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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검수완박 마무리…누가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했나요?

[사실은] 검수완박 마무리…누가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했나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 처리가 오늘(3일) 마무리됐습니다. 논란이 뜨겁습니다. 여야는 법안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서로를 향해 국회선진화법을 짓밟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두 거대 정당 원내대표의 발언입니다.

정치의 영역이라 시시비비를 따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SBS 사실은팀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서로의 주장을 꼼꼼히 검증할 필요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서로 국회선진화법의 어떤 부분을 위반했다고 보는지 살펴봤습니다.

사실은 국회선진화법 검수완박

국회선진화법의 세 축 : 폭력 행위 금지와 안건조정위, 필리버스터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5월,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처리됐습니다. 2011년 11월, 김선동 옛 통합진보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의결에 반발해 최루탄을 던진 게 계기가 됐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은 이른바 '몸싸움 방지법'으로 이름 붙여졌는데, 국회 폭력 사태를 엄격히 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김선동 최루탄
지난 2011년 11월, 옛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국회법 제148조
의원은 …… 회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이나 음식물을 반입해서는 아니 된다.
국회법 165조
……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 행위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민주당은 법안 처리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했다며,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주장은 다른 곳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복잡해서 길게 들여다 보겠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은 단순히 폭력을 금지하는 내용을 너머, 폭력을 '예방'하는 제도가 담겼습니다. 국회에 폭력 사태의 이유가 주로 거대 정당이 마음대로 할 때 발생하는 만큼, 거대 정당의 독주를 막는 완충장치를 마련한 겁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안건조정위원회'와 '필리버스터'입니다.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법의 초안을 내놓습니다. 이른바 '발의'입니다. 그러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토론을 하고, 의결 과정을 통해 통과시킬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통과가 되면 다음으로 법제사법위원회가 심의할 차례입니다. 법사위에서는 법 내용 중에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따져봅니다. 체계·자구 심사라고 합니다.

법사위에서 의결을 거쳐 통과되면 본회의로 넘어갑니다. 본회의에서 재적 과반, 과반 찬성으로 처리되면, 법안은 정부로 넘어가 공포되면서 입법 절차는 마무리됩니다.

사실은 국회선진화법 검수완박

그런데, 국회선진화법은 의원들 머릿수 많다고 마음대로 통과시키지 못하게 허들을 세웠습니다. 상임위 토론 단계에서 '안건조정위'라는 허들,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라는 또 다른 허들입니다.

먼저 안건조정위원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21대 국회의 안건조정위 23차례, 3~4분 만에 뚝딱

아시다시피 국회는 과반 이상이 출석해 과반 이상이 찬성하면 법을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건조정위가 구성되면 그럴 수 없습니다. 법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국회법 제57조의2
조정위원회는 …… 6명으로 구성한다. …… (6명은) 국회의원 수가 가장 많은 정당과, 그렇지 않은 정당의 수를 같게 한다. …… 여기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머릿수가 많은 정당이라도, 안건조정위가 구성되면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법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여야가 안건조정위원을 3대3 동수로 구성해 힘의 균형을 이룬 뒤, 서로 지난하게 토론하고 숙의하며 설득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국회는 안건조정위를 통해 지난하게 설득하고 토론했을까요. 21대 국회의 안건조정위를 전수분석해봤습니다. 참고로 최근 열린 검수완박법 안건조정위는 아직 회의록이 나오지 않아 제외했습니다.

사실은 국회선진화법 검수완박

21대 국회의 안건조정위원회는 총 23차례(검수완박법 안건조정위 제외) 열렸습니다. 조정위에 오른 법안은 141개입니다. 비슷한 법안끼리 많이 묶어서 심의하기 때문에 141번이 아니라 23차례 회의한 걸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SBS 사실은팀은 23차례 회의 시간도 모두 분석했습니다. 기초학력보장법 안건조정위는 3분, 초중등교육법은 4분, 디지털원격교육법은 5분 토론하고 끝냈습니다. 그나마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던 공수처법은 1시간 17분, 언론중재법은 1시간 47분 정도였습니다. 모두 정회 시간은 제외하고 계산했습니다.

평균을 내봤더니 51분이 나왔습니다. 안건조정위 만들어서 깊이 있게 토론하고 숙의하라고 만든 제도인데, 6명의 의원이 평균 51분 회의를 했습니다.

실제, 하나의 법안에 대해 두 번 회의를 한 경우는 불과 3차례에 불과했고, 토론 결과 통과되지 않은 법안은 3개에 불과했습니다. 즉, '한 번' 회의하고, 바로 '통과'시킨 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여야가 3대3 동수로 힘의 균형을 맞추고, 3분의 2가 찬성해야 통과할 수 있는 회의인데, 이렇게 쉽게 결론 났다니 의아한 일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다음 표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은 국회선진화법 검수완박

다시 말씀드리지만, 안건조정위는 의원 수가 가장 많은 당과 그렇지 않은 당이 '3대 3'으로 구성됩니다. 즉,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과반 이상 거대 정당이므로, 민주당 3명이면 다른 정당 3명입니다.

민주당이 아닌 위원은 보통 국민의힘 2명과 다른 정당 혹은 무소속 1명으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그 면면을 보면 상당수가 친민주당 성향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총 23차례 회의에서, 지금은 민주당과 합당한 옛 열린민주당 출신 의원들이 12차례,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들이 4차례 포함됐습니다. 사실상 민주당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의힘은 안건조정위를 보이콧하기도 합니다. 23차례 회의 가운데 국민의힘 위원이 참석하지 않은 경우가 10차례에 달했습니다. 이전 20대 국회에서는 10번의 안건조정위 회의가 열렸는데, 국민의힘은 단 한 번만 불참했습니다.

쉽게 말해, 여야 비율이 '3대3'이 아니라 '4대2'가 되는 셈인데, 민주당은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손쉽게 쟁점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고, 국민의힘은 상당수 보이콧으로 맞대응했던 겁니다. 국회선진화법의 취지가 퇴색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안건조정위가 '숙려'가 아니라 '속전속결' 수단이 돼버렸습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
무소속 민형배 의원

특히,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야당 몫으로 주어진 안건조정위원 자리에, 여당을 탈당한 무소속 의원이 갔습니다. '위장 탈당'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회차 쪼개기'로 금세 막 내리는 필리버스터


국회선진화법이 안건조정위를 상임위 논의 단계의 허들로 삼았다면, 필리버스터는 마지막 관문인 본회의의 허들입니다.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회법 제106조의2
의원이 …… 무제한 토론을 하려는 경우에는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 경우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하여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여야 한다. ……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중에 해당 회기가 끝나는 경우에는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바로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하여야 한다.

필리버스터는 국회 본회의 표결 직전, 합법적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걸 법적으로 보장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무제한'은 아닙니다.

국회는 쉽게 말해 '시즌제'로 운영됩니다. 3월 국회, 4월 국회, 5월 국회, 이런 식으로 각 시즌별로 시작 날짜와 끝 날짜가 있습니다. 이를 '회기'라고 하는데, 필리버스터를 해도 국회 회기가 끝날 때 동시에 종료되도록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끝도 없이 필리버스터를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슬라이드 포토] 필리버스터 마지막 주자 이종걸 의원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마지막 발언자였던 이종걸 당시 원내대표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첫 필리버스터는 2016년 2월 있었던 민주당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였습니다. 당시 9일에 걸쳐 192시간 넘게 이어졌는데,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민주화 이후 첫 필리버스터였던 데다 릴레이 토론에 참여한 의원들이 최장 발언 기록을 거듭 경신하며 외신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필리버스터는 '회기 쪼개기' 전략이 나왔습니다. 수적으로 우세한 정당이 회기를 일찍 끝내버리면, 필리버스터도 동시에 막을 내리는 겁니다. 회기는 의결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끝내버리고 다음 날 바로 본회의를 열면 본투표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검수완박 법안은 이런 식의 쪼개기 전략으로 빨리 처리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국회선진화법은 누가 위반했나요?

안건조정위원을 세우기 위한 위장 탈당, 필리버스터를 빨리 끝내기 위한 회차 쪼개기라는 일련의 행위들은, 국회선진화법이 담긴 국회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민주당 입장에서) '묘안', 혹은 (국민의힘 입장에서) '꼼수'입니다. 달리 말하면, 국회법에 담긴 문구 그대로 적용하면, 누가 법을 위반했는지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묘안'이고, 또 그래서 '꼼수'일 겁니다.

'검수완박' 검찰청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사진=연합뉴스)

여의도에서는 "국회법 위에 헌법 있고, 헌법 위에 여야 합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회법은 전형적인 정치법입니다. 의사 결정 과정의 '기준' 정도를 제시하고, 디테일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알아서' 협의하고 합의해 결정하라는 식의 취지가 많습니다. 즉, 여야 협의와 합의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국회법은 의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민주적 의사 결정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제도적 장치 그 자체보다, 국회법을 다루는 이들의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다는 뜻일 겁니다. 이번 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이 '절차 정의'에 부합하는지 많은 고민을 남기는 이유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 이야기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2013년 11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민개혁법안 처리에 대한 연설을 하던 중, 한 한국인 유학생이 "불법 체류자 추방을 막을 수 있도록 행정명령을 발동해달라"고 외쳤습니다. 청중들까지 청년의 외침에 동참하며 "추방을 멈춰라!" 구호를 외쳤습니다. 경호원들이 그 청년을 데리고 나가려는 순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렇게 답합니다.

"그 청년을 내보내지 마세요. 가족을 걱정하는 청년의 열정을 존중합니다. …… 하지만 이민 문제를 해결하는 건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쉽지 만은 않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제가 법을 어겨서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떠드는 것이겠죠. 하지만, 저는 먼 길을 돌아가려고 합니다. 민주 절차를 따라 청년이 원하는 바를 이를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사실은 국회선진화법 검수완박
SBS 사실은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검수완박 법안과 관련해, 서로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했다는 여당과 야당의 주장을 살펴봤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의 원문을 통해 문구 그대로 엄정히 살펴보면, 위반의 주체를 논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면에서 사실은팀은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다만, 이번 사안은 판정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묘안'과 '꼼수' 사이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왜곡돼 이용될 소지가 충분히 존재하며, 이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들의 절차 정의에 대한 '의지'의 문제에 가까워 보입니다. 과연, 국민의 대표들이,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 의원들이 절차 정의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 시청자분들의 평가가 남았습니다.

(인턴 : 정경은, 이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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