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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월 350만 원' 턱없이 부족한 지원금…사명감에 기대는 학대아동쉼터

한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
"저 옛날에 샤워기로 맞았었는데 여기에 조금 흉터가 있거든요."

엄마에게 맞았다며 손톱 위 파인 흉터를 보여주던 초등학생 A 양. 친모에게 수차례 폭행을 당하다 집을 나온 A 양은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고 했습니다. 결국 친구 부모가 부모의 아동학대를 경찰에 신고했고, 8개월 전 쉼터에 들어왔습니다. 초반엔 적응이 힘들었지만 이젠 이곳에서의 삶이 부모와 지내던 일상보다 좋습니다. A 양은 연신 "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일부터 이틀간 한 학대피해아동쉼터에 찾아가 보육교사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이곳에 모인 아이들은 모두 부모에게 신체·정신적 학대를 받아 분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받은 아동입니다.

쉼터에 오는 아이들은 영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합니다. 전국에 쉼터가 100여 곳 있는데, 이틀간 방문했던 쉼터에는 초등학생 두 명과 중학생 한 명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보육교사 3명은 교대로 근무하며 아이들을 돌봅니다.

마음이 다친 아이들은 이곳에서 치유받았고, 교사들은 아이를 키운다는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어떨 때는 좋은 사람, 어떨 때는 악마 같은 사람"

이날 만난 또 다른 피해 아동인 중학생 B 양은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여러 차례 신고로 청소년 쉼터, 일시 보호소를 전전하다 학대아동쉼터에서 온 지는 4개월째입니다.

친부에게 발로 차이고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는 B 양. 아버지는 엄마까지 때렸고, 집 주변까지 괴성이 퍼질 정도라 경찰관이 순찰을 돌기도 했다고 합니다.

B 양은 친부를 "어떨 때는 좋은 사람, 어떨 때는 악마 같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에게도 폭력을 썼던 아빠에게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늘 감싸줬던 엄마는 때때로 보고 싶습니다. B 양은 "시험 기간에 엄마의 위로를 듣고 싶어서 엄마는 가끔씩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제각각 사연 안고 온 학대 피해 아동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한 아동이 올해 받고 싶은 어린이날 선물을 적고 있다.
쉼터에 온 아이들의 사연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교사들은 이곳에 온 아이들은 대체로 애정 결핍 상태를 보이며, 이미 마음이 엇나간 경우도 많다고 말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교사들에게 폭력적으로 대항하기도 하고, 쉼터 내 또래에게 비행을 전파하기도 합니다.

보육교사 C 씨는 "자기감정 조절을 못해 벽지를 찢거나 자해하는 아이들도 있어 그런 경우 특히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부모에게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일. 그만큼 쉼터 교사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최대 7명 홀로 돌보기…24시간 교대 근무에 최저임금 수준

이곳 쉼터 보육교사들은 24시간 3교대 근무 체제로 일합니다. 쉼터 정원은 최대 정원 7명. 혼자 돌보는 인원이 7명까지 늘어나게 되는 겁니다. 교사의 업무는 빨래부터 청소, 취사, 보육까지 다양합니다. 엄마이자 보호자, 상담가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는 셈입니다.

한 보육교사가 아이들 옷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이틀간 만났던 두 명의 보육교사 모두 밥, 설거지, 빨래까지 맡으면서 아이들 숙제를 챙기고 상담까지 하느라 쉴 새 없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잠드는 것까지 업무인데, 영유아가 오면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합니다. 아동이 새벽에 입소하기도 해서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아동 숫자가 늘어나면 아이들 숙제를 신경 쓰거나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이 부족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육교사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직도 비수도권 지역 대부분은 추가근무수당도 받지 못합니다. 4년째 쉼터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 D 씨는 "처음에 최저임금을 받고서는 사실 좀 허탈했다"면서 "좋아해서 하는 일이기에 이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쉼터 한 곳에 월 350만 원 지원금…지역별 편차도

쉼터 지원금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학대피해아동쉼터 지원금은 국비 40%, 지방비 60% 비율로 운영됩니다. 그래서 지자체별 지원금이 중요한데, 주로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지원이 줄어듭니다.

방문했던 쉼터도 정부와 지자체에서 받는 지원금은 한 달에 35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쉼터에 온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도 지원금은 동일합니다. 이 비용엔 공과금부터 옷, 식비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1인당 입소 비용으로는 최소 50만 원이 듭니다. 학대를 당하고 곧바로 쉼터로 옮겨지기에 대부분 가방조차 못 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온 아이들은 최소 1년간 생활하며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장기보육시설로 옮겨집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거쳐 가기에 입소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입소 비용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지역마다 다릅니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못 받는 경우도 대부분입니다. 아동은 부모와 분리되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데, 부모 동의 없이는 미성년자 통장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쉼터 시설장은 "학대 가해 부모가 아이의 통장 개설을 허락해주는 경우가 없어 지금 있는 아동도 모두 수급비 50만 원 정도를 수령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원금 부족하면 교사가 읍소

최대 7명 아이들의 생활비로 350만 원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추가 비용이 필요하면 선생님들이 나서게 됩니다. 최근 입소한 아동은 대부분의 치아가 썩어서 들어왔는데, 치료에 100만 원이 넘게 들어 시설장이 병원장에게 아이의 상황을 설명해 할인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방과 후 학원에 가고 싶어 하면 학원장에게 읍소합니다. 이곳 쉼터 아동 세 명은 모두 방과 후 같은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데, 시설장이 학원장에게 부탁해 학원비를 조금씩 할인받아서 보내고 있습니다.

이조차 어려워질 땐 시설장 월급을 떼어내 생활비로 활용합니다. 입소 아동 수가 적을 때 돈을 아꼈다가 늘어날 때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후원을 마음껏 받고 싶지만 쉼터가 비공개 시설이라 후원금을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명감으로 버티는 보육교사…쉼터는 신음

학대아동쉼터 보육교사들이 계속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결국 사명감뿐입니다. 이틀간 만난 교사들 모두 아이들을 양육한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육교사 D 씨는 "끼니때마다 밥을 챙겨주고, 씻겨주는 등 관심을 주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가정에서 못 받았던 사랑을 느끼고 변화하게 된다"며 "이런 모습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지원금과 사명감에 기대야만 하는 교사들의 근무 조건에서 쉼터는 신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차원에서 지금이라도 쉼터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또 지역별 편차 역시 줄여나가도록 해야한다는 점이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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