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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행 · 항공 수요 폭증하는데…우리 하늘길 "위험하다" 경고

현직 관제사들, 이름 걸고 증언

위드 코로나에 대한 기대감으로 여행 예약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날고 싶었던 항공기들도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이 걱정되는 사람들이 있다. 항공 안전의 최첨병에 있는 관제사들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언제라도 대형 항공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그들은 경고한다. 우리의 하늘길, 과연 어떻기에 공무원인 관제사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면서까지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
 

"3~4초만 늦었어도 대형 참사 일어날 뻔"

2017년 9월 29일 오후 3시 56분. 제주항공510편이 이륙하기 위해 시속 260km로 달리다 급정거했다. 전방에서 활주로를 횡단하던 군 항공기 드래곤610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간신히 멈춰 선 민항기와 군용기 사이의 거리는 불과 800m 남짓에 불과했다. 3~4초 사이에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한 순간이었다.



이 사고 보고서는 그동안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취재진도 일부만을 입수해 재구성했을 뿐이다. 제주공항은 활주로가 하나뿐이다. 이 때문에 당시 착륙을 위해 고도 270m까지 하강했던 진에어323편도 급히 회항을 시도했다. 510편은 급정거로 인한 브레이크 과열과 타이어 파손으로 긴급 수리에 들어갔다. 활주로는 1시간 15분 동안 폐쇄됐다. 2편이 결항됐고, 14편이 회항했으며 운항지연(45편), 목적지 변경(6편)까지 이어졌다. 천만다행인 건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사고의 주 원인이 인적, 시설적 요인으로 인해 관제사가 군용기를 보지 못한 거라고 지적했다. 양쪽 관제사 간의 불분명한 협조가 인적 요인이라면 관제탑에 사각지대가 있어 군용기를 확인하지 못한 건 시설적 요인이었다. 언뜻 보면 '관제사 잘못'으로 결론이 도출되지만 보고서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바로 '왜'라는 질문이다. '관제사들끼리 협조가 불분명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말이다.
 

관제사, 국제 기준의 60% 수준...'과부하' 심각

취재진이 입수한 국토교통부 노조의 용역 보고서(항공교통관제 조직의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18년~'20년 사이 관제량은 수용량을 훨씬 초과했다. 우리나라 서쪽 항로의 경우 초과량이 1만3천470건이나 된다. 관제사 1명이 동시에 교신하는 항공기 수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관제사 수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고하는 최소 기준에도 훨씬 못 미친다. 10명이 최소 정원이라면 6명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9년 국토부가 국민참여단을 통해 조직 진단을 받았는데 관제사 수를 지금보다 48.9% 더 충원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공무원 늘리는 데 반감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조기호 기자 관제량

국토부는 조직 진단을 수용하는 대신 부족한 관제 인원을 추가 근무로 메웠다. 지난해 관제사들의 주당 평균 초과 근무 시간은 14시간이 넘었고, 야간도 5시간 30분을 초과했다. ICAO는 관제사의 업무 시간을 '휴식 없이 2시간 초과 금지', '총 휴식시간 30분 이상 부여'로 콕 집어 권고하고 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승객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조종사에 준하는 기준이 마련돼 있지만 현실은 관제사들의 영혼을 갈아 넣도록 강요하고 있다.
조기호 기자 초과근무 수정

이러다 보니 관제사들 대부분이 '그 좋은'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관제사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75%가 이직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이장욱 인천공항 관제사는 "내가 100%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나겠다는 두려움이 늘 있다"며 "근무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까 하루 네 번째, 다섯 번째 관제 마이크를 쥘 때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 느끼지만 내 의지대로 막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직을 정말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Q.관제사 인원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는지?

김상배ㅣ제주지방항공청 관제사, 11년 차
저희가 제주도 같은 경우는 활주로가 하나거든요. 단일 활주로에다가 또 바람이 세고 윈드시어(Wind shear)라고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게 이제 하루에도 몇 번씩 발령되고 1년이면 거의 대부분 발령 안 되는 날이 없거든요. 윈드시어(Wind shear)가 발령되면 그 내리던 항공기들이 보통 복행이라는 거를 해요. 못 내리고.

오은성ㅣ제주지방항공청 관제사, 13년 차
두려움이 아주 큽니다. 사고 위험에 노출이 되어 있고 분명히 지금 이게 뭔가 악기상이랑 많은 교통량 때문에 내가 100%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나겠다는 두려움이 있는데 이게 근무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까 한 네 번째 다섯 번째 키 잡을 때는 내가 집중력 떨어지는 걸 내 의지대로 막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비행기 한두 대가 머릿속에서 빠져나가고 동시에 한 열몇 대를 전부 다 머릿속에서 그리고 넣고 있어야 되는데 항공기 같은 경우는 이제 조종사가 조종을 하긴 하지만 비행 방향 고도, 속도 전부 다 관제 지시대로 움직이거든요. 조종사는 그렇게 지시받으면서 조종을 하고 그러니까 그렇게 통과를 관할하는 입장에서 내가 모든 항공기가 다 머릿 속에서 집중력을 발휘해서 유지가 돼야 되는데

오은성ㅣ제주지방항공청 관제사, 13년 차
관제를 오랫동안 반복하다 보면 신체적으로 저희가 화장실이 급하거나 이런 거 해결 못하고 하는 거는 둘째 치고 당장 이거 내가 일을 하다가 사고 나서 내가 감옥에 가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 두려움들이 있죠. 사람이 부족한 게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Q.관제사가 사고를 내면 어떻게 되나?

오은성ㅣ제주지방항공청 관제사, 13년 차
관제 업무 같은 경우는 그 특성상 사고가 나게 되면 반드시 그 항공사의 보험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요. 그래서 그렇게 재판에 휘말려서 아주 오랜 시간 고생을 하는 관제사들도 많고 그래서 결국은 이제 본인을 지켜줄 데가 없다 보니까 열심히 근무를 해야 하는데 현 실태에서 받는 것들은 그렇지 못하죠.


 
Q.관제 인원 충원은 왜 안 될까?

오은성ㅣ제주지방항공청 관제사, 13년 차
지금 제주공항을 예를 들면 지금 각 시설에서 양 시설 동일하게 16명이 근무 중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 조직 진단 결과로 나온 인원이 접근관제소 32명 그리고 관제탑 28명이었어요. 그게 벌써 3년이 넘었네요. 조직 진단이 지금 인원 어떠냐 똑같습니다. 16명, 16명.
글쎄요, 개선이 안 되죠. 관심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다른 이슈들에 묻히고 이쪽 진단은 이제 사고가 안 터졌으니까 이슈화되지 않은 안전 문제에 대해서 관심들이 없는 거죠. 그렇다고 저희가 이제 독립된 조직으로 인원을 따로 뽑아서 충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이제 국토교통부 안에서 돌아가는 그 시장을 따라야 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런 정말 중요한 안전 파트고 정말 전문성이 요구되는데도 불구하고 말단 조직의 대우를 받는 거죠.


 
Q.현재 항공관제 시스템, 무엇이 문제인지?

이장욱ㅣ서울지방항공청 관제사, 22년 차
조직이 전문 집단이고 항공만을 고민하는 집단이라면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충분히 사전에 준비하고 필요한 인원들을 관리를 해주고 교육이 필요하면 교육을 해주고 하는 건데 그런 공무원적인 사고방식으로 공무원 조직이 있다 보니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거죠.
저희가 명확하게 독립 조직화돼야 된다는 게 말씀드리는 이유 중에 하나 같아요. 안전하기 위해서 비행기도 굉장히 큰 사고가 나면 큰 사고가 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항공 안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관제 서비스가 그런 하늘의 길잡이 조종사의 눈인 거거든요. 모든 위험 요소들을 해결해 주고 잘 착륙하게 해주고 잘 뜨게 해줘야 되는 건데도 불구하고….


 
Q.이직 고민을 한 적이 있는지?

김상배ㅣ제주지방항공청 관제사, 11년 차
코로나가 종식되고 위드 코로나가 되면 비행기가 많이 늘어날 거라는 거죠. 그러면 막 선배들이 비행기 늘어나면 뭐도 힘들고 뭐도 힘들고 하니까 이 친구들이 힘든데 뭐 하려고 계속 여기 있어 처우 좋은 데로 가지 그래서 시험 준비도 하고 또 실제로 간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은성ㅣ제주지방항공청 관제사, 13년 차
제가 이제 일을 이렇게 전문성을 갖고 계속 본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워낙 이제 현실이 동떨어져 있으니까 이직 준비를 진지하게 많이 준비를 했었습니다. 내가 이제 떠날 때가 됐다. 식구들 보기도 미안하고 쉬는 날도 없는 아빠 명절 없는 아빠잖아요.

"비상버튼을 누르면 왜 눌렀냐는 질책 돌아와"

보고서는 지금의 관제 조직을 확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는 국토부가 관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감독·규제까지 겸하는 구조다. 국가로 치면 입법·사법·행정부가 뭉뚱그려 있는 것이고, 기업으로 치면 대표가 감사 업무도 맡고 있는 셈이다. 이 두 조직을 분리해야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다. 즉, 관제 조직은 안전 관리에 집중하면서 그와 관련된 방대한 안전 데이터를 구축·제공하고, 감독·규제 조직은 이를 토대로 항공안전정책을 만들면서 관제 조직에 대해 치열하게 감독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공항 활주로 폐쇄 사건 직후에도 당시 담당 관제사 처벌에만 방점이 찍혔을 뿐, 관제탑의 사각지대는 아직도 존재하고 부족한 인원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게 오은성 제주공항 관제사의 얘기다. 한 번은 그가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한다. 관제탑에는 항공기 간 충돌 방지 등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비상버튼이 있다. 그런데 이걸 눌렀다가 관리자에게서 질책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상버튼을 눌렀던 상황이 '그 정도로 위급한 게 아니었던 일'로 분류되면 질책이나 징계를 받다 보니 관제사들 사이에선 가급적 버튼을 누르지 말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고 했다. 누르라고 있는 버튼이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녹스는 사이, 항공기 이용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형국이다.

ICAO는 1994년 시카고 협약을 통해 감독·규제 기관과 서비스 기관을 분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해 상충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 기관과 서비스 기관 간의 기능과 책임을 분리>, <규제 기관과 서비스 기관은 구성과 책임 또는 기능이 중복돼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이영혁 항공대 교수는 "관제 조직은 안전을 서비스하는 곳"이라며 "국토부가 안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감독도 하고 있으니 셀프 감독이 되고, 사고가 나도 원인 분석보다는 숨기는데 급급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 현장 관제사들이 '이렇게 해선 큰일 나겠다' 하면서 현장에서 경고 신호등을 켠 것"이라며 "조직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건 상당히 위험한 징조"라고 지적했다.

( PD : 김도균, 편집 : 한만길, CG : 서승현, 제작 : D콘텐츠기획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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