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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동훈과 로버트 케네디

윤석열의 '케네디 오마주'는 성공할 것인가

[취재파일] 한동훈과 로버트 케네디
윤석열 대통령의 케네디 사랑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지난해 6월, 검찰총장 퇴직 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 나라는 그 나라가 배출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그 나라가 기억하는 인물들에 의해 그 존재를 드러냅니다."라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 등장한 "세계 시민"이라는 표현도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 때도 신임검사 교육 과정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최근 화제가 된 5·18 기념사에서도 케네디 대통령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설 과정에서 사전 원고에 없던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입니다."라는 문장을 덧붙였는데, 이는 "우리 모두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1963년 베를린 연설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케네디 오마주(hommage)'가 더욱 두드러지는 대목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단행한 인사 가운데 가장 눈에 띄고, 드라마틱하면서, 논란이 컸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이야 말로 '케네디 오마주'의 화룡점정으로 보인다. 케네디가 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Robert Francis Kennedy)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처럼 윤석열 역시 친동생과 다름없는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으로 고른 것이다. 한동훈과 로버트 케네디라는 인물의 특징과 당시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로버트 케네디의 사례를 강하게 의식한 결과라는 추정이 더욱 힘을 얻게 된다.
 

'케네디 오마주'…한동훈과 로버트 케네디의 공통점

우선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측면에서 로버트 케네디와 한동훈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한동훈 장관을 묶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동훈과 윤석열의 관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이 친형제 못지않은 관계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한동훈 장관은 검찰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윤석열 대통령을 "형"이라고 부르곤 했다. 두 사람처럼 13살이나 차이가 나는 경우라면 친형제 중에서도 윤석열-한동훈만큼 가까운 관계를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장관은 8살 차이였다.)

공통점은 또 있다. '형'을 위해 물불을 가라지 않고 험한 일을 불사하는 다혈질의 인파이터이고,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로버트 케네디는 케네디 대통령의 선거전을 지휘한 캠페인 매니저였다. 케네디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던 존 에드거 후버 FBI 국장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다른 정적들을 찍어 누른 정치적 경호실장이기도 했다. 특히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관료나 기업인들을 가혹하게 다뤘던 것으로 유명하다. 케네디 대통령 면전에서 쿠바 침공 실패를 언급했던 국무부 차관에게 "여태껏 내가 들어본 말 중에 최고로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개소리요. 당신네들은 그 잘난 자기 보신에 급급해서 뭐든 하기가 두려운 거야. 하고 싶은 거라고는 그저 대통령한테 송두리째 떠넘기는 것밖에 없어."라고 퍼부었던 일이 대표적이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노조와 마피아, 철강업계 등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면서도 많은 적을 만들었다. 한동훈 장관 역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 수사,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사법농단 사건 수사, 조국 전 장관 사건 수사를 할 때 험한 일을 도맡았을 뿐 아니라, 그 결과 많은 적을 만들었으면서도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법무부 장관을 넘어서 정권의 2인자로 지목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미국 역사가인 제임스 힐티는 로버트 케네디에 대해 "선거운동 디렉터, 법무부 장관, 행정 관료들에 대한 감독관, 후원자 관리인, 최고 조언자, 그리고 형의 보호자"라는 직무를 한꺼번에 감당한 인물이었으며, 그 이전의 어떤 정권에서도 로버트 케네디만큼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성을 확보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행정 권력을 행사한 인물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케네디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와 상의했다. 흐르쇼프 서기장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소련 대사에게 보낸 특사도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 장관이었다. 언론은 로버트 케네디를 공공연하게 "2인자"라고 불렀고, "케네디들(the Kennedys)"의 결정이라며 두 사람이 정부를 공동 운영하는 것처럼 묘사한 경우도 있었다. '소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동훈 장관의 경우와 겹쳐 보이는 모습이다.

로버트 케네디 장관과 존 F. 케네디 대통령

법무부 장관 임명 당시 거센 비판을 받았던 것도 두 사람의 닮은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이라고 해도 대통령의 친동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일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정실 인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법무부 장관을 하기에는 법조계 연조가 부족하거나 너무 젊다는 우려도 쏟아졌다. 케네디 대통령이 "(내 동생이) 밖에 나가서 진짜 법률 업무를 하기 전에 법조 경험을 조금 쌓게 해주는 것이 그렇게까지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당시 여당이었던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아서, 여당 지도부는 반란표가 나오기 쉬운 무기명 투표 방식이 아니라 기명 투표 방식으로 법무부 장관 인준 표결을 진행하도록 사전 작업을 해야 했다. 이 역시 한동훈 장관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로버트 케네디가 "최고의 법무부 장관"으로 꼽히는 이유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이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 장관의 임명과 비슷해 보이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윤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기 전에는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추측이 어렵지는 않다.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으며 임명됐던 로버트 케네디가 결과적으로는 지금까지도 미국 역사상 최고의 법무부 장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버트 케네디가 역대 최고의 법무부 장관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형'인 대통령을 대신해 관료 조직을 휘어잡았다거나, 법무부의 권한을 극대화했기 때문은 아니다. 수사를 통해 대통령의 적들을 압박했기 때문도 아니다. (모두 로버트 케네디가 실제로 했던 일이기는 하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당시 미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 100년 동안 미국 민주당의 강력한 기반이었던 남부의 정치적 지지를 포기하면서까지 흑인 시민권 운동을 지원하도록 형을 설득하고, 법무부 인력을 남부에 파견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한 일은 로버트 케네디가 지금까지도 위대한 법무부 장관으로 기억되는 가장 큰 이유다. 영화 《대부》에서 묘사되듯이 당시 정관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심지어 케네디 대통령의 당선에도 기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마피아와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한 것도 로버트 케네디의 큰 업적으로 꼽힌다.
 

한동훈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아마도 한동훈 장관 역시 로버트 케네디의 성공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동훈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공정에 대한 소신"을 지키다가 좌천됐던 검사들을 요직에 기용하는 것과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되었던 사건들을 다시 철저하게 수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내야 할 것이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로부터만 추앙받는 일만 한다면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에 불과하다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지금 한동훈 장관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배치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우리 사회에 제기된 문제들을 정면으로 해결해 나간다면, 임명 당시의 논란에서 벗어나 로버트 케네디처럼 훌륭한 법무부 장관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정치세력의 아이돌에 머물 것인지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법무부 장관이 될 것인지는 앞으로 한동훈 장관이 선택할 일이다.

유념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위대한 법무부 장관으로 꼽히는 로버트 케네디 역시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장관으로서의 권한을 남용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케네디 정부 당시는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 이전이라서 정부의 권한 남용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지금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대통령이나 측근들의 사생활이나 비공식 발언 등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던 시절이기도 했다. 중대한 문제를 용기 있게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960년대가 아니라 2020년대에 한국에서 법무부 장관을 하고 있는 한동훈 장관은 권한 행사와 관련해 로버트 케네디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스스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실패는 결국 많은 부분이 한동훈 장관에게 달려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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