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먹거리도 아이 기저귀도 떨어졌어요"…상하이 교민들의 호소

[월드리포트] "먹거리도 아이 기저귀도 떨어졌어요"…상하이 교민들의 호소
"쌀은 없고, 라면은 이제 한 개 남았네요. 휴지도 거의 떨어졌습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은 이 말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지난 1일 격리 시작 후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정부 지원 물품을 받았는데,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당근 한 개와 배추, 양배추 각 한 포기였습니다.

"상하이 '푸시(浦西)' 지역은 4일까지만 봉쇄한다고 했잖아요. 학생이다 보니 조미료, 조리기구가 거의 없어서 라면만 준비했는데 봉쇄가 이렇게 연장될 줄 몰랐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쓰는 쉐어하우스에 있는데 지원 물품은 거주자 기준이 아니라 가구 기준으로 나왔어요. 룸메이트 통해 공동 구매에 간신히 성공하긴 했는데 언제 올지가 걱정입니다."

* 정부 지급 물품 (상하이 교민 제공)

중국의 '경제 수도' 상하이는 지난달 28일 동쪽 지역인 '푸둥(浦東)'부터 봉쇄에 들어갔습니다. 검사를 할수록 급증하는 코로나19 감염자에 동서를 나흘씩 봉쇄할 것이라는 약속은 물거품이 됐고, 2천5백만 명의 주민들은 10일까지 14일째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끊임 없이 길어지는 봉쇄 속에 식량 공급이나 의료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인내는 바닥이 나고 있습니다. 쑹장(松江) 등 상하이 일부 지역의 주민들은 "먹을 것을 달라", "한번도 물품 지원을 받지 못했다"며 '중국에서는 이례적으로' 단체 항의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식료품 구하는데 매달려…기저귀도 못 구해"

상하이에는 주재원과 유학생 등을 포함해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 우리 교민들이 있습니다. 제가 통화한 10여 명의 교민들은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오전 5~6시쯤 시작되는 온라인 주문 때문입니다. 식료품과 다른 생필품도 살 수 있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23개월 된 유아를 키우고 있는 한 교민은 기저귀와 우유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온라인 주문에도 물량이 없다고 나오거나, 미리 기저귀와 우유를 구매 카트에 담아 놓고 다음날 판매 시작하자마자 구매하려 해도 들어가지지 않으니 방법이 없어요. 주민 위원회에 얘기하면 '극복하라'는 말만 하네요. 우선 기저귀는 동냥해서 입히고 있고, 우유도 성인 우유로 바꿨어요."

* 제공받은 식료품 상태 (상하이 교민 제공)

그나마 식료품은 주거 단지나 구역별로 다 함께 물건을 사는 '공동 구매'를 이용하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교민들에게는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상하이에서 회사에 다니는 교민은 공동 구매를 위해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습니다. "공동 구매를 하는 단체 대화방에 사람들도 많고, 대부분이 선착순입니다. 온라인 주문이 들어가지는지, 대화방에 공동 구매 공고가 올라오는지 계속 보고 있어야 해요. 재택 근무를 해야 하지만,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 당장 굶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상하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유학생이나 단기 주재원들의 어려움은 더 큽니다. 정보를 미처 듣지 못해 준비를 못했거나 중국어가 능숙하지 못해, 공동 구매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상하이의 한 대학교의 교환학생은 "공지도 없었고,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봉쇄가 시작됐습니다. 준비해 둔 것이 별로 없어서 처음에 정부에서 나눠준 식료품만으로 살았는데, 유산균 음료 3개도 지금까지 나눠 먹었어요."라고 힘든 상황을 전했습니다.
 

"한 달 넘게 격리…코로나 검사만 20여 차례"

상하이시가 공식적으로 봉쇄에 들어간 것은 지난달 28일이지만 일부 지역은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그 전부터 봉쇄가 시작됐습니다. 배우자가 한국에 다녀오면서 지난 2월 말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가 격리를 하고 있다는 교민은 이미 20차례 넘게 코로나 검사를 받았습니다. "밤 12시고 새벽 6시고 문 두드리면서 PCR 검사나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도 단지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PCR 검사 받다 감염될까 걱정도 됩니다."

중국 코로나

교통편이 모두 끊기면서 집에 가지 못하거나 귀국을 못할까 걱정하는 교민도 있었습니다. 한 교민은 입국자 격리 호텔에서 지난달 28일 집에 갈 수 있게 됐는데, 그날 봉쇄가 시작되면서 이동이 금지됐습니다. 호텔에서도 식료품 재료가 부족해지면서 귀가하라고 하지만 거주지와 호텔이 다른 구(區)에 위치해 있다 보니 교통편을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국 항공편을 예약한 교민은 공항까지 갈 방법을 찾지 못해 예약 변경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봉쇄가 길어지거나 항공편 좌석이 부족하거나 갑자기 취소될 수도 있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과 집중 격리 공포"

상하이 코로나19 치료 병원에 있는 한 교민과 통화가 이뤄졌습니다. 이 교민은 신속항원검사 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지난달 말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병원 환경은 몰려드는 환자들로 가득했고 치료나 식사, 물 공급도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교민은 다른 것도 걱정해야 했습니다.

"병원 상황도 좋지 않지만, 며칠 있으니까 같은 날 입원한 중국인 한 분을 '팡창 의원(임시 치료 및 격리 장소)'으로 데려가더라고요. 간호사는 저도 갈 수 있다고 말했어요. 상하이시가 별도 격리 시설을 여러 군데 만들어서 무증상이나 경증 감염자, 밀접 접촉자들을 보내고 있잖아요. 그런데 치료가 아니라 관리 목적이고 열악한 곳이 많다고 하다 보니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죠."

* 상하이 코로나19 치료 병원 (상하이 교민 제공)

지난달 이후 상하이에서 격리 시설로 보내진 사람은 감염자와 밀접 접촉자를 더해 3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한 건의 코로나 감염자도 없애겠다는 '제로 코로나' 정책 아래 감염자 등을 한 곳에 몰아 넣어 더 큰 확산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인들도 격리 시설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기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간 지내야 한다는 것에 공포감을 느끼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는 집중 격리보다는 자가 격리가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교민들의 걱정은 더욱 큽니다. 상하이시는 감염자 집중 격리를 시작하면서 미성년자라도 본인이 감염됐거나 부모가 감염되면 따로 떨어져 격리하도록 했습니다. 중국 내부 비판 여론과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관까지 공식적으로 반발하면서 일부 완화되기는 했습니다만, 제대로 지켜질지 교민들은 걱정하고 있습니다.

* 부모와 격리된 영유아들 (출처 : 중국 웨이보)

"기업들 피해도 눈덩이…상하이 교민 상황에 관심을"

전면 봉쇄로 상하이의 모든 기업과 상점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농심과 오리온 등 국내 대기업들의 생산이 중단됐지만, 현지에서 중소기업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교민들도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상하이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한 교민은 손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하소연할 곳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희 공장만 하더라도 2주 넘게 가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 모두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들도 마찬가지지만, 교민들 피해 상황을 모아서 상하이 당국에 전달하면 조금이나마, 아니면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죠. 그런데 한국 외교부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파악하는 곳도 없습니다."

지난 7일 외교부는 주상하이 총영사관을 중심으로 상하이 교민과 기업 지원을 위한 TF를 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교민, 기업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상하이 당국과 연락하면서 중단된 조업을 조기에 재개하고, 물류 통행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긴급 물류 통행증' 발급 등을 요청하는 방식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했습니다.

중국 코로나

9일 상하이시는 구역별 봉쇄 체계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2,500만 주민에 대해 다시 한번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7일 이내 양성 판정자가 있는 지역은 '통제구역', 7~14일 이내에 양성 판정자가 있는 지역은 '관리통제구역', 14일 이내 양성 판정자가 없는 지역은 '방어지역'으로 구분합니다. 방어지역 주민은 속한 행정구 안에서 활동할 수 있고 슈퍼마켓 등 필수 업종 영업도 허용됩니다. 다른 지역들은 최소 7일간 자가 또는 단지 격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간표는 제시되지 않아 적어도 일주일 정도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일부 지역은 지금까지의 봉쇄와 격리 조치에도 계속 코로나 감염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교민들의 고통도 당분간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중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한 교민은 "저는 이웃 중국인과 물물교환도 하고 있고, 상당수 교민들은 이래저래 각자 살 방도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학생들이나 단기 체류로 오신 분들 상황은 심각합니다. 봉쇄 준비도 안돼 있었고 정보도 얻기 쉽지 않아요. 오죽하면 청와대 청원에 '상하이 유학생들을 도와달라'는 호소가 올라 왔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상하이 총영사관도 문을 열지 못하고, 몰려드는 각종 민원을 계속 처리하느라 정신 없겠지만, 교민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공식 계정에 지난 7일 저녁에서야 물품 구입 및 응급 의료시설 이용 안내가 올라왔어요."라며 한국 국민들과 외교 당국이 상하이 교민들 상황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