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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야생방사 1호 황새 폐사…새끼 4마리 둥지에 남겨

[취재파일] 야생방사 1호 황새 폐사…새끼 4마리 둥지에 남겨
충남 태안의 한 들녘에서 지난달 25일 황새 1마리가 주저앉은 채 발견됐다. 주민이 다가가는데 일어서지도 날개를 펴지도 못했다. 기력이 다 빠진 황새는 야생동물구조센터로 급히 옮겨졌다. 외상이 없고, 엑스레이 촬영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수의사는 농약 중독 의심으로 진단했다.

황새 다리에 달린 가락지엔 A01이란 번호가 붙어 있었다. 국내에서 방사한 황새란 뜻의 식별 번호다. 이 황새의 이름은 ‘대황’이다. 야생방사 1호 황새다. 지난 2013년 한국 교원대에서 태어났다. 1년 뒤 예산 황새공원으로 옮겨왔고, 만 두 살 때인 지난 2015년 9월 3일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다.
 
1호 황새 폐사

이날 방사된 개체는 8마리다. 그해 봄 태어난 유조 2마리와 대황이를 포함 성조 6마리다. 성조 6마리에게는 ‘대한민국만세’에 ‘황’자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대황이는 가장 먼저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락지 번호는 A01이다. 자연으로 돌아간 첫 황새란 인증번호다.
 
대황이는 7년가량 충남 예산과 태안 등 서해안 들녘에서 짝을 만나 새끼를 낳으며 살았다. 그런데 지난달 25일 구조됐고, 5일 만인 30일 폐사했다. 농약 중독이 의심돼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번식 중이던 대황이는 둥지 속에 암컷과 새끼 4마리를 남겼다.
 
1호 황새 농약중독의심 폐사

1970년대 이전에만 해도 황새는 농촌 들녘에서 4계절 동안 흔하게 볼 수 있던 새다. 그 뒤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고, 지금은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199호다. 황새를 텃새로 만들기 위한 야생복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대황이는 ‘멸종된 황새의 복원’이라는 임무를 갖고 야생으로 들어갔다.
 
대황이는 ‘야생방사1호 황새’ 답게 자연 적응을 잘 해나갔고, 야생으로 돌아간 지 5년 만에 드디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했다. 짝을 만나 번식을 시작한 거다. 둥지는 50미터 높이 송전탑 꼭대기에 나뭇가지를 물어다 지었다. 번식용으로 세워준 인공둥지 대신 야생 황새들이 좋아한다는 자연 속 인공 구조물인 송전탑을 택했다. 대황이와 짝을 이룬 암컷 황새는 ‘화평’이다. 가락지 식별변호는 C02, 대황이 보다 4년 늦은 2019년에 야생방사된 개체다. 2009년 교원대에서 태어나 나이는 4살 많은 연상이다.
 
대황이와 화평이는 지난 2020년 초 둥지에 알 4개를 낳았고, 모두 부화에 성공했다. 인공 번식으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 황새들은 편하게 둥지를 지을 수 있도록 세워준 인공둥지탑에서 번식을 했는데, 야생 송전탑에 둥지를 짓고,새끼를 낳은 건 대황이 부부가 처음이다. 야생에서 태어나지 않고, 살아본 경험도 없는데 야생성이 단연 탁월했다.
 
1호 황새 농약중독의심 폐사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년째 같은 장소에서 번식을 해왔다. 송전탑은 고압 전류가 흐르는 시설이다 보니 황새가 감전돼 죽을 수도 있고, 정전 사고도 우려됐다. 새끼들이 자라 둥지를 떠난 뒤 한전에서 빈 둥지를 헐고, 송전탑 꼭대기에 바람개비까지 달아놓고 둥지를 짓지 못하도록 했지만 소용없었다. 지난해 가을엔 인공둥지 탑을 세워줬지만 대황이 부부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대황이 부부는 송전탑 꼭대기에 다시 둥지를 짓고 지난 1월 31일 알 5개를 낳았고 35일 뒤인 지난 3월 7일 새끼 4마리를 부화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들은 대황이 부부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으며 무럭 무럭 자라 지난달 중순쯤에는 둥지 위로 모습을 보일 만큼 쑥쑥 자랐다.
 
1호 황새 폐사

황새복원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예산 황새공원 김수경 선임연구원은 “대황이는 논둑에서 농약 중독 의심 사고를 당한 날에도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려고 제초제 살포로 죽은 파충류나 어류를 먹다가 농약중독 2차피해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황이 폐사체는 부검을 위해 모 대학 연구실로 옮겨졌다. 황 연구원은 부검 뒤 약물 분석을 통해 대황이를 죽게 한 농약 성분을 밝히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황새 부부는 둥지 속 새끼를 침입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번갈아 둥지를 지키고, 먹이를 물어 나른다. 수컷 대황이가 갑자기 죽어 새끼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암컷 화평이 몫이 됐다. 홀로 4마리의 새끼를 지켜야 하고, 먹이도 물어다 주려면 화평이 에겐 큰 부담이 되고, 건강이 쇠약해질 수도 있다. 황새연구원은 화평이의 먹이 활동을 돕기 위해 송전탑 둥지 근처 논에 미꾸라지를 공급해 주고 있다. 먹이를 찾으러 멀리 날아다니면서 기력을 소모하지 말고 건강을 잘 지켜가면서 새끼를 돌보라는 마음이 담겼다.
 
대황이와 함께 야생으로 돌아갔던 ‘대한민국만세’ 6마리 황새 중 생존이 확인된 개체는 3마리다. 야생에서 살아가고있는 개체는 A03 민황이와 A05 만황이다. A04 국황이는 사육장에서 보호받고 있다.
 
1호 황새 폐사

올해 번식 황새는 10쌍이다. 지난해 보다 3쌍이 더 늘었고 30여 마리가 부화에 성공했다. 최근까지 국내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 해외까지 날아가 80여 마리가 야생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4세대 황새도 처음 태어났다. 반세기 전 멸종된 황새가 텃새로 안착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대황이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 건강한 먹이사슬을 보존하고, 전깃줄 같은 충돌위험이 있는 인공구조물 개선 같은 생태계 보호 노력 등이 지속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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