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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9년 전 교과서 삽화 논란…왜 이제 와서

중국에서 난데없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삽화를 놓고 논란이 거셉니다.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에는 '#인민교육출판사 수학 교재 삽화 논란', '#5살 아이가 논란의 교재 삽화를 어떻게 보는지', '#교재 삽화 사건에 대한 교육부 대응', '#교육부, 전국 초·중·고교 교재 전면 조사 요구' 등과 같은 다양한 해시태그가 등장했고, 관련 글의 조회 수는 29일 현재 20억 회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웬만한 중국인들은 다 본 셈입니다. 급기야 교육 당국이 사과하기에 이르렀고, 삽화 전면 교체를 발표했습니다. 중국 당국이 고개를 숙이는 일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입니다. 도대체 삽화가 어떻길래 이럴까요.


중국 SNS 웨이보에 올라온 교과서 삽화 관련 해시태그들. 조회 수가 10억 9천만 회, 7억 회에 달한다.

중국 네티즌들, 교과서 삽화 지적…"표정 이상하고 성희롱까지"

발단은 한 네티즌이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실린 삽화 속 어린이들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글을 웨이보에 올린 것이었습니다. 삽화 속 어린이들의 눈 사이가 멀고 하나같이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하는지 알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어린이들이 혀를 내밀고 있는 것도 괴이하다고 문제 삼았습니다.

중국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실린 삽화들

이내 중국 네티즌들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 여기저기서 '이것도 문제다', '저것도 문제다'라는 글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왔습니다. 중국 국기 오성홍기를 거꾸로 그린 삽화가 발견됐고,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의 치마를 잡거나 여자 아이를 뒤에서 껴안는, 성희롱으로 보이는 장면도 문제의 삽화로 거론됐습니다. 여자 아이의 속옷이 노출된 삽화도, 일부 어린이의 복장이 미국 국기 성조기를 연상케 하는 삽화도 지적됐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 삽화들이 어린이들에게, 미래 세대에게 잘못된 사상과 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중국 국기가 거꾸로 걸린 삽화(왼쪽)와 성희롱으로 지적된 삽화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져 나갔습니다. 네티즌들은 인민교육출판사가 만든 교과서뿐 아니라, 다른 책들까지 '수색'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명의(名醫) '편작'의 이야기를 다룬 책까지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이 책은 해외에서 제작된 것을 들여와 중국어로 번역해 출판한 것이었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이 문제 삼은 전국시대 명의 '편작' 관련 책

인민일보 "작은 일 아냐"…중국 교육부 "모든 교과서 조사"

출판사 측이 교과서의 삽화를 다시 그리겠다고 발표했지만 논란은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까지 나서 "교과서에는 진리와 국가, 영혼이 담겨 있는 만큼 글자 한 자, 그림 하나가 정교해야 한다"고 평론했습니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은 다음 세대 교육과 관련된 일로, 작은 일이 아니다"라고 꾸짖었습니다. 중국의 유명 논객인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삽화 문제는 분개할 문제"라며 "엄격하게 조사해 처리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관계자 처벌을 촉구했습니다. 네티즌들은 당시 삽화를 그린 사람에 대한 인적 사항을 SNS에 퍼 나르고 있습니다.

출판사는 더 납작 엎드렸습니다. 도마에 오른 교과서를 출판한 인민교육출판사는 28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인민교육출판사는 1950년에 설립된 교육부 직속 기관입니다. 출판사는 "교과서의 질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며 "깊이 반성하고 사죄드린다"고 밝혔습니다.

교육부도 직접 나섰습니다. 발표문을 통해 "삽화 논란을 매우 중시한다"면서 이번에 논란이 된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뿐 아니라 "모든 초·중·고 교과서의 삽화와 내용을 전면 조사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올바른 정치 방향과 가치 지향을 견지하면서 중국의 우수한 문화를 선양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중국 교육부는 "모든 초·중·고 교과서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 개정판 이제 와서 논란…과도한 애국주의 때문?

여기서 곱씹어 볼 게 있습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교과서는 지난 2013년 개정된 책입니다. 10년 가까이 이 교과서로 중국 학생들이 공부를 해 왔다는 의미입니다. 이 교과서 때문에 중국 학생들이 그릇된 가치관이나 사고관이 생겼다는 말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걸까요.

일부 중국 논객은 "과거에는 교과서 삽화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지금처럼 온라인 매체도 발달하지 않았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어 보입니다. 9년 전에도 중국인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은 높았고, 온라인 매체도 어느 정도 발달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티즌들이 지적한 삽화들은 앞에서 언급한 많은 논란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공통점은 대체적으로 '추하게'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다른 중국 논객은 "지금 우리나라(중국)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인민들은 조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며 "고의적으로 중국인을 비방하는 것은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 분석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미·중 갈등 등으로 애국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지금 중국 상황에서, 중국 국기를 거꾸로 그리거나 미국 국기를 연상케 하는 복장을 교과서에 넣는 게, 과거에는 용납이 됐을지 몰라도 지금은 안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인을 '감히' 못 생기게 그리는 게 허용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인종 차별이나 성 차별은 당연히 근절돼야 하지만, 어린 세대의 교과서마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과하게 반영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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