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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검수완박' 국면에 위기 맞은 '권성동 호'의 아이러니

양비론은 때때로 모두의 책임을 증발시킨다. 모두가 잘못했다는 건 결국 아무도 잘못한 게 없다는 것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피장파장'은 논리학에서만 '오류'라고 불릴 뿐 현실에서는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검수완박' 시도와 법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은 물론이고 국민의힘도 잘못했다는 비판은 일말의 진실을 내포한다. 하지만, 이런 양비론은 대선 이후 '검수완박'을 위해 급발진 한 민주당의 책임을 희석시킬 수 있다. 애초 시발점은 민주당이었기에, '검수완박' 추진과 입법의 책임은 민주당에 물어야 하는 게 옳다.

'검수완박' 법안 관련 국회 본회의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추진하지 않았을 '검수완박'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검수완박'을 추진했을까.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검찰정상화'라고 주장하는 '검수완박'을 왜 모두가 개혁의 최적기라고 말하는 임시 초에는 추진하지 않았을까. 왜 대선 패배 후 현 정부 임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급발진 한 것일까. 민주당의 주장처럼 '검수완박'은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일까.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검찰 개혁이 진영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면서 '검수완박'은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그러다 보니 '검수완박' 내용에 대한 검토는 없었다. 정의로워 보이는 '검찰 개혁'이라는 구호만 있었을 뿐,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제도의 변화가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검토는 생략됐다. 1차 검찰개혁이라 부르는 검경 수사권 조정 1년 4개월에 대한 평가가 생략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이 야기할 문제점 지적이 잇따랐다. 그 누구보다 '검찰개혁'을 오랫동안, 강도 높게 주장해 왔던 사람들에게 서다. 이유는 간명했다. 누구나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만큼, 사법 제도의 변화는 국민의 삶과 닿아 있다. 구호가 아닌 실질을 중심으로, 국민 모두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 변화가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 지 숙고하자는 것이었다.
 

면밀한 법안 검토 없이 밀어붙인 민주당의 '검수완박'

 
하지만, 민주당에선 "세부 쟁점에 대한 이견은 하루저녁이면 충분히, 하루 저녁 밤샘 토론하면 다 이견 해소될 수 있다" (황운하, CBS 라디오 <한판승부> 4/20)는 반응이 나왔다. 국회의장 중재안이 나오기 전으로 명실상부한 '검수완박' 내용을 담은 민주당 원안이 추진되던 시점이었다. 수십 년 만의 사법 제도 변화를 하루 저녁에 해결할 수 있다는 답변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국회의장 중재안이 나오고 경찰 송치 사건의 '동일성' 문제가 쟁점이 된 시점엔 법안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에게서 이런 입장이 나왔다. "제가 법조인이 아니다 보니까 지금 다시 확인을 해 봐야 되겠는데요."(김영배, CBS 라디오 <한판승부> 4/30) 법안의 내용도 제대로 모르고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앞선 두 답변은 민주당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검수완박'을 추진했는지에 대한 솔직한 고백에 가까웠다.

정략적 사보임과 꼼수 탈당, 회기 쪼개기를 통한 필리버스터 무력화, 법안 통과 당일 법안 공포라는 온갖 편법이 총 동원된 끝에 검수완박 법안은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검찰의 적폐 수사'로 임기를 연 문재인 정부가 '검수완박'으로 임기를 마무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5년 전 검찰을 동원한 적폐 수사 때와 같이 '검수완박'의 이유로 '국민'과 '촛불혁명'이 소환됐다는 건 기이한 데자뷔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전 끝에 처리된 '검수완박'은 무엇을 위해 의도된 것일까. 의도가 무엇이었든 속도전으로 만들어진 법안은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누더기가 됐다. 제도의 설계는 불신을 전제로 하는데, 검찰에는 불신을, 경찰에는 신뢰를 전제로 한 '검수완박'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의도조차 실현시킬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검수완박 여야

민주당의 강행처리 명분 제공한 국민의힘의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

 
지금부터는 '검수완박' 국면에서의 국민의힘 책임에 대한 것이다. 법안 내용의 정당성과는 별개인 지극히 정치공학적 이야기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에 진보적 시민사회 진영의 비판이 잇따랐다. 보수정당 국민의힘과 진보진영이 동조하는 이색적인 상황. 지난해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 시도 때의 재연이었다. 정치적으로만 보면 '검수완박' 국면에서 국민의힘은 잃을 게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얻을 게 더 많아 보였다.

그런데 민주당의 검수완박에 반대하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돌연 지난달 22일,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합의했다. 검찰의 모든 수사를 전면 제한하려던 민주당 원안보다는 '덜' 검수완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국민의힘 입장에선 상당히 후퇴한 내용이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과반 의석 공룡 정당 민주당의 강행 처리를 막을 힘이 없는 현실론을 합의 배경으로 들었다. 하지만, 이 합의로 싸움의 전선이 바뀌었다. 논의의 시작점은 중재안으로 옮겨왔고, 민주당의 강행 처리에 명분을 제공했다.

여론의 악화로 국민의힘은 합의를 파기했지만, '합의했다'는 사실 자체는 민주당 입장에선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이었다. 악화하는 여론의 화살을 국민의힘과 나눌 수 있는 탈출구를 민주당에 제공한 셈이었다. 국민의힘과 전략적 동조했던 진보적 시민사회 진영이 이탈하기 시작한 것도 당연지사였다. 이때부터 민주당은 '합의했던 안'이라는 걸 줄기차게 외쳤고, 법안 통과만을 위해 꼼수 탈당했던 의원 입에서 '민주주의'가 거론되는 촌극이 연출됐다. 국민의힘의 중재안 합의가 빌미를 제공한 결과다.

진보 진영이 비판하는 법안에 대해 찬성과 기권표를 던졌던 진보 정당 정의당이 이유로 든 것도 '합의'였다. 한 방송과의 대담에서 검수완박에 대한 입장 표명을 회피하던 문 대통령이 온갖 꼼수 끝에 국회에서 처리돼 넘어온 법안을 그날 바로 공표하며 거론한 것도 '여야의 합의'였다. 꼼수 사보임을 승인하고, 필리버스터 무력화를 위한 회기 쪼개기를 결정한 국회의장이 이유로 든 것역시 '합의'였다. 국민의힘이 중재안에 합의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 들이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비판 나온 중재안 합의

 
역사에 가정은 없다. 국민의힘이 중재안에 합의하지 않았다면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통과시켰을 지도 모른다. 대선 패배에 따른 지지층 이반을 막고, 강성 지지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붙잡아 둘 도구로 악마화 된 검찰의 손발을 자르는 것만큼 매력적인 카드는 없었을 수도 있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에게 여당 의원이 했다는 말처럼 '검수완박'을 못하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실존적 위협이 있었을 수도 있다. 때문에 중재안이 없었다면 원안이 통과됐을지도 모른다.

지극히 정치공학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자리이니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민주당이 원안을 강행 처리했다면 국민의힘은 지금보다 정치적으로 얻는 게 많았을까, 잃는 게 많았을까. 중재안에 합의하지 않았다면 민주당의 검수완박 시도 반대의 선명성을 높일 수도 있었다. '합의해 놓고 지금에 와서 왜 딴소리냐'는 빌미를 줄 일도 없었다. 진보적 시민사회 진영과 전략적 연대라는 보기 드문 상황을 좀 더 이어갈 수도 있었다. 민주당의 일방 처리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등에서도 승소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높일 수도 있었다.

합의 사실이 알려지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한 의원은 "검찰의 1차 수사 대상에서 선거범죄와 공직자 범죄를 제외한 것은 여야가 야합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며, 중재안 합의 자체에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의원은 "검찰의 1차 수사 대상 범죄의 결정한 기준이 대체 뭐냐"며, "경찰의 수사력이 현재 검찰에 미치지 못 하는 걸 전제로 한 합의는 부패 수사 역량 총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모순 아니냐"고 힐난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합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판단의 실책'이라고 이후 사과하기는 했지만, 민주당의 강행 처리를 막을 방법이 없는 현실론에 더해 중재안 합의에 이유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 원내대표는 주변 의원들에게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등 차기 정부 내각 구성과 추후에 있을 정부조직법 개정을 위해선 과반 의석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협치의 도그마'에 빠졌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비판의 저변에는 쉽게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어렵게 끌고 왔다는 불만, 크게 득점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병살타를 치며 겨우 한 점 밖에 가져 오지 못 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원내 사령탑의 전략과 판단력에 불신이 생긴 것으로, 권 원내대표 입장에선 취임 초부터 리더십에 생채기가 난 것이다. (다시금 확인하지만, 지금 논의는 '검수완박' 국면에서의 지극히 정치공학적 이야기다)

그런데 권 원내대표의 판단의 실책과 리더십의 위기를 맞은 이유의 상당 부분은 원내대표 당선의 배경이 되었던 윤석열 당선인(측)이 제공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 '검수완박'·'정호영 후보자'에 대한 상반된 입장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에 대해, '검수완박'에 반대하며 검찰총장을 사직하고 정치 참여를 선언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국회의 진행 상황에 대해 "지켜보고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대변인을 통해 밝혔지만, 국회와 거리를 두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사법 제도의 변화는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만, "당선인이 가장 몰두하고 있는 건 국민의 민생회복"이라는 메시지는 거리두기 해석을 가중시켰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당선인은 '검찰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검찰과는 의도적 거리 두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윤석열 당선인(측)의 이런 모호한 메시지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의 협상 전략과 마지노선을 정하는데 혼선을 야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권 원내대표는 '검수완박' 합의와 관련해 당선인(측)과 수차례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일각에서 큰 틀에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구체적인 의견 교환을 없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당선인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는 검찰총장일 때의 생각과 현재 변함없다"는 구체적 메시지는 중재안 합의 이후에야 나왔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국민의힘 내부에선 '윤핵관' 권성동 원내대표와 당선인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또 다른 한편에서 당선인과 권 원내대표가 협의해 진행했던 일이 여론의 역풍을 맞자 권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는 형태로 정리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과정과 이유가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권 원내대표의 리더십, 나아가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의 정치력이 손상된 건 분명하다.
 
윤석열 당선인 (사진=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연합뉴스)

부정의 팩트 나와야"…당선인의 입장에 제한한 선택지

 
첫 내각 인선과 관련한 윤석열 당선인의 입장도 권 원내대표의 오판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윤 당선인의 '오래된 지기'라는 정호영 전 경북대 병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여러 의혹이 제기되면서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다. 자녀 편입과 관련된 의혹은 윤 당선인의 정치 참여의 계기가 되었던 '조국 사태'의 재연으로 불리기도 했다.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건 윤 당선인,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호영 후보자 의혹에 대한 윤 당선인의 입장은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나"는 것이었다. 자녀 의혹에 대해선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며 야당과 언론 중심으로 제기된 의혹 중 '부정의' 한 건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대변인을 통해 내기도 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수사가 아닌 한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밝혀지긴 힘들다. 조국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윤 당선인의 이런 입장은 정호영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입장에선 윤 당선인의 이런 입장은 정 후보자를 비롯한 내각 후보자들을 어떻게 든 엄호해야 한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윤 당선인의 메시지가 이렇게 해석됐다면 '검수완박' 국면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의 선택지를 제약했을 수 있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 등 차기 내각 구성에 민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만큼 양보해야 했다"는 말은 권 원내대표의 선택을 윤석열 당선인이 사실상 강제했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바꿔 말해, 권 원내대표가 윤 당선인을 설득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검수완박' 국면서 위기 맞은 '권성동 호'…향후 당정 관계의 가늠자 될까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승리 후 "정부를 인수하면 '윤석열의 행정부' 만이 아니라 '국민의힘의 정부'가 된다"며, "당정이 긴밀하게 협의하고 피드백을 해 나가자"고 말했다. 당 중심의 국정 운영을 선언한 셈이다. '윤핵관' 권성동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은 당정 간 긴밀한 협의에 대한 당내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공학적으로 얻을 게 더 많아 보였던 '검수완박' 국면에서 리더십에 위기를 맞은 권성동 호의 아이러니는 당정 간 긴밀한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또 협의의 방향이 양방향이 아닌 일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어쩌면 '검수완박' 국면에서 보인 당과 당선인 간의 불협화음은 차기 5년 간 당정 관계를 추정케 하는 어떤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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