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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냉전' 시대 몸집 불리는 일본…한국의 안보 전략도 시험대

일장기

오커스(AUKUS), 일본에 참가 제안?

 
일본 정부 깃발

어제 아침부터 외교가의 주목을 받았던 뉴스가 있었습니다. 미국, 영국, 호주의 군사 안보 동맹 오커스(AUKUS) 3국이 일본에 오커스 참가를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타진했다는 일본 산케이 신문의 보도입니다. 이를 인용한 국내 보도도 이어졌는데 이후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는 보도 내용을 곧바로 부인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 특히 아베 전 총리 세력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내 산케이 신문의 위치를 생각하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한 해당 보도를 완전히 없는 얘기를 만들어낸 걸로 보긴 어렵단 얘기도 일각에선 나옵니다. 보도를 접한 외교부에서도 현지 공관을 통해 일본 정부 내 분위기를 살피며 진위 파악에 부심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 내 '아베파' 쪽에서 흘러나온 얘기일 가능성을 꼽고 있습니다.

오커스는 외교 안보와 관련된 사이버 공격 대응,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기술 분야 협력, 정보 공유 등을 추진하는 동시에 호주의 핵추진잠수함 개발과 보유를 지원하는 군사 안보 협의체입니다.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면서 요격도 어려워 '게임 체인저'란 평가를 받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도 협력하기로 이달 초 발표해 "아시아판 나토냐"는 중국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산케이 신문도 바로 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오커스가 일본의 기술력을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日 국방력 증강 본격화…'자위대원 늘리겠다

오커스는 출범한 지 채 1년도 안 됐지만, 이처럼 논의되고 있는 협력의 수준을 놓고 보면 비교적 강력한 군사 안보 협의체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중국 견제'라는 목표도 상당히 뚜렷합니다. 그런 만큼, 명목상으로나마 '평화헌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이 오커스 참여 제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도 들었습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원칙적으로 전수방위(공격을 받을 때만 방위력 행사)를 하고 있는 일본이 오커스 정도 수준의 다자 군사 동맹에 들어가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참관의 형태는 가능하겠지만, 오커스에 정식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일본으로선 국내외적 제약을 뛰어넘기 어려워 보인다"고 산케이 신문 보도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한 외교 소식통도 "오커스 자체가 아직 발족 6개월 밖에 안 돼 조심스럽게 협력 분야를 설정해나가는 상황으로 안다"며 "일본에 참가를 제안했단 보도는 예상치 못한 소식이고 지금으로선 신빙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고 평했습니다.
 

군사·외교 국제사회 주도권 회복하려는 일본

하지만 최근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외교, 군사적 영향력을 키우려고 하는 일본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을 적극 이용해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높이는데 일본이 주력하고 있는 만큼, 오커스 참가 제안이 있었다는 정부 소식통 발언을 인용한 보도도 그 일련의 흐름의 하나로 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아베 전 총리 재임 시절 비록 평화헌법 수정에는 실패했지만, 더 이상 방어에 국한되지 않고 동맹국들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안보법제를 도입했습니다. 2015년엔 평화헌법에 대해서도 이 같은 취지의 새 유권 해석을 내리면서 집단 자위권 행사의 길을 열어뒀습니다. 이번 보도에서도 아베 전 총리 이래로 이어진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베 개회식 불참

실제로 일본은 최근 몇 년 간 양자·다자 군사 훈련을 늘려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2015년부턴 쿼드 국가들과 함께 합동 해상 훈련을 펼치고 있고요. 미국 뿐 아니라 일본, 영국, 최근엔 중국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호주와도 공동 군사훈련 협정을 맺고 연합 공중훈련을 펼치는 등 양자 군사 훈련을 늘려 가고 있습니다. 지난 해엔 미국, 일본, 프랑스, 호주 4개국과 일본 앞 바다에서 중국을 겨냥해 연합 상륙 훈련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기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수 방위 원칙이 있긴 하지만 아베 전 총리 이후로 실질적으로는 공격적인 훈련들도 잇따라 시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화헌법은 거의 와해된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비군사 분야에서도 주도권을 잡으려는 일본의 움직임은 두드러집니다. 미국이 빠진 아시아 태평양 다자 자유무역협정 CPTPP도 일본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데다, 세계 해상 보안 기관 회의, 태평양 도서국 회의도 모두 일본이 주도해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독도 등 일본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간과할 수 없는 회의체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선 러시아를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향한 연대의 목소리도 적극 내고 있는데요,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최근 폴란드를 방문해 난민 20여 명을 전세기에 태워 오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간 일본이 난민 수용에 가장 폐쇄적인 정책을 갖고 있는 국가로 손꼽혀 왔던 걸 생각하면, 존재감을 높이려는 계산된 행동으로 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외신에서도 이런 흐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에선 지난 12일 일본 정치권이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재무장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보도(NYT<With Threats All Around, Japan Moves to Shed Its Pacifist Constraints>)를 내기도 했는데요. 일본이 우크라이나에 방탄조끼와 방한복, 천막, 카메라, 비상식량, 발전기 등 비살상용 군사 장비를 제공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일본은 군사물자 수출 허용 규칙인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지침까지 수정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결정했는데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이 제공한 공수 물자에 비견할 순 없지만, 이번 군사 물자 원조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헌법에 새긴 '평화주의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있어 '결정적 순간'이 될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일본이 "적국의 미사일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질 수 있는지(적기지 공격 능력)"를 놓고 국내에서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일본은 왜?…우리의 전략은?

일본의 이 같은 적극적인 움직임의 이유가 뭘까요.
일장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우선, '적극적 평화주의'를 주장하며 국제사회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아베 정부 때부터 시작된 일련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입니다. '인도 태평양 전략'을 미국이 처음 꺼내 든 용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사실 일본 아베 전 총리가 처음 만들어 낸 용어입니다. 아베 전 총리는 2007년 인도 국회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을 함께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 이래로 2016년 8월 제6회 아프리카 개발회의 기조연설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구상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안정과 번영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성장 추세가 현저한 아시아와 잠재력이 풍부한 아프리카라는 2개 대륙, 그리고 자유롭고 열린 태평양과 인도양이라는 2개 해양"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법의 지배에 근거한 자유롭고 열린 질서를 실현하고 활발한 경제 사회 활동을 촉진함으로써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개념을 꺼내 들어 일본이 국제 공헌을 확대해 미국과 별도로 국제질서와 국제규범 형성을 주도하겠단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여기엔 미국에 대한 일본의 불안감도 녹아 있다고 전문가는 평합니다. 미일 동맹이 약화되거나 아시아 태평양에 대한 관여를 후퇴시킬 때를 대비해 미국을 제외한 다양한 국가들 간의 안보 네트워크를 확대해 이를 보완하겠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때문에 동맹에 의존해선 안 된다, 자체적인 억지력을 갖겠다는 의지가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분출됐다고도 했습니다. 올해 일본 내에서 ‘방위력의 발본적 강화’를 강조하며 GDP의 1% 이내로 묶인 방위 예산을 크게 증액하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범 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통국가'가 되겠다는 일본 정부의 집요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외교 전략을 세울 것이냐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화로 세계는 신냉전 질서로 재편되고 있고, 일본이 각종 군사적·비군사적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틀어 쥐고 세력 확장을 해나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선 새 정부가 출범합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지금의 국제 정세를 두고 "하루 하루의 모습이 생물처럼 바뀌고 있는 그야말로 변화의 한복판"이라며 "외교 전략을 짜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새 정부는 쿼드의 분야별 워킹 그룹 참여 의지도 밝히고, IPEF에도 적극 참여하겠단 의사를 밝히면서 일단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인도 태평양 전략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의 강화로 북한의 전쟁 억지력을 강화하겠단 의지겠지만, 인도 태평양 전략이 명확히 중국 견제의 성격을 띠고 있고, 중국도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만큼 남북 관계 해결을 위해 중국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선 대중 관계 설정이 차기 정부의 중요하고도 골치 아픈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과 대화의 여지를 남겨 두기도 어려워질 수 있겠습니다.
2021년 쿼드 첫 대면 정상회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기태 연구위원은 "지금의 세계 정세 속에 인도 태평양 전략에서 빠지는 것은 한국이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인도 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균형 잡힌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도 태평양 전략의 용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 일본의 예를 들었습니다. 일본은 아베 전 총리가 당초 들고 나왔던 '인도 태평양 전략'에서 '인도 태평양 구상'으로, 지금은 '구상'이란 용어도 빠져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FOIP)'으로 용어를 외교적으로 변주 해 오며 대중국 견제의 색채를 약화시키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한쪽의 질서에 편입하는 동시에 다른 쪽과도 우호적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 게 너무 어려워 진 신냉전 시대의 초입입니다. 새 정부에게 창의적인 외교적 묘수가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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