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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78억 꿀벌이 사라졌다…원인은 '월동 실패'

<심영구 기자>

1.5cm 크기의 이 작은 꿀벌들.

꿀 생산뿐만 아니라 여러 작물들의 꽃가루받이에도 도움을 주는 귀중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지난겨울, 이 꿀벌들이 사라지는, 그것도 대규모로 실종되는 사태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습니다.

경기도에서 12년째 양봉업을 해온 정태구 씨.

지난 2월, 벌들을 깨우기 위해 벌통을 열었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정태구/양봉 농민 : (벌통을) 열어봤더니 황당한 거죠, 벌이 없으니까. 아,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저희 벌의) 3분의 1만 살아있다고 봐야죠.] 

벌통 250여 개 대부분이 비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벌들도 많이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정태구/양봉 농민 : 이 상황으로 봐서는 (꿀 따러) 나갈 자격군이 없어요. (다른 벌들과) 합쳐야 되지 않나. 자체적으로는 못 나가요.]

정 씨뿐만이 아닙니다. 

[박명준/양봉 농민 : (월동 들어갈 때) 생각한 거에 10% 밖에 안 남은 거예요. 벌 자체가 그냥 없어져버린 거예요.] 

지난겨울이 보내면서 전국에서 39만 봉군, 약 78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졌다는 게 정부 추산입니다.

꿀벌 집단 실종은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뒤 벌 집단이 사라졌다는 뜻으로 '군집 붕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원인은 아직도 규명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집단 폐사가 처음 확인됐고, 2011년에는 농약, 2012년에는 일부 지역에서 공사장 소음과 진동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이번 원인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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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희 기자>

모든 피해 농가 벌에서 날개불구바이러스가 검출됐습니다.

일부 농가에서는 다른 바이러스도 5종이나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바이러스가 주요 원인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바이러스가 있다고 무조건 발병하는 게 아닌 데다, 사체가 광범위하게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약 피해도 적잖게 나왔지만, 농약과 무관한 실종 지역도 많았습니다.

농약에 중독된 벌은 혀를 내밀고 죽는데, 이런 사체가 많지 않았습니다.

공사 소음이나 진동 역시 일부 지역에 피해를 줄 수는 있어도, 전국적인 꿀벌 실종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피해 벌통을 정밀 조사했습니다.

1월 말에서 2월 초 사이에 수거했는데, 정상 벌통과 뚜렷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번데기 방 때문입니다.

겨울철 벌통에는 번데기가 없어 깨끗해야 하지만, 지난겨울에는 여왕벌이 알을 낳아 방 입구가 채워졌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수거한 벌통에는 번데기가 가득해 겨울 산란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대근 연구원/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벌이) 나올 수가 있는데요. 겨울철에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적정한 시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번데기를 만들지 않고요.]

경북 구미에서 수거한 벌통입니다.

번데기 방이 텅 비었는데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애벌레 사체만 남아 있습니다.

이상 고온에 알을 낳기는 했는데 갑자기 추워지면서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겁니다.

벌들의 월동 실패로 추정됩니다.

[최용수 연구관/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 온도 편차가 심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크고, 또 그게 일벌 개체가 받는 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 종족을 계속 유지시켜 나가는 후대 양성인 발육 단계에서도 쇼크를 받을 수가 있는 거죠.]

알이 번데기 단계까지 자랐다 해도 기생충인 응애가 달아 붙어 성장을 방해했습니다.

[김주경 연구원/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 타원형 이게 꿀벌 응애예요.]

응애는 벌의 몸에 붙어 체액을 빨아먹고, 질병을 옮깁니다.

모든 벌들이 다 실종된 건 아닙니다.

철저한 응애 방재와 온도관리가 잘된 벌들은 이렇게 겨울을 잘 버텨 냈습니다.

겨울철 벌통 온도를 10도 이상으로 유지해주고 설탕물을 먹이로 공급했던 벌들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촌진흥청은 이상 기후를 꿀벌 실종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했습니다.

지난 한 해 날씨는 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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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균 기자>

작년 한 해 기온을 살펴보겠습니다.

봄에는 유난히 기온이 널뛰었습니다.

3월에는 고온현상으로 서울의 벚꽃이 관측 사상 100년 만에 가장 빨리 피었고, 5월에는 반대로 저온현상이 나타나면서 설악산에 15cm 이상의 폭설이 쏟아졌습니다.

이런 들쑥날쑥한 날씨탓에 봄꽃도 영향을 받았는데요, 특히 벌들의 주 양분이 되는 아까시나무 꽃이 문제였습니다.

남에서 북으로 순차적으로 피어야 벌이 옮겨 다니며 꿀을 따는데, 한꺼번에 개화하면서 꿀 수확량이 평년의 30% 수준에 그쳤고 그만큼 벌이 먹을 꿀도 줄어들었습니다.

여름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힘을 쓰지 못하면서 39년 만에 7월에 장마가 시작됐고, 기간도 평년대비 2주나 짧았습니다.

6월이 고온 건조해지면서 7~8월에야 나타나는 응애도 초여름부터 기승을 부렸습니다. 

결정타는 11월과 12월이었는데요.

벌들은 기온이 14도를 넘으면 활동이 활발해지는데, 앞서 살펴본 구미와 고흥 지역은 11월 낮 최고기온이 14도를 넘은 게 19일이나 됐습니다.

이상 고온에 벌들이 깨어나 때 이른 산란을 하면서 집단 폐사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이상 기후만으로 이번 꿀벌 실종 사태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꿀벌을 점점 더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영상취재 : 김원배·김승태, 영상편집 : 윤태호, 디자인 : 최재영·심수현·조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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