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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

박찬욱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어른스러운 영화."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영화제 기간 취재진과 여러 차례 만난 자리에서 작품을 두고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박 감독은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한국 취재진과 한 인터뷰에서 "영화에는 관객이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대사나 표현이 없고 주인공들이 진심을 숨기는 순간이 많다"며 "그걸 하나하나 파악하려면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변사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멜로 스릴러입니다.

독특한 사랑의 양상이 빚어내는 서스펜스가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지만, 박 감독 기존 영화와는 작법이 다소 다릅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나 금기를 파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내 보인 전작들과 비교해 더욱더 고차원적이고 촘촘한 방식으로 사랑에 대해 말합니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에서 극단적인 폭력과 섹스 장면을 담은 것과 달라진 대목입니다.

박 감독은 그 이유를 묻는 말에 "다른 감독이라면 이런 질문을 안 받았을 텐데"라며 웃었습니다.

"해외 배급사 관계자 한 명이 영화 소개 문구로 '박의 새로운 진화'를 쓰겠다고 하길래 제가 그건 좀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그럼 더 진화한 폭력과 섹스를 예상할 것 같아서요. 하하. 그냥 그런 장면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 넣었을 뿐입니다." 박 감독은 대신 두 사람의 일종의 '신경전'에 공을 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

형사와 용의자라는, 사랑이 금기된 관계에 놓인 서래와 해준은 좀처럼 속을 내보이지 않습니다.

해준은 감시인지 관찰인지 모호한 시선으로 서래를 바라보고, 서래 역시 그의 눈길을 눈치챘으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며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박 감독은 신문하고 답하는 형사와 용의자의 관계를 사랑을 발전해나가는 연인처럼 묘사했습니다.

"해준은 서래와 눈빛을 교환하고 친절함을 베풀고 미행하고 몰래 훔쳐봅니다. 형사니까 정당화되는 것이지 사실 스토킹이죠(웃음). 서래도 그걸 불쾌해하기보다는 믿음직스러운 남자가 밤새 나를 지켜주는 것처럼 느끼고요. 두 사람이 처음에 만나서 호감을 느끼고 밀고 당기고, 유혹하고, 유혹을 거부하는 이런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이죠.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독특한 관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취조실 장면입니다.

박 감독은 "두 번째 심문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자 핵심적인 장면"이라며 "우스우면서 동시에 슬프고, 주인공들이 중의적으로 마음을 드러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외하면 줄곧 로맨스 영화를 찍어왔다고 말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감독은 "굳이 대답하자면 인간이란 종족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관계의 유형"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한 장면 (사진=CJ ENM 제공, 연합뉴스)

'헤어질 결심'이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언어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중국 출신인 서래는 사극을 통해 한국어를 배워 다소 문어체 같은 말을 씁니다.

붕괴하다, 꼿꼿하다, 중단하다 같은 단어 역시 두 사람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박 감독은 "낯설지만, 자꾸 곱씹으면 뭔가 심오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단어가 있다"며 "다만 (국제영화제에서) 한계는 좀 있을 것 같다. 만약 이번에 상을 하나도 못 탄다면 그게 이유가 아닐까 싶다"고 농ㄹ담했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현지에서 서사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훌륭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바다와 산, 노을 같은 풍경뿐만 아니라 해준과 서래의 집, 경찰서 등에 배치된 미장센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휴대전화와 스마트 워치 등 소품과 세트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곳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세상 같은 느낌도 납니다.

"좀 더 현대적이고 사실적인 배경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특정 시기나 지역에 국한되는 이야기로 그려지지는 않기를 바랐어요. 10년, 20년 후 다른 나라에서 봐도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선을 지키려 했죠. 보편성이랄까 그런 것을 통해서, 나중에 봐도 견딜 수 있는 그런 영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진=CJ ENM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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