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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이게 실제 영상이라고?" 마이클 베이의 신무기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21

'믿고보는 ○○'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코로나 전에는 영화를 1인당 한해 4.37회나 보던 한국인 개개인들에게도 믿고 보는 감독이 있을 겁니다. 제 경우는 봉준호, 왕가위, 크리스토퍼 놀란, 웨스 앤더슨쯤 되겠네요. 독자 여러분의 '믿보감'은 누구인가요?

마이클 베이도 전세계 많은 관객들이 믿고 보는 감독입니다. 관객들은 적어도 마이클 베이가 자신들을 지루하게는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더록", "아마겟돈",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을 연출한 마이클 베이의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는 하지 않아도 지루한 영화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는 감독으로서 전세계 역대 흥행 5위에 올라있고 할리우드로만 따지면 2위입니다. 1위가 무시무시한 스티븐 스필버그이고 3, 4위가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출한 루소 형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마이클 베이의 흥행성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파괴지왕' · '믿고 보는 감독' 마이클 베이
마이클 베이는 '액션영화 마스터' 또는 '파괴지왕' 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의 영화에서는 대규모 폭발 씬이 시그너처 장면처럼 등장하는데요, 마이클 베이는 이걸 대부분 실제 촬영으로 해낸다고 합니다. 심지어 배우들에게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지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아 배우들이 생존을 위해 뛴다는 후문까지 있을 정도죠. 마이클 베이 감독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CG 대신 실제 촬영을 선호하는 대표적인 할리우드 감독들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에서 실제 스핏파이어 전투기 석 대를 하늘에 띄웠고, 그 큰 아이맥스 카메라를 실제 전투기에 태워 비행하면서 촬영해 현장감과 임장감을 극대화했습니다. 마이클 베이 감독도 CG로 구현할 수밖에 없는 트랜스포머 로봇을 빼고는 실사촬영를 선호합니다. 느낌이 다르다는 거지요. 비슷한 이유로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는 감독들도 있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리코리쉬 피자"가 필름으로 찍었다는 점은 언급한 바 있습니다)

"트랜스포머" 촬영현장의 마이클 베이 감독 ⓒ파라마운트 픽쳐스

마이클 베이가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2017)" 이후 5년 만에 새 영화 "앰뷸런스"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2019년에 넷플릭스로만 공개된 영화 "6언더그라운드"를 찍긴 했습니다. 이 영화도 피렌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볼만합니다. 피렌체의 세계문화유산들 사이에서 저런 엄청난-위험한- 액션을 찍을 수 있는 감독은 마이클 베이밖에 없을 겁니다)

형제지간인 제이크 질렌할과 아히야 압둘 마틴2세가 은행을 털다가 걸려서 어쩌다 보니 에이사 곤잘렌스가 응급구조대원으로 탑승해있던 앰뷸런스를 탈취해 LA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도주한다는 게 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아시죠? 마이클 베이 감독 영화에서 내용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게 '정론'입니다)

마이클 베이의 신무기 'FPV 드론'
그런데 이 영화, 평소 다른 영화에서 못 보던 영상들이 눈에 꽂힙니다. 정확히는 "저걸 어떻게 찍었지?"라는 궁금함이 고개를 드는 장면들입니다. 분명히 실사 영화이고 화면에서도 CG 느낌이 나지 않는데, 카메라가 고층빌딩을 수직으로 훑어 올라가다가 옥상 위에서 급회전한 뒤 수직으로 급강하합니다. 마치 촬영감독이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찍었을 법한 앵글과 카메라 워킹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기둥들 사이로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로 지나가다가 급회전을 걸며 다가오는 차량 쪽으로 휘어들어 갑니다. 카메라 장비를 실은 채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달리(dolly)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심지어는 도주 차량을 추격하다 흙더미 턱에 걸려 살짝 점프하는 경찰차 밑바닥 아래로 카메라가 통과합니다. 소형 카메라를 차량 아래로 던지지 않는 이상, 이런 위험한 장면을 촬영할 수는 카메라맨은 없을 겁니다.

"앰뷸런스"에서 이런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 마이클 베이의 한수(手)는 바로 'FPV 드론'입니다. 'FPV'는 'First Person View'의 약자로 1인칭 시점 드론을 가리킵니다. 기존 드론은 육안으로 시계(視界)비행을 하거나 모니터를 보면서 조종을 합니다. 그리고 카메라 렌즈를 살짝 위아래로 움직일 수는 있어도 기체 자체를 90도로 꺾어서 수직 낙하하거나 수직 상승은 할 수 없었습니다. FPV 드론은 조종사가 고글을 쓰고 드론에 달린 카메라에 찍히는 영상을 보면서 조종합니다. VR게임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됩니다. FPV드론은 제자리 정지비행, 즉 호버링 기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론을 수동으로 마음껏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FPV드론의 최대속도는 150km/h를 넘고 최대 4km 높이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게 국내 FPV드론 1세대 실력자 중 한 명인 임종덕 씨의 말입니다. (하지만 관련 법규에 따른 고도제한이 있습니다) FPV드론 경력 9년 차인 임 씨는 세계 최고의 드론 제작업체인 DJI의 완제품을 사지 않고 부품을 따로따로 구입해 수제 FPV드론을 만들어 날립니다. 임 씨를 찾아가서 영화 "앰뷸런스"에 나왔던 영상과 비슷하게 재현해봤습니다. 비행에 사용한 드론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고프로10의 외장을 벗겨내고 본체만 실은 무게 650g가량의 5인치 드론입니다.


(영상편집 장현기, FPV드론 조종·화면제공 임종덕)

영상을 보시면 알겠지만 임 씨의 FPV드론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비행했고, 좁은 장애물 사이도 가뿐히 통과했습니다. 전에 임 씨가 촬영했던 555m의 롯데월드타워 다이브 영상(수직상승했다가 수직하강하는 FPV드론기술)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움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지 않은 FPV드론을 영화에서 적재적소에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또 다른 영화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연못에 빠뜨린 드론만 30대, 부서뜨린 고프로 카메라만 20대 정도 된다는 임 씨는 FPV 드론 조종으로 넘어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반 드론으로 영상을 촬영하다가 FPV가 나와서 한번 해봤는데 매력이 완전 다른 거예요. 예전에 찍던 드론 영상은 그냥 하늘로 올라간 느낌이면 얘는 정말 다이나믹한 청룡열차를 타고 있는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컨트롤이 안 돼서 너무 힘들었는데, 하다 보면 스릴이 넘치고 심장이 막 터질 것 같은 거예요. 새가 돼서 나는 느낌 또는 번지점프를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느낌? 그런 느낌 때문에 하는 거죠."

영화예술이 개척해온 새로운 시각적 경험
영화예술은 인간 시각 경험의 한계를 극복해왔습니다. 아니, 새로운 영상 기술을 선도해 인간 시각 경험의 폭을 넓혀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탄생 초기의 무성 흑백영화가 유성 컬러영화로 진화하고, 수퍼임포즈로 자막을 영상에 띄우고, 와이프 아웃(wipe out) 같은 각종 화면 전환 효과를 포함한 편집으로 시간적 한계도 뛰어넘었고, 20세기 중반에는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를 개발해 인간의 시야에 가까운 화각의 영상을 제공했으며, 달리와 크레인, 스테디캠 등의 장비를 도입해 동적이면서도 유려한 시점의 이동을 체험하게 해주었습니다. 또 21세기 들어서는 "아바타" 같은 3D 영화를 선보이고 각종 VFX로 인간의 상상력이 미치는 모든 장면을 실제 영상으로 구현하는 한편, 마치 나는 새의 시점에서 보는듯한 카메라 워킹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CG가 발달하다 보니 대규모 몹씬이나 폭발씬, 멋진 뒷배경등은 오히려 실사로 찍는 게 더 희귀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FPV 드론은 실제 촬영으로도 CG 같은 카메라 워킹을 가능하게 합니다. 드라마 "시지프스"와 "정글의 법칙" 같은 예능에서 드론 촬영을 맡았던 임종덕 씨에 따르면 FPV 드론이 이제 우리나라는 물론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막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FPV드론에 고화질의 DSLR카메라도 얹을 수 있게 되면서 8K까지도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임 씨의 얘기입니다.

언제부턴가 천당과 지옥, 미래세계, 우주공간처럼 실제 촬영이 어려운 공간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하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시각적 체험' 자체에만 기대는 영화가 너무 많아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제약과 한계가 상상력을 만들고, 그러한 한계를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면서 발전하기도 하는데 모든 것을 CG로 해결하려고 하는 건 아닌가 싶은 거죠. FPV드론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CG가 아닌 실제 촬영이 제공하는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적재적소에만 활용하면서 영화의 본질에 주목하는 영화가 더 많았으면 합니다. "앰뷸런스"에서 쓴 드론 장면 중 어떤 부분은 꼭 필요해서 썼다기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보여주기의 느낌도 있었다는 점을 언급해 둡니다. SF 거장 아서 C. 클라크는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같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너무 많은 마법은 그 자체로도 지치고 현실을 외면하거나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믿고 보는 감독'리스트에 CG를 자신의 영화의 핵심구성요소로 삼은 감독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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