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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최첨단 KAI만 왜 항상 '낙하산 사장'…23년 악습의 뒷걸음질

[취재파일] 최첨단 KAI만 왜 항상 '낙하산 사장'…23년 악습의 뒷걸음질
▲ 경남 사천의 KAI 본사 항공동 내부 모습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의 차기 사장 후보군이 10명 이상이라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정부와 공공기관의 수장들도 바뀌는 것이 상례인데, 윤석열 캠프의 공신들이 KAI 사장 자리에 출사표를 낸 것입니다. KAI 임직원들은 술렁입니다. 언제나 그랬듯 항공우주산업 문외한인 낙하산 사장이 내려와서 회사를 또 얼마나 헤집어 놓을지 걱정입니다.

KAI는 국방과학기술의 정수인 전투기 만드는 회사입니다.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항공우주기업이자, 글로벌 비즈니스 업종입니다. 정부 주도의 항공방산업계 통폐합의 여파로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이지만, 공기업도 아닙니다. 한국형 전투기 KF-21 사업의 성패를 가를 비행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3~4년에 KAI와 KF-21의 사활이 걸렸습니다.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정치 권력은 왜 KAI 사장 자리를 아무 거리낌없이 자기들 몫으로 여길까요? 낙하산 사장의 법적 근거는 있을까요? 낙하산 사장이 KAI에 도움은 될까요? KAI 사장은 정치 권력의 소유가 아닙니다. 낙하산의 법적 근거도 없습니다. KAI에 도움도 안 됩니다. KAI 낙하산 사장은 전근대적 권력의 횡포에 불과한데, 그동안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캠프의 공신들은 부디 다른 자리를 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KAI 낙하산 사장의 흑역사…공신들 경력 관리처인가

 
KAI의 초대 사장부터 현재 7대 사장까지 모두 여권의 낙하산입니다. 초대 임인택 사장은 교통부 장관 출신으로 1999년~2001년 KAI 사장을 맡았습니다. 퇴임 후 건설교통부 장관에 임명됐습니다. 2대 길형보 사장은 육군 참모총장 출신입니다. 3대 정해주 사장은 김영삼 정부의 통상산업부 장관, 김대중 정부의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습니다. 2차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KAI 사장 자리를 얻었습니다.

4대 김홍경 사장은 산업자원부 차관보 출신입니다. 5대 하성용 사장은 내부 승진 인사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중소 규모 조선소 대표를 하다가 KAI 사장으로 픽업된 인물입니다. KAI의 한 중견 간부는 "하 사장 임명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먼 인척 관계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낙하산으로 분류됩니다. 6대 김조원 사장은 공직의 대부분을 감사원에서 보냈습니다. KAI 사장을 마치고 민정수석으로 영전했습니다. 현재 7대 안현호 사장도 산업자원부와 지식경제부의 관료였습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산업 관련 공직자의 길을 걷다가 정치권과 줄이 닿아 KAI 사장이 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KAI 실적 저하에 아랑곳 않고 사장 퇴임 이후 영전의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하성용 사장을 제외한 6명이 항공우주산업과 무관합니다. KAI는 글로벌 비즈니스가 중요한데 영어 능통자도 드뭅니다.
 
조립, 도색이 끝나 격납고 밖으로 옮겨진 KF-21 시제기
  

낙하산의 성적표는?

 
낙하산 사장들의 실적이라도 좋으면 위안이 될 텐데 그것도 아닙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2002년부터 발표한 세계 100대 방산기업 매출 규모 순위에 따르면 KAI는 2002년 59위에서 슬슬 추락하더니 2008년, 2009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2010년 93위를 찍고 2016년 58위로 복귀했지만 2017년 또 100위권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2018년부터는 60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59위에서 시작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가 겨우 60위권으로 돌아온 것이 낙하산 사장들의 성적표입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도록 뒷걸음질하다 겨우 원위치 근처입니다. KAI 협력사의 임원은 "KAI는 한화에 국내 1위 자리도 내줬다"며 "낙하산 사장은 정부, 여당에 목소리를 내는 장점이 있다는데, 그것은 권력에 빌붙어 회사 경영하는 후진적 발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KAI는 미국 기술과 부품 사와서 훈련기, 경공격기 조립하다가 이제야 제대로 된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항공우주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이자,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입니다. 전투기도 글로벌 비즈니스도 모르는 낙하산 사장이 또 임명되면 후자의 미래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왜 KAI만?

 
유독 KAI만 낙하산입니다. 대우조선해양도 KAI처럼 정부 지분이 높습니다. 법정관리하는 산업은행의 지분율이 55%입니다. 수출입은행의 KAI 지분율 26%의 2배 이상입니다. 그럼에도 대우조선해양의 사장은 내부에서 발탁됩니다.

유럽의 글로벌 항공우주기업인 에어버스도 프랑스, 독일 정부의 지분이 상당합니다. 수십 퍼센트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에어버스 경영진에 낙하산은 꿈도 못 꿉니다. 초절정의 전문가들 중에 최고를 엄선해 경영진으로 임명합니다. 영국 BAE 그룹도 비슷합니다.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보잉은 정부 지분이 없지만, 있다 해도 우리와 같은 정치 개입은 없을 것입니다.

KAI 낙하산 사장의 역사와 성적표를 보면 후보군 스스로 염치를 차릴 것도 같은데,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모를 일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했으니 KAI 낙하산 사장 고질병을 근절해야 할 것입니다. '5억 원대 연봉, 3년 임기 보장'의 사장 근무 여건이 캠프 공신들을 유혹한다면 계약 기간 단축, 연봉 삭감이라도 단행해야 합니다. 치열한 경쟁과 심사를 통한 내부 승진이나 글로벌 항공 비즈니스맨, 고도의 항공 기술 전문가의 영입만이 KAI와 KF-21의 비상을 보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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