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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투쟁 방향 놓고 갈등' 김원봉 사료 공개

<앵커>

[가 선생께 전하시오.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에서 강렬하게 등장하는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하며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섰지만 해방 후 월북한 전력으로 논란이 돼 온 인물입니다. 그런데 과거 김원봉과 중국 정부 실력자 사이의 대화 내용이 남아있어서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됐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아 공개된 자료인데, 베이징 김지성 특파원이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 1944년 2월 약산 김원봉이 중국 정부 실력자인 국민당 비서장 오철성과 나눈 대화 기록입니다.

김원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소수가 장악하고 있는 정치 기구로, 소수의 교민을 대표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일제 시라카와 대장 폭사 사건, 즉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언급한 뒤 "교묘한 수단으로 이익을 취하는 행동이다, 진정한 혁명가는 쓰지 않는 수단"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은 중요 인사 한두 명이 암살됐다고 국책을 바꾸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1994년 2월 약산 김원봉과 국민당 비서장 오철성의 대화 기록

당시 임시정부에는 백범 김구 계열의 한국독립당과 김원봉 계열의 조선민족혁명당이 공존하던 상황.

김원봉은 이런 논리를 들어가며 조선민족혁명당에도 별도의 활동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중국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박다정/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연구원 : 임시정부가 국제적 승인을 받기 위해서 통합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임시정부 내부의 당파 분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열단장을 지내며 23차례 폭탄 투척과 요인 암살을 주도했던 김원봉이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비판한 건데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이끌고 광복군에 합류한 상태였습니다.

[김원봉 (조선의용대 선전 영상) : 만주로 들어가 우리는 조선혁명군과 연합해서 우리의 조국으로 진입하려 하는 것입니다.]

김원봉 연구 학자들은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투쟁의 한계를 느껴 군대를 조직해 조직적인 투쟁으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윤봉길 의사 폄하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김구 계열과 김원봉 계열은 항일 노선과 사상적 차이, 활동 자금 배분 등을 놓고 갈등을 빚었습니다.

임시정부가 국제 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주된 이유로 임시정부의 내부 분열을 꼽은 중국 국민당 문건도 새로 공개됐습니다.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아 처음 공개한 자료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취재 : 최덕현, 영상편집 : 전민규, CG :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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