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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 "소 웃다가 꾸레미 터진다"…남 "소가 웃는 것 못 봤고"

70년대 남북회담 자료 첫 공개

남북대화사료집표지

1970년 초반의 남북회담 자료가 공개됐습니다. 분단 이후 6.25 전쟁을 겪고 1960년대까지는 남북이 공식적으로 아예 대화라는 것을 하지 않았는데, 1970년대 들어서면서 대화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남북대화 초기의 당국 간 접촉 자료로 1970년 8월부터 1972년 8월까지의 자료입니다.

공개된 자료는 모두 1천 652쪽으로, 이 가운데 418쪽은 보안 등의 이유로 비공개처리됐습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끌어낸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방북 자료 등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공개자료는 적십자 접촉 자료로 한정했다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입니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1971년 8월 20일 분단 이후 26년 만에 공식 석상에서 처음 마주 앉은 남북 대표단(적십자 파견원) 접촉은 약 3분 만에 끝났습니다. 서로 자기 소개하고 양측 적십자 총재의 문건을 교환한 뒤 수해 상황을 간단히 물어보고 헤어지는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남북 대화가 50년 넘게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긴 회의록을 읽다보면 남북이 접촉 초기부터 상당한 기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체제의 우열이 확실해졌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도 상당히 잘 살았던 시기이니 만큼, 체제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는 남북 양측의 경쟁이 접촉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몇 가지 회의록을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1971년 9월 16일에 있었던 남북 적십자 5차 파견원 접촉 회의록입니다. 이 때 남북은 서로 교육제도의 우월성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입니다.
 
남측1, "O 선생님, 자녀가 몇 분이시지요?"
북측1, "아들 딸이 모두 합해 셋인데 우리나라의 교육제도, 사회제도가 좋으니까
좋은 조건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북측2, "저도 아들 하나, 딸 둘인데 대학교 다니다 보니까
국가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남측1, "벌써 대학에 보내셨어요? 나는 딸 셋이 있는데
나도 외국에 장학금을 받아서 유학시키고 있어요."
북측1, "거기서 신문, 방송 자료를 보니까 대학교는 돈이 많이 드는 모양이더군요.
우리는 학교에서 돈 받는 거 없는데, 거기는 공납금이 높아진다고 말이 많더군요."
남측2, "그 만큼 개인의 능력도 높아지고 있어요.
선생님은 모든 일을 국가에서 지원한다고 하시는데,
개인의 능력을 그렇게 무능화시켜서 되겠어요?"
북측1, "소 웃다가 꾸레미가 터진다"는 말이 있어요.
남측1, "소가 웃는 것 일평생 못 봤고..."
북측2, "일본에서 귀국선을 타고 온 일본 기자들이
동평양에 있는 적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돈 받는 지불구를 찾지 못해서 그랬는데
우리가 치료비를 받습니까, 약값을 받습니까? 그래서 한바탕 웃었어요"
남측1, "집에 가거든 두 분 부인께 인사말씀 전해 주십시오."
북측1, "우리가 그나라 사회에 대해서 좀 아는데
교육비가 오르는 것을 그쪽에서는 많이 걱정하고 있더군요."
남측1, "우리도 여러가지 사회관계가 잘 되고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 말고....
내가 월급만 가지고 사는데, 아들 딸 다 미국 보내고 캐나다에 보냈습니다.
30년전에 빈 손으로 여기에 넘어왔는데 걱정없어요.

소가 웃다가 꾸레미가 터진다, 소가 웃는 것 평생 못 봤고 등의 표현에서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는 회담장의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남북적십자파견원접촉

다음은 1971년 9월 3일 있었던 남북 적십자 4차 파견원 접촉 회의록입니다. 이 때 남북은 의료수준의 우월성을 가지고 설전을 벌입니다. 장애인 비하 표현으로 적절치 않은 말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당시 회의록인 만큼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남측1, "(적십자사는) 국민에게 박애정신을 가지고 봉사하는 기관이니까
재미있는 일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68년부터 시작한 것이 있는데 언청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언청이가 통계학상으로 상당히 어느 나라고, 어느 민족이고 있는 법이랍니다.
그런데 그 수술을 68년부터 시작했어요. 1년에 한 3-4백명 치료하고 있습니다.
68, 69, 70, 71년까지 지금 4년째인데 5개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71년이면 이 우리 남한에 언청이는 다 없어집니다.
언청이 수술이 고도의 의학적 기술을 요하고
그 수술하는 의사가 그렇게 많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적십자관계 의사 뿐 아니라
여러군데 있는 분들이 호응해서 그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적십자 사업의 하나지요."
남측2, "지금 가장 중요한 사업을 뭐로 하고 계세요?"
북측1,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은요. 정형수술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얘기지요?"
남측1, "고도의 성형수술입니다. 이건 외과나 일반 정형수술을 가지고 되는게 아닙니다."
북측1, "그 자체는 물론 우리도 하는 것이고요"
남측1, "아, 물론 그렇겠지요"
남측2, "언청이 수술을 하세요?"
북측1, "합니다."
북측2, "언청이 수술 뿐만 아니라 앉은뱅이도 서게 합니다."

이번에 공개된 남북 적십자 파견원 접촉과 25차례에 걸친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의제문안과 진행절차 실무회의 내용 등을 보면 곳곳에서 지리한 남북의 말싸움이 이어집니다. 회담 장소와 일정, 의제 등을 놓고 몇 시간씩, 때로는 회의 차수를 변경해가며 며칠씩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곤 합니다. 그러한 진통을 통해 남북관계가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만, 50년 전에 비해 남북관계가 얼마나 발전한 것일까 하는 질문에 선뜻 긍정적 답변을 하기 어려운 것도 지금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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