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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피해자 권리에서 관계 회복까지…학폭, 어른→학생 관점으로 옮겨가려면

[취재파일] 피해자 권리에서 관계 회복까지…학폭, 어른→학생 관점으로 옮겨가려면
지난 3월부터 직접 만난 4명의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학폭위)를 '재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피해자로서 할 수 있는 건 신고뿐, 믿을 곳은 교사뿐이었던 아이들. 학생들은 학폭위라는 재판을 거치면 피해가 회복되고 억울함이 해소될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재판 전까지 보호받길 바랐지만 어른들의 배려는 부족했습니다. 행정 절차를 이유로 가해 학생을 길게는 10주 동안 같은 학교에서 마주쳐야 했던 학생들. 피해 사실보다 이런 절차 문제로 더 큰 상처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해결 가능할지 알아봤습니다.

1만 2천여 개 학교 처리 학폭위…170여 개 교육지원청으로 일원화


지난 2020년 3월 학폭예방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학폭위 개최 권한이 교육지원청에 일원화됐습니다. 이전에는 학폭 신고가 접수되면 전국 1만 2천여 개 학교에서 각자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교사들의 업무 부담과 전문성 등을 이유로 170여 개 교육지원청으로 업무가 넘어간 겁니다.

이런 변화로 일선 학교 교사들은 학생 교육에 집중하게 됐고, 전문 심의위원들을 뽑아 학폭위를 열면서 전문성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8주, 10주…늘어나는 학폭위 처리 기간


하지만 피해 학생들과 부모를 만나보자 생각지 못한 문제점이 보였습니다.

지난해 6월 수도권의 한 중학교에서 같은 반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A 양. 학폭위는 신고 후 8주 만에 열렸습니다.

A 양은 신고 후 평상시처럼 등교했지만 복도에서 마주친 가해 학생이 일부러 치고 가기도 했고, 신고 사실을 안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등 2차 피해에 시달렸습니다. 행정상 이유로 학폭위 결과 전까지 반을 바꾸는 등 조치는 없었습니다. A 양은 우울감을 겪었고, 결국 드문드문 등교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학교폭력 8리

지난해부터 1년 가까이 같은 반 학생 7명에게 괴롭힘을 당한 B 양에 대한 학폭위는 10주가 걸렸습니다. 그동안 B 양 역시 가해 학생들과 마주치는 게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B 양 어머니는 "아이가 사건 이후부터 '학교에 가기 싫다' '빨리 졸업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학폭위 처리 기한 "지침이라 강제성 없어"


신고 직후 학교에서 사안조사를 하기에 신고 사실은 가해자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가해자를 마주쳐야 하는 피해자 입장에선 학폭위 결과가 빨리 나올수록 좋을 겁니다. 학폭위 결과로 주로 가·피해자가 마주치지 않게 반 분리나 보복 행위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신고 후 학폭위 개최까지 정해진 기간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학교폭력 8리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학폭위는 신고 이후 최대 7주 안에 열려야 합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지침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B 양 사례처럼 지침을 어기고 10주 뒤에 열리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교육지원청 측도 이런 문제를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폭 사건이 매년 늘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합니다. 경기도의 한 교육지원청 장학사는 "이 지역 220여 개 학교 심의 요청을 모두 처리하고 있다"며 "오전, 오후에 계속 심의를 배정해도 늦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는 어떨까요.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는 1만 2046개교, 교육지원청은 177곳인데 이중 학폭 담당자는 770명에 불과합니다.

반면 학폭 신고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0학년도 학폭위 심의 건수는 8천357건이었는데 2021학년도에는 1만 5625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그만큼 업무량이 늘어나는 건데, 교육지원청마다 담당하는 학교 수도 제각각이라 지역별 편차도 있습니다. 이정엽 학교폭력 전문 행정사는 "어느 곳은 (학폭위를) 6주 안에 열고 어느 곳은 4주 이내에 처리하는 등 지역적인 편차가 워낙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 회복 시도하는 교육청


학폭 담당자들마저 사안 처리의 문제점을 절감하고 있는 상황. 경남교육청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학폭위 과정과는 별도로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남교육청은 재작년부터 학폭 갈등조정지원단을 운영해왔는데, 지난 3월부터 전문 인력을 뽑아 '관계회복지원단'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8리

학폭 신고가 접수되면 학교는 교육청에 해당 사안을 보고합니다. 관계회복지원단은 이런 사안 중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동의한 경우, 관계회복 과정을 안내하게 됩니다. 학폭위 처리와는 별도로 운영되는데, 학폭위 결정 전까지 당사자들끼리 갈등을 풀어나가는 법을 알려주는 등 학폭 해결에 대한 또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관계회복을 희망하는 피해자와 가해자와 각각 상담하고, 이들을 모아 서로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 후 약속 이행문을 만들어 지켜보고, 1달 뒤 사후 모임을 갖게 됩니다.

학교폭력 8리

피해 학생은 자신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이야기하고, 가해 학생은 그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 반성하게 됩니다. 관계회복지원단으로 참여한 하경남 창원기계공업고 교사는 "어른들이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바로 화해가 되거나, 가해 학생이 '정말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말했습니다.

무조건 관계 회복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관계 회복 여부는 당사자들의 선택이고, 교육적 과정으로서 그 방법을 알려주는 게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 8리

외부 교육전문기관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학폭예방법에 따르면 전국 교육지원청이 교육전문기관을 피해학생전담지원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는데, 현재 일부 지역만 적극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학폭 피해학생전담지원기관으로 지정된 경기도의 한 교육단체는 1년에 100여 건의 피해 학생 지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피해학생전담지원기관은 학교 측 요청이나 학폭위 조치 결정으로 피해 학생과 연결됩니다. 학생 상담도 진행하고, 피해 학생 심리 치료비 등을 가해자 측에서 부담할 수 있게 조정하기도 합니다.

학폭을 해결하는 방법은 가해자 엄벌주의에서 피해자 권리와 2차 피해 방지, 더 나아가 가·피해자의 관계 회복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피해 학생과 부모, 가해자 부모, 교육청과 교육지원청, 관계회복지원단과 피해학생전담지원기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며 학생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각각의 학폭 해결 과정에서 애쓰는 어른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두의 노력이 모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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