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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내 자녀·동생 같아서"…일대일 지원 나선 교민들

"중국 상하이 봉쇄로 갇힌 우리 자녀들을 구해 주세요."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상하이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식료품도 바닥나고 온라인 구매도 어려워 한국 유학생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부모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프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22일 오전 현재 5,200여 명이 청원에 참여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상하이 총영사관을 비판하는 글도 있습니다. 격리시설로 강제 이송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갑작스럽게 도시가 봉쇄된 데다, 당시 총영사관 직원들마저 자택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총영사관도 제대로 대처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죽 힘들었으면 이런 글이 올라왔을까 싶습니다.
 

"시리얼로 1주일 버텨"…상하이 한국 유학생들 고통 가중


지난달 28일 시작된 상하이 봉쇄는 언제 풀릴지 기약이 없습니다. 당초 도시를 동서로 나눠 4일씩만 봉쇄하겠다는 당국의 발표는 공수표가 된 지 오래입니다. 당국의 말만 믿고 4일 치 식료품과 생필품만 준비했던 시민들은 곤경에 처했습니다. "당장 먹을 게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14일간 코로나19 감염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거주 단지에 한해 최근 자택 격리를 풀긴 했지만 이마저도 거주 단지 안에서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3만 5,000여 명의 우리 교민들은 대부분 아직도 집 문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주 단지별로 식료품 등을 공동 구매해 각 가정에 나눠준다고 하지만 규모가 작은 거주 단지는 공동 구매 자체가 용이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당국의 저질 식료품 지원 논란까지 불거졌습니다.

우리 유학생들의 어려움은 더 큽니다. 중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중국 생활이 낯설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학생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상하이 총영사관의 지원으로 귀국을 하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2,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기숙사나 학교 밖 열악한 주택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취사 시설이 없는 곳에서 지내는 유학생도 있습니다. 혼자 있는 탓에 식료품과 생필품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시리얼로 1주일을 버텼다", "물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글들이 교민 게시판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화장지와 여성용품 등도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봉쇄가 길어질수록 고통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맨투맨 지원방' 등장…교민 · 유학생 연결해 지속 지원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 A씨도 긴 봉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40대 회사원인 그는 지난 2003년부터 중국에서 생활해 온 터라 그나마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유학생들의 딱한 상황을 전해 듣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한국인회에 후원금을 냈지만 이를 통해서는 유학생 지원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물자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이를 분류하고 운반하는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상하이는 현재 당국으로부터 통행증을 받은 인원과 차량만 시내를 다닐 수 있습니다.

A씨는 어려움을 겪는 유학생들을 위해 일대일 지원을 제안했다.

A씨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한꺼번에 물자를 운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통행이 가능한 택배 회사를 통해 개별적인 배송은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유학생들과 교민들을 짝지어 일대일 지원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유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민 가정에서 유학생 1~2명을 맡아 식료품과 생필품을 지속적으로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지난 14일 A씨를 포함한 3명이 시작했습니다. '맨투맨 지원방'이라 이름 붙이고 SNS로 유학생과 교민 가정을 연결해 줬습니다. A씨가 사는 아파트는 비교적 규모가 커 공동 구매가 가능했습니다. 자기 가족이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매했습니다. 물, 라면, 즉석밥, 김치, 즉석 반찬 등을 사놓고 필요한 유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보내줬습니다.

A씨가 식료품 등을 대량 구매해 쌓아 놓은 모습

집밥 먹고 싶다는 말에 도시락 직접 싸서 전달


A씨처럼 공동 구매가 가능한 교민들이 속속 '맨투맨 지원방'에 모여들었습니다. 봉쇄에 대비해 여유 있게 물자를 비축해 놓은 교민도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들도 본업이 있지만 봉쇄 때문에 일손을 놓은 상태였습니다. 다 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자녀', '내 동생'이라는 마음으로 유학생 돕기를 자처했습니다. 그렇게 8일 만에 190여 명이 모였습니다. 도움을 받게 된 유학생의 수는 360여 명에 달합니다. 한 교민은 집밥이 먹고 싶다는 유학생의 말에 손수 도시락을 싸서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응원의 손편지를 함께 동봉한 교민도 있습니다.

유학생들에게 배송된 구호품들

유학생들은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지원이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심적·물적 고통을 크게 덜 수 있었습니다. 전화로, 문자로, 편지로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저를 그저 한국인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유학생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한 문자와 손편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응답하라 2022는 상하이에서" 


'맨투맨 지원방'에 모인 190여 명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본업도 다 다릅니다. 공통점은 단 두 가지 뿐입니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점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점입니다. A씨는 "이런 일을 안 해 봤다"며 "남을 돕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줄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하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다고 했습니다.

유학생들에게 갈 구호품들이 배송되고 있다.

A씨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서로 돕고 나누는 동네 모습이 울림을 줬다고 했습니다. '응답하라 2022'가 지금 상하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A씨는 말합니다. A씨는 끝내 본인의 이름이 공개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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