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자기 전 약 하나씩…그 다음 날이면 옆에 숨져 있었다"

국가의 하층민 감시 통제 네트워크 보고서 ②

[취재파일] "자기 전 약 하나씩…그 다음 날이면 옆에 숨져 있었다"
"담석 제거 수술을 하고 나서 배변 활동이 안 되는 부분 때문에 굉장히 고생하시다가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게 매일같이 자기 전에 약을 하나씩 줬다고 하는데 그걸 먹고 나면 다음 날 사람이 옆에 죽어 있고…."

오충빈 씨는 지금도 1983년 여름 출근길에 나선 어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던 어머니는 24년 만에 한 수용시설에서 발견됐습니다. 가족 품에 돌아왔지만 복수가 찬 듯 배가 불러 있었고, 남은 치아는 서너 개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소화기관이 망가져 배설 활동에 어려움을 호소하다 3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 씨는 정신과 약의 부작용이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니가 어떤 약을 얼마나 처방받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과거 수용시설 내부 기록을 들여다볼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강제 입소 피해자 사진

기록으로 드러난 약물 남용…의문의 사망 기록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던 수용시설 내부 정신질환 약물 처방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SBS '끝까지판다'팀이 단독 입수한 <집단시설 인권 침해 실태 조사 연구용역 사업> 최종 연구 결과를 살펴봤습니다. 연구진은 수도권과 강원권 5개 수용시설에서 확보한 진료기록을 분석한 결과, 정신질환 진단이나 약물 처방이 손쉽게 남용될 수 있는 구조였다고 지적합니다.

1989년 8월 경찰에게 행려자로 단속돼 수용시설에 입소한 24세 남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적장애 외에 다른 이상 소견이 없었지만, 곧바로 진정 수면 효과가 큰 항정신병 약물 '클로르프로마진'을 처방받았습니다. 입소 초기 "스스로 할 일은 스스로 처리해 나간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남성, 조현병 증세를 보여 다음해 3월 재단 내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뒤 약물 처방을 받으며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기록을 들여다보니 5월에는 "병실에서 대부분 누워 지내며 식사, 대소변 등 다른 사람 도움을 받고 지낸다", 10월에는 "거의 움직임 없이 침대에 누워 지내고 묻는 말에 대답이 없으며 눈은 반쯤 감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스스로 할 일을 할 수 있던 20대 청년이 1년 만에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겁니다. 연구진은 정신질환을 지닌 입소자에 대한 약물 치료와 관리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합니다.
 
"클로르프로마진이 시설에 입소했을 때 적응하지 못하고 항의하는 분들을 안정적으로 잠재우기에 좋은 약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약을 적은 용량이지만 처음부터 많이 사용했던 것들이 의무기록에서 확인됐습니다. 이렇게 한번 처방된 약은 관리의 편의성도 있고 제대로 된 관리와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반복 처방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남성의 사망 기록도 뭔가 이상합니다. 입소 1년 5개월 만인 1991년 1월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뒀는데, 사망진단서에는 직접사인 '심폐정지', 중간선행사인 '패혈증', 선행사인 '기질성뇌증후군'과 함께 '정신분열증(조현병)'이 적혔습니다. 의무기록에 나오지 않던 기질성뇌증후군이 갑자기 등장한 데다, 무엇 때문에 감염돼 패혈증이 생겼는지 그 이유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 연구진의 지적입니다. 침대에 계속 누워있는 상태에서 음식물이나 침이 기도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켰을 가능성 등을 추정해볼 수 있지만, 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클로르프로마진 반복 처방 기록

증상은 변비뿐인데…퇴원 이틀 만에 숨졌다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인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수용시설 기록과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합니다. 바로 정신과 약물의 부작용이 사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입니다. 당시 조현병 환자에게 처방된 클로르프로마진이 남용될 경우 신체 활동을 감소시키고 만성 변비를 악화시켜 장괴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정신과에서는 약의 장기 복용으로 인한 변비가 장괴사와 패혈증, 쇼크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복부 엑스레이를 촬영하는 등 환자의 배변 활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시설에서 나온 인터뷰 증언에 따르면 '똥 차서 죽는다' 이런 표현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실제 현재 정신병원에서는 그 약에 의해서 변비가 생기고 변비로 인해서 장 괴사로 사망하는 경우들이 드물지 않게 보고가 되고 있는 것을 판단한다면, 이 약물에 의한 부작용이 똥 차서 죽는다고 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1990년 8월 사망한 57세 여성 수용자의 사례는 더욱 극적입니다. 복통을 호소해 병원에 데려갔더니 "특이 소견이 보이지 않고 변을 못보다 심한 복통을 일으켰을 뿐"이라며 퇴원시켰는데, 수용시설에 복귀한 지 이틀 만에 숨졌습니다. 클로르프로마진을 반복적으로 처방했던 시설 행태를 고려하면, 이 사례 역시 약의 부작용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변비 증상 퇴원 후 사망 기록

사인이 될 수 없는 조현병…사인이 된 이유

조현병은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수용시설 내부 사망 기록에는 조현병이 종종 등장합니다. 직접사인에 사실상 사망의 결과인 '심폐정지'를 적은 뒤, 중간선행사인과 선행사인에 각각 '쇼크사'와 '조현병'을 적는 식입니다. 이 경우 알 수 있는 것은 조현병 환자가 갑자기 쇼크로 숨졌다는 사실뿐, 대체 왜 그런 쇼크가 있었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물리적 폭력과 같은 사망 원인은 은폐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실제 서울의 수용시설 피해자들은 "정신이 약간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이유 없는 기합과 구타의 대상이 됐다고 말합니다. 또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방에는 누군가 바닥에 똥을 싸도 그대로 뒀고 이들을 따로 돌봐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수용자들의 죽음이 사실상 방치된 정황입니다.
 
"장애인 방은 좀 크더라고. 이게 왜냐하면 워낙 그렇게 좀 맞고 잘못되고 이렇게 환자들이 많으니까. 심지어 만약에 여기서 아파서 병이 걸리거나 그러면 치료를 해야 되잖아. 전혀 그런 것도 없었어요. (그럼 거의 누워 있고 이러겠네요?) 저 누워 있다가 간질에 그냥 숨 넘어가고. 뭐 그리고 꼼짝 안 하면 뭐 이렇게 밖으로 데리고 가는 것까지는 제가 봐요."

다른 시설의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도권 한 수용시설의 경우 한 방에 모인 인원은 무려 80명. 정신질환이 없던 이들도 삶의 의욕이 극히 저하된 소위 '시설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함께 운영된 정신병원에서는 한 병실에 40명의 환자를 수용했는데, 이들을 관리한 직원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환자 관리가 제대로 됐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 수용시설에 갇힌 이들의 죽음을 얼마나 앞당겼는지는 사망자 기록을 통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용시설 내부 사망률은 당시 성인 사망률의 최대 30배에 달했고, 남성 수용자는 최대 18년, 여성 수용자는 최대 28년 조기 사망했습니다. 이런 '조용한 살인'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설 내에서 폭력 이외에 영양 상태나 진료, 처방의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졌는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전혀 그 책임 여부를 묻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명확한 직접 폭력, 살인 이런 것들이 규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죽은 사람들이 죽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허망하게 죽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반드시 국가가 나서서 들여다보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국가기록원 자료사진

※ 이 기사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의뢰한 <집단시설 인권 침해 실태조사 연구용역 사업>의 최종 연구 결과와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김재형·추지현·김관욱 교수와 여준민·이묘랑 활동가, 김일환·황지성 박사, 심국보 박사과정생이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 [끝까지판다] "그들은 악마" 여전히 생생한 그곳의 기억 (풀영상)
▶ [취재파일] ①이것은 잔혹한 그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창문일지도 모른다

(취재 : 정반석, 원종진, PD : 김도균, 영상취재 : 김태훈, VJ : 김준호, 제작 : D콘텐츠기획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