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인-잇] 세상의 어른 '금쪽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금쪽이 코끼리 (사진=금쪽같은 내새끼 캡쳐)
'금쪽이 코끼리' 짤방의 은은한 유행이 한창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육아 상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코끼리 마스코트를 활용한 짤방인데요. 실제 프로그램 속에서는 대상 아동의 속마음을 들어보기 위해 등장하는 '가상 친구'입니다. 어른인 제작진이 질문을 하면 아동이 쉽사리 마음을 열기 어렵기 때문에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이 성우를 기용한 코끼리 마스코트를 내세워 이런 저런 질문을 합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익명 처리하고 편의상 '금쪽이'라고 부르지요. 질문은 "안녕 금쪽아? 금쪽이는 왜 ○○○○하는 거야?"라는 틀을 가지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안녕 금쪽아? 금쪽이는 왜 엄마의 얼굴을 자꾸 할퀴는 거야?"

"안녕 금쪽아? 금쪽이는 왜 아빠가 가까이 오면 화장실로 도망가는 거야?"

귀여운 마스코트와 대화한다는 안심감 때문일까요? 생각보다 많은 아동들이 직설적인 질문에도 불구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코끼리 마스코트의 귀여운 모습과 대비되는 이러한 직설적인 질문 패턴이 시청자들에게 묘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직접 말로 하기엔 조심스러운 '팩트 폭력'을 코끼리 캐릭터와 함께 짤방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겁니다.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다양한 사례들이 있는데요. 한 기업의 팀장은 타 부서 직원들이 자꾸 자기 팀에 와서 한참 수다를 떨고 가는 분위기를 보다가 직접 말로 하는 대신 금쪽이 프린트물을 벽에 붙여놓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내용과 함께요.

"안녕 금쪽아? 금쪽이는 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우리 팀에 와서 자꾸 수다를 떠는 거야?"

또, 한 중학교 교무실에는 이런 프린트물이 붙어 있기도 하고요.

"안녕 금쪽아? 금쪽이는 왜 시험문제 출제 기간인걸 알면서 노크도 없이 문을 여는 거야?"

새벽 1~2시가 넘으면 2030세대 위주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런 짤방이 올라옵니다.

"안녕 금쪽아? 금쪽이는 왜 이 시간까지 자지 않는 거야?"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런 짤방이 소비되는 향유층이 프로그램의 주 타깃인 부모 세대나 어린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청소년이나 청년같이 육아와 관계없는 세대들이 이 코끼리 마스코트를 모두 알고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겁니다. 아이를 낳거나 키우지 않는데도 육아 프로그램에 이입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어른도 '여전히 금쪽이'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상담 현장에서 2030세대를 만나보면 그들 고민의 시작점은 유소년기의 상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단 상담을 할 때 이런 우스갯소리를 꺼내곤 하는데요.
"오늘 여기 오신 분들께서, 다들 20대 30대라고 해서 꼭 지금의 이야기만 하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다 하셔도 괜찮아요. 이야기가 길어져도 괜찮습니다. 우리 왜 GOD 노래 가사처럼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고' 이런 식으로 그냥 쭉 이어져도 괜찮아요."

제 말을 듣고 나면 취업 고민으로 상담을 온 청년도, 직장 내의 관계 문제로 찾아온 청년도 아주 오래전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27살의 대학원생이거나 35살의 과장님이어도 마음속에는 10살, 12살의 상처와 아픔들이 그대로 남아서 지금의 행동이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어른의 모습을 한 수많은 '금쪽이'들은 TV 속에서 변화하는 부모와 아이를 보면서 대리 치유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내 유년기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내 부모는 나를 끝내 안아주지 않았지만, 브라운관 속에서 달라지는 가족을 보며 나의 아픔에 대입해 보는 거지요.

그래서일까요? 점점 더 '나이 먹은 금쪽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명인들의 속마음을 꺼내 보는 금쪽상담소나, 청년들을 특화해서 상담하는 써클하우스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인데요. 혹자는 "요즘 TV만 틀면 오은영 박사가 나온다"고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이 열풍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명의 전문가가 유행처럼 트렌드를 휩쓸고 가버리면 '반짝 키워드'로 소비될 뿐이지만 스테디하게 자리 잡는다면 하나의 '변화'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람들이 조금 더 자신의 내면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 같은 것들 말입니다.

지금 '나도 어른 금쪽이가 아닐까?' 생각되는 분들이 계신다면 내 주변에서 '금쪽이 코끼리'를 찾아 조금씩 내 마음을 꺼내어보면 어떨까요? 경청할 준비가 된 가장 안전한 주변인 말입니다. 또, 누군가가 여러분께 어렵사리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면 어렵게 생각지 마시고 해결해 줘야 한다는 부담도 갖지 마시고 그냥 들어주세요. 그에게는 내가 '금쪽이 코끼리'가 되어 주는 거지요. 조금만 더 이 금쪽이 열풍이 지속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코끼리가 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사회는 조금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인-잇 #인잇 #장재열 #러닝머신세대
[인-잇] '포켓몬 빵 열풍'으로 본 MZ의 마음 한 조각

인잇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청년 3만 명을 상담하며 세상을 비춰 보는 마음건강 활동가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