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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정과 경제, '두 마리 토끼' 잡는 프랑스 비밀병기 '디지털공화국법'

[취재파일] 공정과 경제, '두 마리 토끼' 잡는 프랑스 비밀병기 '디지털공화국법'

윤석열 정부는 무슨 정부?…국민 바람은 '투명하고 공정한 정부'


오는 5월 10일 출범하게 될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출범한 6 공화국의 8번째 대통령 윤석열은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될까?

6 공화국 첫 정부 수장이었던 노태우 대통령은 냉전 시대의 틀을 깨고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국교를 맺은 '북방 외교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독재를 청산한 '문민정부',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민 개개인의 주권을 중시한 '국민의 정부', 노무현 대통령은 균형발전과 소외된 국민들의 주권을 강조한 '참여정부',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발전을 중시한 '실용정부', 박근혜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세우자는 '줄푸세',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외친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불행한 것은 지금까지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돼 취임한 6 공화국 7명의 대통령들 모두가 취임 초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지 못하고 '식물 대통령'으로 결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대통령 본인이나 친인척이 구속되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이라는 말도 나왔다. 새 대통령은 '용두사미'가 아닌 끝까지 국민들의 인기를 유지하며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국민적 여망이 큰 이유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 안철수)는 지난 3월 26일 오후 서울 창업허브컨퍼런스홀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부위원장,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인수위원, 전문위원 및 실무위원들이 참석했다.

윤 당선인은 모두 발언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며 우선적으로 시작해야 할 국정과제 선정에서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은 '실용주의와 국민의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부처 보고나 국정과제 도출과정에서 해당 분야만을 보기보다는 국가운영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는 인수위 활동'을 당부했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둘러 직접 발표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당선인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국정과제 선정 원칙으로 표방한 '실용주의와 국민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은 보라'는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말과도 거리가 느껴진다.

역대 대통령

20대 대통령 윤석열의 당선은 무엇보다 '조국 사태', '대장동 사건'으로 대표되는 투명하지 못한 국정 운영에 대한 불신과 불공정 사회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2022년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가장 큰 국정과제는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믿을 수 있는 사회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신뢰를 제고할 정책 방향 설정이 인수위원회의 과제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인수위원회의 모습에는 이런 국민적인 바람이 녹아들어 가지 못한 것 같다.

'사회적 신뢰'를 높이기 위해 새 정부에서 국민들이 보길 원하는 모습은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 그리고 정책 집행의 결과를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국민들이 참여하는 개방형 구조로 혁신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가 2016년부터 시행해 '사회적 신뢰 제고와 경제 발전'의 토대를 제공한 '디지털공화국법'은 새 정부에서 도입을 검토해봐야 할 '신의 병기'가 아닐 수 없다.
 

'실용주의와 국민의 이익', 베풀려 하지 말고 내려놔야 한다


지난달 26일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워크숍에서 배순민 KT융합기술원 AI2X연구소장은 '디지털 변혁, AI에서 메타버스로'라는 제목의 강의를 통해 4차 산업혁명시대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 로봇, IOT, 메타버스, 클라우드 컴퓨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수 있도록 인재를 육성하고, AI 관련 창업이 활성화하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2022년 대한민국에서 AI산업의 발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AI)은 엔진에 비유되고, 데이터는 원유에 비유된다. 대규모 원 데이터(빅 데이터) 없이는 AI가 학습을 할 수 없는 만큼, 데이터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는 똑똑한 AI를 개발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우리 정부는 2013년 '공공 데이터 포털'을 만들고, 정보 개방에 노력하고 있지만 '2020년도 공공 데이터 제공 운영실태 평가'에서 정부기관의 32%인 171개 기관이 최하 등급인 '미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공개하는 데이터가 구체적인 사례 중심이 아닌 통계 위주의 데이터인데다, 이용이 불편하다는 평가가 많다. 보건과 의료 데이터는 물론 정부의 각종 사업, 공식적인 법원 판결도 데이터 공개를 요청해야 받을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국회도서관은 2018년 4월 발행한 '외국 입법 정보 73-74호'에서 공공 데이터 개방 관련 대표적인 입법 예로 프랑스 디지털공화국법을 소개했다. 프랑스의 디지털공화국법은 '공익 데이터'라는 개념을 도입해 공공데이터뿐 아니라 공공기관의 업무와 관련되거나 공공기관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업무의 데이터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데이터에서 제외된 법원의 판결문까지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선서

국회도서관은 보고서에서 '법원의 판결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등을 위해 공개할 공익적 필요가 높은 분야이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최근 주요 판례와 상급심 판례 등에 한정되어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으며, 원심 판결의 경우에는 당사자의 적극적인 청구가 없으면 그 내용을 열람하기 어렵다. 법원의 판결을 프랑스와 같이 공익 데이터 범주에 포함시켜 그 개방을 의무화할 수 있다면 법조계에서는 더욱 신중한 판결을 내리고자 할 것이며, 연구자들도 보다 쉽게 판례를 찾아볼 수 있는 등 공익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법원 종합법률정보시스템에서 검색할 수 있는 판결은 대법원 판결의 9.75%, 각급 법원 판결의 0.19%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있다. 법원은 2023년부터는 확정되지 않은 민사 판결문까지 공개하고, 앞으로 미확정 형사 판결문의 공개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재 가장 대표적인 공익 데이터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법원 판결문 접근은 불편하고 공개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법원 판결문을 받아보려면, 해당 사건을 확인해 법원에 신청해야 한다. 판결문을 공개해도 좋다는 판사의 허가를 받더라고, 대부분 고유명사는 가리는 비 실명 처리를 해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 미국의 경우 PACER(Public Access to Court Electric Records, https://pacer.uscourts.gov/)에서 판결문은 물론 소송 과정에서 제출되는 모든 증거 자료도 실시간으로 보고 컴퓨터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다. 소송이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법률서비스 회사들은 물론 개인들도 보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 판결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고 법률서비스 회사들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모든 정보는 실명 공개가 원칙으로, 필요할 경우 판사의 허락을 받아 비 실명 처리를 할 수 있다. 재판정에서 일반 대중에게 접근이 허용되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무형 자산인 데이터는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인공지능이 4차 산업혁명의 '엔진'이라면 데이터는 '원유'에 비유된다. 데이터는 다른 데이터와 결합을 통해 보다 가치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특징을 갖는 만큼, 공공데이터와 민간데이터의 연계도 필요하다. 원하는 공공데이터를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포지티브 방식'이 아니라, 모든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를 의무화하되 필요할 경우 공개를 제한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도입이 필요한 이유이다.

'실용주의와 국민의 이익', 그것은 기득권을 내려 놓고 5년 동안 국정을 맡긴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득권을 확보한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 집단의 장벽을 뛰어넘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노력도 주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데이터의 공개와 활용, 개인정보의 보호, 인터넷서비스의 공공재적 성격을 규정해 기술발전을 주도하고 디지털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진화하고 있다는 프랑스의 디지털공화국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경제발전과 사회적 신뢰 제고, '두 마리 토끼' 잡은 프랑스 디지털공화국법


2016년 제정 발효된 프랑스의 '디지털공화국을 위한 법률(La Loi Pour Une Republique Numerique)'은 행정 법전, 소비자 법전, 통신 법전, 컴퓨터와 자유 법전 등 여러 법을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으로 데이터와 지식의 자유로운 유통을 통해 프랑스가 디지털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모두 4편으로 구성된 디지털공화국법은 데이터와 지식의 유통 촉진, 개인의 권리 보호를 통한 신뢰구축, 디지털서비스의 평등한 접근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1편은 데이터와 지식의 유통을 촉진하여 혁신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공공 정보에 더해 공익정보라는 개념을 명문화해 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시민에게만 주어졌던 정보공개청구권을 행정기관으로 확대했다. 모든 행정기관은 다른 행정기관이 요구하는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사인이나 다른 행정기관의 요청이 없더라도 행정 문서를 온라인에 공개하도록 했다. 행정기관은 확보한 정보를 원래 수집 목적 이외에 공무 수행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공정보가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민간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데이터의 경제적 이용을 적극 촉진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이전 공공데이터에 대한 인식이 민주주의의 차원에서 강조되었다면, 디지털공화국법은 공공데이터를 경제활동의 수단으로 재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2편은 개인정보보호라는 기본 원칙에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여러 시민권을 개념화했다. 디지털 사회에서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인 망 중립성, 데이터 이동권 및 회수권, 플랫폼 및 소비자 정보에 관한 신의 그리고 개인정보보호권을 규정함으로써 상호 신뢰와 사회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디지털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를 바꿀 경우 사업자가 상당한 정도의 데이터 보강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 개인 데이터를 다른 플랫폼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인터넷 사업자에게 공정성 의무를 부과해 온라인 정보의 신뢰도를 제고하는 조치도 의무화했다.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는 플랫폼 공정성의 원칙에 따라 소비자에게 온라인에서 제공되는 콘텐츠가 어떤 방식으로 제공되는지 그 운영 방식을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 특히 온라인 리뷰를 게시하는 운영자에 대해 그 정보에 대한 신뢰도 품질검사절차의 여부를 명시할 의무를 부과한다. 이러한 규제를 통해 소비자는 인터넷에 게시된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사용 후기의 신뢰성을 평가할 수 있다.

그밖에 온라인 자기정보통제권,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 미성년 시기에 올린 온라인 상의 자기 정보를 모두 삭제할 수 있는 권리(잊혀질 권리), 사망 후 자기정보통제권(디지털 사망)의 보장 등 개인정보보호권 및 통제권을 강화하였다. 보복 포르노의 처벌, 전자메일의 비밀 보장 등 구체적인 상황도 명시하고,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기존 개인정보보호 규제기관인 국가정보보호위원회(CNIL)의 법적 지위와 처벌 권한을 강화했다.

CES에 참가한 프랑스 스타트업

디지털공화국법 제3편은 사회적 약자 보호와 초고속 인프라 구축을 통해 모두를 위한 평등한 인터넷 기술을 구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생활 편의 개선 수단으로, 부동산 거래 간소화, 전자적 '수신확인' 및 결제 등을 용이하게 하고, 온라인 게임을 스포츠 및 산업 활동으로, 게이머는 직업으로 공식 인정하였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터넷 및 전화서비스 접근권을 명시하기 위해 인터넷 서비스에 공공재적 성격을 부여해 그 접근이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하는 기본권으로 자리 잡도록 했다. 4편은 프랑스 해외 영토에 대한 규칙을 담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 후보였던 프랑스와 올랑드의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권리 법제화' 공약으로 시작된 '디지털공화국법'은 개인정보 보호와 사이버 보안을 넘어 데이터 중심 스타트업 육성이라는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의 '신산업 정책'으로 확장됐다. 대내적으로는 디지털신산업 육성 정책이었고, 대외적으로는 선진화된 열린 정부 구현 정책이었다.

디지털공화국법은 법안 구상단계에서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 인터넷 사이트에 법안을 올려 놓으면 시민들이 의견을 달고, 정부가 답변했다. 정부가 시민들의 제안을 받아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하고, 시민들의 온라인 투표를 통해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했다. 인터넷을 통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산물로 디지털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한 길을 터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의 당선 이후 '디지털 민주주의와 시민참여'를 위한 플랫폼으로 연구와 발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쇼 CES에서 프랑스 기업들은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을 모은 '유레카 파크'를 점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AI, 드론, 로봇 등 첨단 분야 128개의 프랑스 스타트업이 유레카 파크에 나와 전체 스타트업의 30%가량을 차지했다. 이런 프랑스 혁신 기업의 성장에는 정보와 지식의 확산을 도모한 '디지털공화국법'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AI를 활용해 국민들이 요구를 말하지 않아도 척척 서비스해주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좋은 정부를 만들고,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경제성장도 이룰 수 있는 1석 2조의 프랑스 '디지털공화국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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