다. 자신이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스타일이라고 했지만 몇 번의 몸짓만으로 유명해져버린 인상을 준다. 이런 이 사람을 선망의 눈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질시의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악플 때문에 상처 입거나 자신이 변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연예 기사에 댓글이 차단되고 실시간 검색어가 없어진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오프라 윈프리 책을 번역했는데 그리 길지 않은 역자 서문이 독특하다면 독특했다. 책이나 저자에 대한 소개, 번역 과정에서 있었던 고충을 담는 게 일반적인 역자 서문일 텐데 이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 서문을 채웠다. 이 사람이 정성을 쏟은 가톨릭 잡지에 쓴 인터뷰 기사도 절반 이상이 본인 이야기다. 이런 모습 때문에 관종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데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에 글쓰기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려는 욕망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다. 대학 시절 극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했고 기자로 일할 때는 검색어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이 이 사람에게는 억압의 시절이었다. 본능 같은 욕구를 억누르며 살았으니 그 시절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었다. 혹시 과시나 자랑이 아닌가 스스로 자신을 경계할 때도 있지만 이제는 일상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로도 자신을 드러내며 산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 사람을 보니 몇 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편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결혼이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남편은 제게 '남들은 당신에게 그렇게 관심 없어. 그러니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요. 저는 과장이나 있는 척을 못 하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연예계에 오래 있던 사람이라 '더 있어 보이게, 더 그럴듯하게 말하라'고 하는데 저는 항상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하니까 '그게 네 점수를 깎아 먹는다고 그러지 말라'고 해요"

5. <같은 지붕 아래 사는 나의 적>


1983년생인 이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도 있습니다만 동시대 여성들이 느끼는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서도 공감합니까.
"그럼요. 딸들만 있는 집안에서 자랐고 제가 여성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니까 여성에 관련된 이슈라면 당연히 관심이 있죠."

-그럼 여성으로서 언제 가장 분노를 느끼세요.
"집안에서 제일 분노해요. 결혼 생활은 많은 분노를 유발하더라고요. 집안에서도 남자랑 사니까 가부장적인 것을 마주할 때 분노를 하죠. 사회적인 거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내가 속한 이 지붕 아래서도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 분노하죠."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변질돼서 그 말보다는 female empowerment, gender empowerment를 추구한다고 했다. 그 말을 이렇게 설명했다.

"단순하게 말하면 내가 가지고 태어난 성별 때문에 내 자율성이나 내 권리가 침범되지 않는 거죠. 남편과 대화할 때나 사회 생활을 할 때 지금 내 결정이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여러가지 카드를 골고루 고려한 판단인가 아니면 내가 가진 성별 때문에 나오는 판단인가를 많이 물어봐요. 이거는 매일매일의 이슈인 거 같아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갖게 됐냐는 질문에 어렸을 때 성장 과정이 영향을 줬다고 했다. 딸만 셋 있는 집안이어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없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분위기였는데 결혼을 해서 새로 꾸린 가정은 또 다른 사회였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결혼 생활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남편은 직원이 70명이 넘는 연예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다. 강남에 7층짜리 사옥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과 인터뷰도 그 건물에서 진행했다.

그사람 안현모

-댓글에 보면 안현모가 한 일 중에 제일 못한 것이 결혼이다라는 내용도 있더군요
"남자 보는 눈이 없다라는 말도 있죠.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30년은 지나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혼해서 얻은 것도 많다고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이에요. 이 결혼이 성공적이었다, 좋은 선택이었다라고 하는 것은 남편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같이 만들어야 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거는 제가 앞으로 해 나가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선종한 고 정진석 추기경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었다.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다.

정진석 추기경이 안현모를 축복하는 모습

"인터뷰를 위해 그분을 만났을 때 제가 예비 신부였거든요. 그 분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주셨는데 제가 하나도 안 지킨 거예요. 그렇게 귀한 이야기를 듣고도 저는 정반대로 산 거예요.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저한테 다시 한번 교훈을 주시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반성의 눈물을 엄청 흘렸어요."

예능에서 남편과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이 행복을 연기하는구나' 싶었다. 사람 사는 일 가운데 연기 아닌 것이 뭐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사람 말을 듣다 보니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연기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6. <나는 예외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가톨릭 비타꼰>이라는 월간 잡지에 '안현모의 행복 이야기'란 제목으로 지난달까지 7년 동안 인터뷰 기사를 써왔다. 지금까지 80명이 넘는 인물을 만났다. 매달 한 편씩 2백 자 원고지 20매 안팎의 글을 썼다. 취재하고 글 쓰는데 거의 1주일의 시간을 쏟아 부었다. 온라인으로 인터뷰 기사 검색이 되지 않아 지금까지 쓴 기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더니 다섯 편의 글을 보내왔다. 글이 단정하고 따뜻했다. 선한 이야기, 착한 이야기, 훈훈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스승이라고 말했다. 올해 94살 된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여사도 그런 스승 가운데 한 명이다. 노라노 여사는 손녀 같은 이 사람에게 혜택받은 사람은 항상 공동체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원로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여사와 함께하는 안현모

"내가 계속 빚진 거 같고, 내가 좀 더 조심해야 될 거 같고, 조금 더 배려해야 될 거 같은 느낌이 어릴 때부터 있었는데 노라노 선생님이 말한 게 이런 거였구나… 저의 삶의 마지막까지 내가 이걸 잃지 말자,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고 그래서 돈에 대한 걱정이 없어지고 그러다 보면 이런 마음이 멀어질 수도 있지만 저는 이런 마음 절대 잃고 싶지 않아요. 이 게 제 삶의 지향점이에요."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공동체에 헌신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이유에 나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포함시키려고 한다. 남편과 함께 기부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꾸준히 봉사도 한다. 얼마나 많이 나누는지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하는지 묻지는 않았다. 액수와 횟수가 이 사람을 아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남편 라이머씨와 자선단체 <바보의나눔><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홍보 대사 활동하는 안현모" data-captionyn="Y" id="i201670004"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20603/201670004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v_height="750" v_width="500">
-언젠가는 그런 지향을 위해 남들과 함께 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겠군요.
"겉으로 보이는 재단을 만들고 운동을 하고 캠페인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먼저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언행이 일치하는 삶. 제가 큰일을 벌일 자신은 없어요. 그런데 저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지지해줄 자신은 있고 또 제 주변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해요."

그렇다면 정치에 대한 관심도 있겠다고 하자 그것은 아니라고 했다. 도와 달라는 정치인은 몇 명 있었지만 표 정치와는 거리를 둔다.

"정치를 할 깜냥도 안되고 그런 것에 관심도 정말 없어요. 그리고 지금은 정치인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아닌 거 같아요. 기업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훨씬 더 훌륭한 변화를 이끄는 분들도 많고 언론이나 대중문화인들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더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정치를 해서 표를 얻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표 정치는 정말 관심 없어요."

조직에 대한 헌신이나 조직의 미래가 나의 미래라는 생각은 거의 없었던 사람이다.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던 사람이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이야기하니 의외였다. 개인주의 가치관이 확산되는 세상에서 공동체 운운하는 것이 낡은 생각일 수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사실 이제 80년대 말, 90년대생은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죠. 그에 비해 제 윗 세대는 굉장히 투철했고요. 저는 그 사이에서 과도기로 넘어가는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회사를 떠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그나마 제가 80년대 초반생이기 때문 아닌가 싶더라구요. 아마 90년대생이라면 미안함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물론 제가 80년대 초반 세대를 대변할 입장은 아니지만요."

-본인이 예외적인 존재라고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어떤 면에서요?"

-이를테면 난 예외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예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고 예외적인 대접을 받는데 익숙하고…뭐 이런 거요.
"그런 건 없는데 운이 좋고 감사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편이 이래요. '남들이 들으면 네가 무슨 재벌 집 딸인 줄 알겠다. 당신보다 훨씬 더 특혜를 받고 자란 사람들도 많고 더 럭키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너처럼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제가 못 가진 것도 많고, 저보다 훨씬 뛰어난 더 축복받은 인물들도 많지만 난 이런 것도 받았고 이런 것도 누렸고 다행히도 이런 것은 피해 갈 수 있었으니까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큰 배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예외적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받은 거에 대해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자는 생각을 해요."

강연을 많이 했겠거니 싶었는데 그렇지 않단다. 제일 두려운 게 강연이라고 했다. 강연은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건데 자신은 아는 게 별로 없어 남을 가르치는 게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강연은 안 해요. 강연 요청이 오면 제가 설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안 하는 경우가 정말 많고요. 특히 기업 강연은 저는 다녀본 적도 없는 회산데 거기서 매일 출근하고 치열한 삶을 사시는 분들한테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나중에 삶의 경험이 더 쌓이고 삶의 스토리가 더 탄탄해지면 강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왜냐면 강연은 가르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의 노하우와 지혜를 나누는 일이니 그럴 수 있는 입장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7. <아직도 진로를 모색 중>

그사람 안현모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살이다. '선배, 저 벌써 마흔이에요, 이제 저도 나이 들었어요' 같은 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말은 없었다.

"마흔 살이면 어떤 유혹도 이겨낼 수 있는 불혹인데 모든 것이 여전히 다 유혹이고…요즘 마흔 살은 옛날 서른 살 같아요. 아직 어리고 아직 출산도 안 했고 그러다 보니 아직 제가 어른이 된 거 같지 않아요. 수명이 길어졌으니까 그렇게 나이 든 거 같지 않아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지 고민 중이라며 이 나이가 되도록 진로를 고민하는 게 때로는 부끄럽단다.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니 화가 또는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들을 수도 있겠다. 이 욕심 많은 사람이 아직까지 자기 이름으로 책을 쓰지 않은 것은 다소 의외다. 책을 내자는 제안은 숱하게 있었다. 영어를 주제로 내자는 출판사도 있었고 당신의 인생을 주제로 내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제안을 뿌리친 것은 한 권을 내도 제대로 된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연기를 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저라는 사람을 돌이켜보니까 약간 경계에 있는 역할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 그래서 지금도 일반인과 연예인의 경계에 있을 수 있고 기자와 통역사의 경계에 있을 수 있고 외국어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한국인과 미국인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고 그게 저한테는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인도 명상센타에서의 동료와 안현모

언론사에 있을 때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방전되는 듯했다. 단 며칠만이라도 온전히 쉬고 싶었다. 그때 인도에 있는 한 명상센터에서 열흘을 보내며 자기 안에 있는 넓은 바다를 발견했다. 자기만의 바다를 발견한 뒤 이후 안과 밖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 '균형'과 '연결'이라는 말이 이 사람이 많이 쓰는 말이다. 세상과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려 하고 그러면서도 늘 자신의 내면과 대화한다. 자신과 대화하면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늘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고 미리 톡으로 알려줬다. 예상치 못한 질문 앞에서 당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옛 동료이자 후배에 대한 배려라면 배려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당황할 사람이 아니었고 어떤 경우에도 징징대지 않을 사람이다. 이렇게 강인하고 당당한 사람이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막에 떨어져도 얼마든지 살아낼 자신이 있다고 했다. 묻는 사람이 은연 중 기대하는 답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던 대목도 있었고 많이 가진 사람이 옳은 말까지 차지하려는 느낌도 있었지만 마음에 없는 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글과 말의 무게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자신이 한 말이 자신과의 약속이자 다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때로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렇게 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이 사람에 대한 다소 새삼스러운 발견은 평등한 대화가 주는 힘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선배와 후배, 지시하는 사람과 지시를 받는 사람, 평가를 하는 사람과 평가를 받는 사람의 관계였더라면 이런 면모를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평등한 사람과의 평등한 대화는 세 시간을 넘겼는데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 인터뷰는 5월 30일 서울 역삼동 브랜뉴뮤직 사무실에서 진행하였다.)

*방송인 안현모와의 인터뷰 풀영상은 오늘(4일) 밤 9시 SBS뉴스 유튜브 채널에서 최초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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