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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인현동 참사 생존자, "호프집 타이틀 떼어 달라…우리는 여전히 호프집에 갇혀 있다"

꼬꼬무
인현동 화재 참사 생존자들,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 1999 인현동 라이브'라는 부제로 인현동 화재 참사를 조명했다.

지난 1999년 10월 30일 인천 인현동 수연이와 진선이는 10대들의 아지트로 불리는 호프집 '라이브'로 향했다. 이곳은 신분증 검사 없이 10대들의 출입을 허용해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었던 것.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수연이는 잠시 지하상가로 가서 다른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최루탄 같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지상에서 불이 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것. 그리고 화재가 난 곳이 바로 조금 전까지 수연이가 있었던 호프집 라이브라는 이야기에 수연이는 급히 친구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소방관들은 화재 신고를 받고 곧장 라이브에 도착했다. 큰 불길을 잡은 후 건물 내부에 진입한 소방관들은 충격적인 장면에 경악했다. 닫혀있는 호프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많아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져있었던 것. 특히 화장실 안에는 사람 위에 사람 또 그 위에 사람, 수십 명이 뒤엉켜 있어 충격을 안겼다.

소방관들은 급히 사람들을 구조했다. 그리고 수연이가 찾던 진선이도 소방관들에게 실려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수연이는 진선이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이 화재 사고로 진선이를 포함해 총 57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3번째로 큰 화재 사고로 기록된 것.

그런데 이 사고는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사망자 한 명 빼고는 나머지 사망자는 모두 청소년들이었으며 3층 건물에서 사망자는 불이 시작된 지하 1층 노래방의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호프집에서 나왔던 것. 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불을 피하지 못했던 걸까.

사고 당일 지하 노래방에서는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됐다. 방염 처리된 우레탄 폼을 사용해야 하는 이 공사에서 업주는 돈을 아끼기 위해 방염처리가 안 된 우레탄폼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는 화재의 위험성이 매우 큰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지시한 업주는 노래방 사장이자 호프집 사장인 34세 정 씨. 그는 인현동 청년 재벌로 불리며 운영하는 가게만 8개에 달했다. 그리고 그의 업체 주 고객층은 청소년이었다.

정 씨는 번화가 한복판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신분증 검사도 안 하고 호프집을 운영했다. 학교 앞에서 홍보를 하기도 했고, 호프집을 이용하면 피시방 무료 이용권을 주는 등 활발한 호객 행위까지 했다. 이에 그가 운영했던 호프집은 청소년 전용 술집이 됐고 매일매일 손님들로 미어터졌다. 사고 당일에도 50평 남짓의 호프집에는 120여 명 정도의 손님들이 한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지하 노래방에서 10대 아르바이트생들은 인부들이 남기고 간 뒷정리를 했다. 인부가 남긴 시너 때문에 어느샌가 노래방은 유증기로 가득 찼고 이것은 아르바이트생의 라이터불에 바로 불이 번졌고, 순식간에 천장에 옮겨 붙었다. 이에 각층의 손님들은 급히 밖으로 탈출했다. 그런데 2층 호프집의 아이들만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처음 아이들은 어딘가에서 스며드는 연기가 호프집의 이벤트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다 불이라는 소리에 아이들은 황급히 출입문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누군가가 출입문을 막아섰다. 이는 바로 호프집 지배인이었다. 그는 돈을 내고 가라며 아이들을 막아선 것.

그리고 이어 들려온 폭발음에 문을 열자 이미 불길이 바로 문 턱까지 올라와 출입문을 열 수 없었다. 이에 아이들은 창문을 찾기 시작했지만 창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보면 창문인데 안에서 보면 벽이었던 것.

호프집 내부의 구조를 아는 지배인과 직원들은 사라졌고, 아이들을 어둠 속에서 나갈 곳을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그때 지배인은 홀로 환풍기를 뜯어내 탈출했다.

정신을 잃고 하나 둘 쓰러지는 아이들. 그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있던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출구를 찾았다. 그리고 이윽고 비상구 불빛을 발견하고 달렸다. 아이들은 비상구라고 생각한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곳은 비상구가 아닌 화장실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화장실에 도미노처럼 쓰러져 숨지고 말았던 것.

아이들이 그곳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호프집 사장은 곧바로 잠적했다. 그리고 수사를 통해 정 씨가 경찰, 공무원들과 유착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심지어 호프집수리는 경찰 간부가 전경을 동원해 지시하기도 했던 것.

사건 발생 5일 만에 자수한 정 씨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당당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믿을 구석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경찰과 공무원 무려 40명이 연루된 이 사건에 유족들은 분노했다. 이에 아이들의 영정을 들고 거리로 나서서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상했다. 유족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

사람들은 화재 사고가 아닌 청소년들이 호프집에 갔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날 그곳에 있던 아이들을 불량 청소년이라 비난했다. 그리고 유족들에게는 자식을 팔아 돈을 취하려는 파렴치한이라는 시선을 보냈다.

이에 유가족들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가족들을 위로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죽은 아이들의 친구들은 매일 부모님을 찾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는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시간이었다.

사고 90일 만에 치러진 합동 장례식. 유족들은 아이들의 유해를 바다에 함께 뿌렸다. 장례 후 보상급이 지급됐다. 그런데 사망자 중 한 명은 받지 못했다. 당시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지혜는 종업원이라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것.

사고의 책임자들에게는 호프집 사장 정 씨에게는 징역 5년, 혼자 도주한 지배인은 3년 6개월 형이 내려졌다. 그리고 뇌물을 받은 경찰과 공무원 중 실형 받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고 2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날 그곳에 있던 생존자 아이들은 어느덧 마흔 살이 됐다. 이들은 어렵게 용기를 내 마이크 앞에 선 이유에 대해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의 타이틀에서 호프집이라는 단어를 떼어달라고 그것만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은 여전히 호프집에 갇혀 있다며 이제는 차가운 시선을 거두어주기를 부탁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방송은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생긴 이러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빌며, 어른보다 어른스러웠던 아이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꿈꿨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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