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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WHO '제로 코로나' 지적에 중국 발끈…밀월 끝나나

[월드리포트] WHO '제로 코로나' 지적에 중국 발끈…밀월 끝나나
중국 관영 매체들이 12일 세계보건기구(WHO)를 비판하는 기사를 앞다퉈 전면에 게재했습니다. 발단은 WHO가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앞서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강력한 봉쇄와 격리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이른바 '제로 코로나' 정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고, 바이러스와 싸울 더 나은 수단이 있는 만큼 중국식 접근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언급했습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중국 전문과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으며, 다른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부연했습니다. 브리핑에 참석한 WHO 긴급대응팀장 역시 "경제와 인권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거들었습니다.

중국은 발끈했습니다.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인사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중국의 방역 정책을 대하길 희망한다"고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을 정조준했습니다. "사실을 더 많이 파악하고 무책임한 발언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바통을 넘겨받아 "WHO 사무총장의 발언은 무책임하다"고 일제히 공세를 폈습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WHO 사무총장의 발언은 무책임하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제로 코로나' 강조 닷새 만에 WHO 공개 지적


그동안 중국과 WHO의 관계를 감안하면,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들의 이런 즉각적인 반응은, 강도 높은 공세는 이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지난 5일 중국에선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강조했습니다. 시 주석은 최고위급 회의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열어 "우리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이미 단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과학적이고 효과적"이라며 "굳건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시 주석이 제로 코로나 정책이 과학적이라고 자부한 지 불과 닷새 만에 WHO 사무총장이 딴지를 건 셈입니다. 중국인들의 입장에선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5일 회의에서 상무위원들은 "우리의 방역 정책을 왜곡, 의심, 부정하는 일체의 언행과 결연히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WHO를 상대로 투쟁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나아가, 제로 코로나 정책은 시진핑 주석의 3연임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시진핑 주석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거론돼 왔습니다. 2년 전 우한 사태 이후 해외발 유입과 지역 확산을 꽁꽁 틀어막으면서 미국 등 서방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과 대조했습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곧 중국식 방역의 승리, 중국식 체제의 우월함으로 연결시켰습니다. 이런 마당에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목전에 두고 물러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결정되는, 올해 하반기로 예정된 당 대회 때까지는 어떻게든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할 것입니다.

중국 매체들은 WHO를 비판하면서, 같은 날 공개된 논문을 함께 소개했습니다. 중국 상하이 푸단대와 미국 인디애나대 등이 공동 발표한 이 논문은 "중국이 코로나19를 통제하지 않으면 155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중국 노인들의 백신 접종률이 높지 않은 데다, 의료 시설이 열악하고,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중국산 백신의 효능이 높지 않아, 코로나19를 방치하면 1억 1,2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이 중 155만 명이 숨질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입니다. 논문을 소개한 취지는 '이렇기 때문에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자국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자인한 꼴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입니다.

'중국이 코로나19를 통제하지 않으면 6개월 안에 155만 명이 숨질 수 있다'는 논문 내용을 전한 중국 관영 환구시보

WHO, 시진핑 의식해 오미크론 이름 바꿔줬지만…밀월 삐걱


중국과 WHO의 밀월은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의 당선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출신의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난 2017년 유럽 후보를 누르고 사무총장에 당선됐는데,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와 우호적인 중국이 전폭 지원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당선되면 중국이 거액을 WHO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실제 중국의 WHO 분담금 비율은 2017년 7.9%에서 2020년 12%로 뛰었습니다. 금액으로는 3,600만 달러(463억 원)에서 5,700만 달러(734억 원)로 상승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은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 3월 WHO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2천만 달러(257억 원)를 기부한 데 이어, 한 달 뒤 다시 3천만 달러(386억 원)를 기부했습니다. 그해 5월에 열린 WHO 연례총회에선 시진핑 주석이 20억 달러(2조 5,776억 원)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WHO는 '티 나게' 화답했습니다.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 선언이 늦었고, 코로나19 기원 조사에서도 중국이 발원지라고 결론 짓지 않았습니다. 중국산 백신의 긴급 사용을 잇따라 허가했으며, 심지어 현 오미크론 변이의 명칭을 짓는 데도 중국을 의식했다는 비판이 뒤따랐습니다. WHO는 그동안 코로나19 변이가 나올 때마다 그리스 알파벳 순서대로 이름을 지었는데, 14번째 글자인 '크사이'를 건너뛰고 15번째 글자인 '오미크론'으로 명명했습니다. 크사이의 영어식 철자는 'xi'인데 이는 시진핑 주석의 성 '시'의 영어 철자 'Xi'와 일치합니다. 당시 WHO도 오미크론 변이가 이토록 맹위를 떨칠지 예상은 못했겠지만, 만약 오미크론의 이름이 순서대로 크사이(xi)로 명명됐다면, 서방 국가들은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확산한 점을 부각하며, '시 변이'로 부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2020년 1월, 시진핑 주석과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의 회담 모습. (사진=신화통신)

이런 중국과 WHO의 밀월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입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WHO의 친중 행보를 비판하면서 WHO 분담금을 내지 않은 것은 물론, WHO 탈퇴까지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국제 사회에 '미국의 귀환'을 알리며 WHO에 분담금 2억 달러(2,578억 원)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WHO로서는 다시금 '중립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상황에 온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WHO가 지적했다고 해서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쉽게 바꾸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중국 소셜미디어들은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 발언 관련 글을 삭제하거나 공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의 조롱 섞인 댓글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친중 성향으로 간주돼 온 WHO마저 중국에 등을 돌릴 경우 중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봉쇄에 따른 경제와 민심 악화는 중국 정부도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저래 중국의 고민은 커지고 있습니다.

(사진=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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