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상에 관여하고 있는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우크라이나 측 협상단 일부가 중독 의심 증세를 겪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28일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일 키이우(키예프) 회담 직후 아브라모비치와 최소 2명의 우크라이나 협상단 고위 멤버에게서 충혈, 고통을 수반한 눈물 지속, 얼굴과 손 피부 벗겨짐 등의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중독 증상을 겪은 우크라이나 협상단 멤버 중 한 명은 크림반도의 타타르인 국회의원인 루스템 우메로프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아브라모비치는 당시 몇 시간 동안 시력을 상실했다고 그와 가까운 한 관계자가 WSJ에 전했습니다.
이들 3명은 중독 의심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오직 물과 초콜릿을 섭취했다고 유럽의 탐사전문 매체 벨링캣이 밝혔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키이우의 한 아파트로 이동한 뒤 중독 증세를 보였으나 다음날 르비우를 거쳐 폴란드, 이스탄불까지 이동하면서 회담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소식통들은 평화회담을 방해하려는 모스크바의 강경파들이 비밀리에 이들을 공격한 게 아니냐고 의심했습니다.
다만 이들의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고, 상태가 좋아졌다고 소식통들은 전했습니다.
아브라모비치는 당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도 만났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무런 증상을 겪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 중인 서방 전문가들은 생화학 무기 또는 일종의 전자기 방사선 공격에 의해 초래된 증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2020년 신경작용제 중독 사건을 조사했던 벨링캣의 수석조사관 크리스토 그로체프가 이번 아브라모비치 등의 중독 사건도 조사 중입니다.
그로체프는 이들의 증상을 찍은 사진을 살펴봤으나, 협상단 일정이 바빠 적시에 샘플을 채취하지는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나중에 독일의 한 포렌식팀이 조사에 나섰으나, 독극물을 발견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로체프는 "이번 공격은 살해 목적이 아니라 경고를 하려는 의도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아브라모비치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직후부터 전쟁을 멈추기 위한 협상에 긴밀히 관여해왔습니다.
러시아 협상단의 한 분과위원으로 활동하던 아브라모비치는 최근 마리우폴 시민들의 안전한 대피 등 인도주의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우크라이나 당국은 아브라모비치와 협상단의 중독설에 선을 긋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미국 정부의 한 관리는 이들의 증상은 "중독이 아니라 환경적 이유 때문"임을 시사하는 첩보가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습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추측과 다양한 음모론이 난무한다"고 했고, 중독 당사자로 보도된 우메로프도 "미확인 정보를 믿지 말라"고 반응했습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국영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뉴스와 선정적인 내용에 목말라있다"면서도 "난 러시아와 협상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말라고 조언한다. 가급적 겉면도 만지면 안 된다"라며 여운을 남겼습니다.
러시아는 앞서 2004년 우크라이나 정치인 빅토르 유셴코, 2018년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 등에 대한 독살 시도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은 바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