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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선진국 vs 개도국, 기후위기 책임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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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부뉴스는 특별하게 한 구독자가 보내주신 글을 소개하면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내용의 답장이 온 건지 이해하기 쉽도록 지난 기사 피드백을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지난주 마부뉴스에선 우크라이나 사태로 시작된 전 세계의 식량위기를 다뤄보았습니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기후변화의 영향을 데이터로 살펴봤었죠. 내용 중에는 파키스탄의 환경부 장관이 폭염에 대한 책임이 선진국에 있다는 트위터의 글을 소개해준 내용이 있었어요. 장관의 트윗을 요약하자면 지금의 기후위기의 책임은 선진국에 있고, 파키스탄을 포함한 남아시아 지역에서 그 피해를 보고 있다는 거였죠. 이 부분의 내용을 읽고 독자가 답장 하나를 보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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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책임을 논하는 곳에서 논지가 타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굴뚝산업을 '떠넘겨서' 탄소 배출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탄소 배출량이 늘어났다고 인도의 책임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하는 결론을 내는 것은 결론을 정해놓고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마부뉴스에서는 선진국에 기후위기의 책임이 있다는 개발도상국의 입장과, 현재 개발도상국의 탄소배출량을 함께 보여주면서 양쪽 상황을 다 담으려고 했는데, 그 내용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마부뉴스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기후변화를 두고 벌어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입장 차이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어느 국가에 더 책임이 있는 건지 데이터로 엄밀히 따져봤어요. 이번 주 마부뉴스가 독자 여러분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선진국과 개도국, 기후위기 책임은 어디에 있는 걸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신경전


잠깐 장소를 영국 글래스고로 옮겨볼게요. 시점은 지난해 11월. 이곳에서 바로 COP26이 개최되었죠. 인류가 여태껏 해왔던 기후협약 중에 석탄 감축을 명시한 최초의 협약이 바로 이곳, 영국 글래스고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어찌 보면 전 세계가 진일보된 협의를 이끌어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어요. COP(Conference of Parties)는 당사국총회를 의미합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들이 일 년에 한 번씩 모여 진행과정을 검토하는 회의를 갖는 건데요, COP26은 26차 당사국총회를 의미합니다.

COP26에 참석한 부텐데르 야다브 인도 환경부 장관은 회의 초장부터 선진국에게 선제 타격을 날렸어요. “개도국에는 화석 연료를 책임 있게 사용할 자격이 있다”는 발언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없는 개발도상국은 세계 탄소 공급량에서 공정한 몫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죠. 야다브 장관은 여태껏 대기 오염을 일으키면서 성장했던 선진국이 이제 막 산업화 단계에 있는 개도국에게 지구온난화 주범의 탈을 씌워선 안된다고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선진국도 가만히 있진 않았어요. COP26 연설에 나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했습니다. “세계 최대 배출국인 이들 정상이 회담에 참석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실망스러웠다”고 직격탄을 날렸어요. 모두가 나서서 행동해야 할 시점에 소극적인 개발도상국을 비판한 겁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탄소배출량 변화

100년 만의 폭염을 두고 선진국 책임론을 던진 파키스탄 기후 장관의 트윗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기후위기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선진국과 개도국을 나눠서 탄소배출량을 살펴보면 왜 이렇게 서로 입장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죠.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20년, 전 세계 탄소의 98.5%가 선진국에서 배출됐습니다. 100년 전인 1920년에도 선진국의 비율은 압도적이죠. 하지만 지금은? 2020년엔 개발도상국이 전체 탄소 배출의 69.6%를 차지하면서 선진국을 역전했어요.
 

"개도국, 너희 탄소를 너무 많이 배출하고 있잖아!"

선진국-개도국 탄소배출량

선진국의 입장은 이런 겁니다. "지금 기후 위기 상황이 심각한데 개도국에서 너무 무분별하게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선 전 세계의 탄소배출량 감축이 필요한데, 엄청나게 탄소를 뿜어내고 있는 개도국에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인 거예요. 특히 2000년 이후부터 개도국 배출량이 급속도로 늘었거든요. 1750년부터 2020년까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탄소배출량 격차를 살펴보면 한눈에 알 수 있을 겁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면 선진국이, (-)면 개도국의 탄소배출량이 많다는 의미인데, 2003년부터 개도국이 선진국을 역전하기 시작했고 최근엔 그 격차가 132억t까지 늘어났어요. 게다가 그 속도가 상당하죠.

이처럼 가파른 상승세는 중국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중국이 배출하는 탄소의 양은 무려 106억 6,788만 7,453t. 전 세계 통틀어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348억t 정도인데 중국 한 곳에서만 전체의 30.6%의 탄소가 배출되고 있거든요. 중국에 이어 2위는 미국으로 47억t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어요. 2020년 기준으로는 미국의 탄소배출량이 중국 절반이 채 되질 않습니다. 3위는 무섭게 치고 오르는 인도입니다. 인도는 2000년에만 하더라도 9억 7,892만t의 탄소를 배출하면서 5위였지만 어느새 일본과 러시아를 제치고 2020년엔 24억t이 넘는 탄소를 배출했어요.
2020년 탄소배출량 상위 10위 국가

중국을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중국 내 기업들이 배출하는 규모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중국 최대이자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바오우 그룹이 2019년에 배출한 탄소량은 2억 1,100만t에 달합니다. 벨기에, 오스트리아, 핀란드 세 국가가 배출한 탄소량을 다 합쳐도 이 기업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죠. 탄소배출 끝판왕 산업으로 꼽히는 석유화학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국영 석유기업 중국석유화학공사의 2019년 탄소배출량은 8억 8,100만 톤. 우리나라의 2019년 배출량은 6억t 4,802만t인데 기업 하나가 우리나라를 훌쩍 넘기고 있어요. 기후 악당으로 꼽히는 우리나라도 이 기업에는 미치지 못하는 거죠.

문제는 이런 기업들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엔 너무 더디게 행동한다는 겁니다. 기업뿐만이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도 개도국의 행동은 선진국 입장에선 너무 더딘 거죠. 얼마나 느린지 확인하기 위해 영국의 NET ZERO TRACKER 데이터를 가져와봤어요. 옥스퍼드 연구소를 비롯해 4곳의 조직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 NET ZERO TRACKER에서는 국가, 도시, 기업 등을 대상으로 탄소중립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분석하고 있는 기업은 전 세계 규모 2,000위 이내의 기업들입니다. 이들 중에 선진국에 포함된 기업은 모두 1,496개, 나머지 504개의 기업은 개도국에 속해있어요. 2,000개의 기업을 분석해보면 선진국에서는 탄소 중립, 배출량 감소 등 구체적인 목표가 갖춰진 기업이 전체의 44.3%였습니다. 반면 개도국은 13.5%밖에 되질 않아요. 목표가 아예 없는 기업이 개도국에선 80.4%나 됩니다. 중국 기업으로 좁혀보면 그 비율은 95.5%로 늘어나죠. 이유는? 강제성이 없거든요. 선진국은 주로 법으로 탄소중립을 갖추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38.9%가 법적 규제를 갖추고 있지만 개도국에서는 4.1%에 불과합니다. 개도국에서는 대부분이 권고사항에 그치고 있죠.
 

"지금의 기후위기는 선진국, 너희 책임 아냐?"

선진국-개도국 탄소배출량

반면 개발도상국의 입장은 이런 겁니다. “아니, 우리는 이제 막 산업화하면서 탄소 배출하고 있는데, 지금의 기후변화는 선진국의 책임이 아니냐”는 거죠. 아까 본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탄소배출량 격차 그래프를 가지고 개도국 입장에서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1750년부터 2002년까지는 언제나 선진국이 배출한 탄소의 양이 많았잖아요, 그걸 다 합쳐보면? 선진국이 2,900억 6,801만t의 탄소를 더 배출한 겁니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2003년부터 2020년까지 1,400억 5,577만t의 탄소를 선진국보다 더 배출했어요. 과거부터 선진국이 무분별하게 배출한 탄소가 더 많다는 게 팩트인데 지금의 숫자만으로 판단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게 개발도상국의 생각인 겁니다.
1750~2020 탄소배출량 누적 상위 10개국

탄소배출량을 쭈욱 다 합쳐서 누적해보면 양상이 확실히 달라요. 1750년부터 2020년까지 누적된 배출량으로 그래프를 그려봤습니다. 이 그래프에선 선진국이 더 많죠? 누적으로 봤을 때 전 세계 1위는 미국입니다. 여태껏 미국이 배출한 탄소는 무려 1조 6,965억 2,417만t이죠.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1조t을 넘기는 국가입니다. 2020년 그래프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도 누적으로 보면 전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게다가 지금 배출하는 탄소도 사실 어떻게 보면 선진국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 기사의 시작이었던 구독자의 피드백 기억나시나요? 선진국이 굴뚝산업을 떠넘겨서 탄소 배출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환경 감수성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공해가 많이 발생하는 산업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산업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이뤄지고 있죠.
중국의 굴뚝산업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선진국

아까 이야기했던 중국의 철강 산업과 석유화학 산업을 가지고 좀 더 분석을 해볼게요. 2020년 중국의 철강을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입니다. 중국 철강 수출액의 12.9%를 차지할 정도죠. 많은 선진국이 중국의 철강을 수입해 쓰고 있어요. 평균 철강 수입액을 비교해보면 선진국이 평균 22억 달러, 개발도상국은 5억 달러 수준입니다. 화학 산업도 마찬가지죠. 중국 화학 산업 수출액의 1위는? 11.0%를 차지하는 미국입니다. 화학 산업에서도 선진국이 개발도상국보다 4.4배 더 많은 구매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선진국이 중국 굴뚝산업의 VIP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선진국은 개도국의 굴뚝산업 상품을 구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생산시설만 개도국에 분리 운영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오염을 외주화 하는 거죠. 다국적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개도국에 생산시설을 두고, 제품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2021년 네이처에 소개된 일본 국립환경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보면 G20이 개발도상국에 제품 생산을 외주화 하면서 연간 200만 명의 대기오염 관련 사망자를 낸다는 자료도 있을 정도입니다. 특히 그중 11개 국가가 일으키는 조기 사망의 절반 이상이 자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고요.

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개발도상국 입장에선 산업화가 필수적입니다. 산업화는 곧 탄소화, 건물을 새로 올리고 도로를 새로 깔고 그 위에 다닐 자동차를 생산하는 모든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죠. 빈곤과 탄소배출량은 반비례한 만큼 개발도상국에게 있어 탄소 배출은 생존을 위한 선택인 거고요. 자연재해는 가난한 사람부터 삼킨다고, 기후위기에서도 가난한 국가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습니다. 탄소배출에 대한 책임이 적은 국가가 오히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더 보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생기는 거죠. 가난을 벗어나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선? 탄소를 내뿜을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골든타임

 
마부뉴스 일러스트 모래시계
기후변화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도 어떤 집단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늘 그래 왔듯이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고통받고 최악의 피해를 당합니다.

UN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


A가 잘못했는데 뜬금없이 B가 피해를 본다면? 우리는 이걸 보고 불합리하다, 정의롭지 못하다고 합니다. 기후변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후변화를 불러일으킨 원인 제공자와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다면 그건 부정의 입니다. 그래서 정의로움을 되찾기 위한 '기후정의'가 탄생했습니다. 기후 불평등이 국가 단위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하나의 국가 안에서도 소득과 소비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낮은 계층보다 온실가스 배출에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지만 피해는 그 반대로 부과되죠. UN 사무총장의 경고처럼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게 될 겁니다.

역사적 책임이 있는 북반구의 선진 국가들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낮은 비용으로 낮은 탄소가 배출되는 신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한 국가들이 화석연료를 쓰지 않도록 하려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저렴한 저탄소 기술을 만들어야 하죠. 이미 선진국의 노력으로 에너지 시장에서 재생에너지와 대체에너지들의 가격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것처럼 말이에요. 2009년에 코펜하겐에서 열린 COP15에서 선진국이 개도국에게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합의(실행은 되지 않았습니다)했던 만큼 금전적인 지원도 필요할 거고요.

그렇다고 개도국에게 책임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개도국에게는 현재의 책임이 분명히 있거든요. 어느 때보다 가파르게 탄소 배출량은 늘어나고 있어요. 과거의 선진국이 마음껏 탄소를 배출했다고 해서 현재의 개도국의 탄소 배출이 정당화되는 건 아닐 테니까요.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전 지구적 문제인 만큼 책임질 일은 책임지면서 모두 다 같이 해결해야 할 겁니다. 지금은 1분 1초가 아까운 골든타임이잖아요.

오늘 준비한 마부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은 기후위기를 두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갈등과 책임을 데이터로 살펴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중 어느 국가들이 조금 더 책임을 갖고 기후위기를 극복해나가야 할까요? 과거의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일까요, 아니면 현재의 책임이 있는 개발도상국일까요? 독자 여러분의 생각을 아래 댓글을 통해서 알려주세요! 오늘도 긴 글 읽어줘서 고맙습니다.(*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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