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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5년 만에 재등장한 '자위권'…취임식 훈시로 적합했나

[취재파일] 5년 만에 재등장한 '자위권'…취임식 훈시로 적합했나
▲ 지난 27일 해군 참모총장 이취임식에서 이종섭 국방장관이 경례하고 있다.

지난 27일 계룡대 연병장에서 열린 육·해·공군 신임 참모총장 취임식에서 이종섭 국방장관은 "만일 북한이 직접적인 도발을 자행한다면 자위권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훈시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사령관들 입에서 나온 적 없는 '자위권 차원의 대응'이 5년 만에 공식 언급된 것입니다.

북한 도발에 당당히 맞서는 것은 군의 당연한 책무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자위권은 북한의 도발과 필요충분적 관계가 아닙니다. 자위권은 즉시 현장에서 피해만큼 갚아주는 복구의 개념입니다. 도발 원점뿐 아니라 지원세력, 지휘세력까지 공격하는 조치로 전면전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만큼 자위권 발동은 신중하게 결정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자위권 발언은 북한의 특대형 도발 이후에나 나왔습니다. 자위권 발동의 기준도 '직접적인 도발'처럼 모호하면 곤란합니다.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이 장관의 자위권 훈시에 성급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특대형 도발 뒤 자위권 등장

2010년 12월 4일, 취임 직후 연평도 포격전 현장을 방문한 김관진 국방장관

우리 군은 유엔사가 규정한 전시 및 정전 교전규칙에 따라 북한 도발에 대처합니다. 교전규칙은 대단히 포괄적이어서 합참예규와 작전지침을 따로 작성해 군사적 충돌 시 매뉴얼로 삼습니다. 때에 따라 통수권자가 별도의 수칙을 하달해 군의 행동을 조율하기도 합니다.

자위권은 교전규칙의 제한을 받지 않고 스스로 방어하기 위한 본래적 권한입니다. 자위권이 발동되면 군은 까다로운 교전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율적 군사작전을 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확전 등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꺼내 흔들지 않습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으로 밝혀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5·24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이때 이 대통령은 자위권 발동을 말했습니다. 자위권 발동의 범위는 "북한이 영토, 영공, 영해를 침범하는 도발을 했을 때"로 한정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열흘 후인 2010년 12월 3일 김관진 국방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의 일방적 도발에는 우발 충돌 시 확전 방지 가이드라인인 교전규칙이 아니라 위협의 근원을 완전히 없앨 때까지 응징하는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덧붙여 "적과 아군이 조우했을 경우에는 교전규칙이 작동하고, 적이 일방적으로 포격했을 때는 자위권의 대상"이라고 교전규칙과 자위권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그었습니다.

취임식 훈시로 적합했나

지난 27일 공군 참모총장 이취임식에 참석한 이종섭 국방장관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4월 18일 김장수 안보실장은 국회에서 북한의 국지도발 대비 계획에 대해 "교전규칙에 의해서 하는 게 아니고 자위권 차원에서 도발 원점, 지원 세력, 지휘 세력까지도 표적에 포함시켜서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응징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실장 발언 한 달여 전, 합참도 북한 도발에 원점과 지원 세력, 지휘 세력까지 응징하겠다며 자위권 발동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남북은 일촉즉발이었습니다. 2월 12일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3월 5일 북한군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와 한미연합훈련을 겨냥해 "보다 강력하고 실제적인 2차, 3차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정전협정 백지화를 위협했습니다. 판문점 대표부는 아예 활동을 중지시켰습니다.

지금 남북 관계는 이명박·김관진·김장수의 자위권 시절처럼 삼엄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자위권적 상황을 준비하고, 또 자위권적 상황이 닥치면 어련히 자위권을 발동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앞서 정권 교체 후 남북간 간보기도 안 끝난 평시에 자위권 운운이 어떤 안보적 이익을 가져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위권 발동 카드는 대북 메시지이자, 대국민 메시지입니다. 남북 군사적 상황의 맥락에 맞게 대내적, 대외적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귀한 카드입니다. 참모총장 취임식에서 맥 없이 써버린 것 같아 아쉽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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