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심상찮은 상하이 민심"…교민이 보내온 기고문

상하이 봉쇄 한 달

오는 28일은 중국의 경제 수도 상하이가 봉쇄된 지 한 달이 되는 날입니다. 봉쇄가 언제 풀릴 것이란 소식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고 없는 도시 봉쇄에, '도시를 동서로 나눠 나흘씩만 봉쇄하겠다'는 당국의 초기 발표를 믿었던 시민들의 고통과 불만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상하이 시민들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요? 전례 없는 이번 봉쇄를 시민들은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요? 30년째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상하이 교민이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이 교민은 책 '중국을 이기는 비즈니스 게임'의 저자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중국 현지 기업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한국 기업의 중국 사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기고문의 전문입니다.
 
<상하이 봉쇄가 쏘아올린 변화의 시작>

최승훈
『중국을 이기는 비즈니스 게임』 저자

"정부 정책의 불합리한 요구는 결국 모순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나라만 믿고 서방 국가들의 집단 면역을 비웃던 인민들은 이제 정신을 좀 차렸을까?"
"지금 겪고 있는 이 봉쇄는 늘 말 잘 듣고 순종하던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가둔 것과 다름없다."


한국의 시사 비평에 등장할 법한 이런 말들이 중국의 온라인 매체들 사이를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면면이 이력이 화려한 논객, 학자, 유명인이 실명으로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그 아래 댓글 창은 더욱 볼만하다. 이전 같으면 노출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걸쭉한 욕설부터 본문보다 더욱 신랄한 논리가 줄을 잇는다.

'이게 중국 맞나?'

위문차 주민들을 방문한 '하늘 같은' 상하이 당서기를 향해 시민이 삿대질하며 불만을 토로하고, 경비와 공안들이 막고 있는 거주 단지 출입구를 운집한 주민들이 산사태와 같이 밀어낸다. 시 방역위원회 핫라인으로 전화한 중년의 여성은 '당이 약속한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며 격리된 자신의 생존을 책임지라고 악쓰며 웅변한다.
상하이 당서기에게 항의하는 시민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기다리고 있던 2022년 새해는 소리 없이 유입된 오미크론과 함께 시작되었다. 홍콩을 통해 바이러스가 유입된 광저우와 선전, 그리고 시안과 지린 등이 저마다 '제로 코로나'를 외치며 도시 봉쇄에 들어갔다.

말 많았던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물리적 버티기로 큰 문제없이 끝나자 곧이어 13기 제5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진행됐다. 3월에 있었던 전인대는 베이징 동계올림픽만큼이나 중요한 행사였다. 올 가을에 예정된 제20차 당 대회 때문이다. 당 대회는 많은 사람이 아는 바와 같이 시진핑 국가 주석의 3연임을 위한 대관식이 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이번 연임은 큰 의미를 갖는다. 국가 주석직 3연임 제한 규정을 헌법까지 뜯어고쳐 가며 폐지시키고 당과 국가의 모든 포커스를 이 하나에 맞추며 준비한 장기 집권이기에, 이는 연임이라 쓰고 독재의 시작이라 읽는 것이 무방할지도 모른다.

이 준비된 결론을 치장하기 위해 3월의 전인대는 시 주석과 그의 정부가 빚어낸 치적들로 화려한 꽃밭이어야 했으며, 베이징 동계올림픽이건 항저우 아시안게임이건 소위 '국뽕' 가득한 아드레날린의 향연이어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갑자기 상하이 오미크론 폭증이라는 마가 끼었다.

거주 단지 단위로 봉쇄하며 막아봤지만 별다른 호전이 보이지 않자 상하이 시 정부는 당 중앙의 캐치프레이즈인 '제로 코로나'를 앞세워 3월 28일, 연전불패의 대책인 '도시 봉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처음에는 푸둥강 동쪽과 서쪽으로 나눠 나흘씩만 봉쇄한다고 했지만 PCR 검사를 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감염자 탓에 약속은 공수표가 되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또 일주일. 이렇게 피노키오의 코처럼 야금야금 늘어난 봉쇄는 어느덧 한 달이 됐다. 그 기간, 인구 2,500만의 초대형 도시 상하이는 멈췄다. 계엄령과 다름없는 방역 정책에 굶주렸고, 아프고, 시달렸다.

지병이 있던 환자는 담당 의사가 격리 중이라 뒤로 미뤄진 수술 날짜를 끝내 기다리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PCR 검사 결과가 없으면 들어올 수 없다며 막아선 탓에 응급실로 들어가지조차 못한 긴급 환자는 결국 응급실 문 앞에서 숨이 멎었다. 넋이 나간 환자의 모친 손에 뒤늦게 쥐어진 PCR 검사 결과지에는 인명보다 중요시된 한 단어가 적혀있었다. '음성'.

정부와 지도자의 말을 믿고 나흘치 식량만 비축해 놓은 시민들은 굶주리기 시작했다. 기다리다 못한 시민들이 공동 구매를 통해 거주 단지 별로 식량 확보에 나섰다. 휴대폰을 두드리며 어렵게 구한 파 1kg이 1만 원(60위안)이었다. 평소 1천 원(5위안)도 안 하던 그 파와 똑같은 파였지만 물가는 전쟁통과 다를 바 없이 치솟았다. 오죽하면 "상하이에서 제일 가치 없는 것은 위안화이다"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나마 구할 수 있으면 그 값에 상관없이 구매해야 했다.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가둬 놓고 단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엄포만 놓던 시 정부가 드디어 구호물자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양념들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먹은 그날 저녁부터 온 가족이 배가 아프고 몸이 불편했다.

쓰레기통을 뒤져 구호물자로 온 음식들의 포장지를 확인해보니 이미 사라진 기업의 제품도 있었고, 식품위생국으로부터 생산금지 조치를 받은 제품도 있었다. 유명 브랜드라 안심하고 먹은 제품은 자세히 보니 그 브랜드가 아니라 기업 정보조차 검색이 안 되는 모조품이었다. 심지어 생산 일자가 내일로 찍혀있는 제품도 있었다.

곰팡이가 낀 쌀과 썩어있는 통조림, 포장이 없어 확인이 안 되는 생고기까지, 채소를 빼면 멀쩡한 식품이 없었다. 코로나19 발병 후 2년간 세수만 500조 원이 넘는(2조 8천억 위안) 상하이에서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에게 보급한 구호물자가 결국 이 정도였다. 코로나 감염 시 긴급 사용을 권고하며 제공한 중약 성분의 치료제조차 모조품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시민들은 폭발했다.
변질된 채 보급된 구호물자
세련된 랩을 하던 상하이의 한 가수는 원색적 풍자가 가득한, 정부를 비판하는 랩송을 내놨다. 웃음과 재치를 팔던 틱톡은 순식간에 성토의 장이 되었고, 명품을 두르고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는 사진들이 올라왔던 SNS 채널들은 정부의 정책, 행정 능력을 비판하는 시사 채널로 둔갑했다.
상하이 래퍼가 발표한 노래 '신종 노예'
올리는 시민과 지우는 정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상하이 현실을 알리고 정부를 비판하는 업로더의 거주지를 찾아내 끌고 가기도 했다. 주민들의 거센 야유 속에 그렇게 연행해 가는 영상이 또 다른 시민의 손에 찍혀 온라인으로 유포되었다. 2,500만의 상하이 시민과 그 유명한 중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주모자 없는 온라인 시위가 밤새 이어진다. 이름조차 거론될 수 없었던 시진핑 주석의 얼굴과 함께 "시 주석, 누군가 중국 인민의 발언을 억압하고 있소!"라는 도발적인 콘텐츠들이 줄을 잇는다. "내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 "어디까지 지울 수 있는지 해보자!"라는 글들이 정부의 검열에 삭제되면 시민의 손으로 다시 올라오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상하이 시민들의 온라인 시위
중국 인민의 반동적 움직임은 이전에 두 곳에서 더 있었다.

첫 번째는 1989년 베이징에서였다. 민주화를 외치는 100만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톈안먼에 모여 연일 집회를 열어대자 위기를 느낀 중국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한 뒤 6월 4일 무력 진압을 전개했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물론, 이는 중국 국내 대부분에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중국 내에서는 금기시되는 주제이다.

두 번째 격전지는 영국 식민지에서 막 벗어난 홍콩이었다.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2005년 평등 선거 시위, 2009년 반 분열국가법 반대 시위, 2012년 애국 교육 필수과목 지정 반대 시위, 우리에게 우산 혁명으로도 알려진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시위, 그리고 가장 최근 뉴스를 뜨겁게 달군 2019년 범죄인 인도법안 반대 시위까지. 광복을 맞은 홍콩에서는 오히려 끊임없이 자유와 독립을 외치는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리고 2022년 오늘의 상하이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명분을 가지고 다른 형태를 띤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는 근사한 이데올로기로 포장되지 않았고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의견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극단적인 단순함과 명료함이 상하이 시민뿐 아니라 수 억 명의 다른 도시 봉쇄 시민까지도 공감하게 만든다.

"여기가 인민을 위한 세상이 맞는가."

이 순간에도 '제로 코로나'를 견지하며 상하이의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는 중국 정부에 상하이 시민들은 조롱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순종적이기만 한 중국 인민들의 일반적 성향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기에 아마도 중국 공산당 역시 꽤나 놀라고 있을 것이다.

벌어진 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그 일들을 겪은 시민은 더 이상 이전의 시민이 아니다. 가장 발전한 도시, 선진화의 모범이 된 국제도시 상하이. 중국 경제를 일으켜 세우며 일등 도시의 일등 시민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여기 상하이의 시민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누구보다 자본주의의 총아이기도 한 상하이 시민에게는 변했다는 표현보다 깨어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하다. 중국식 방역을 자찬하며 성공을 확신하던 중국 공산당은 믿고 있던 상하이에서 도전을 만났다. 그리고 이는 공산당이 정성들여 설계해 놓은 중국의 미래에 변수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