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사라져가는 구상나무…앞으로가 더 위기다

한라산에 입산한 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해발고도 1400m쯤인 진달래밭을 넘어 구상나무 숲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숲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처참했다. 애초 구상나무가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는 걸 알고 취재를 간 것이었지만, 눈앞에 뿌리째 뽑힌 나무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취재에 동행한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최병기 박사는 "올라올 때마다 이런 광경을 보는 게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취재파일에 사용할 그림

구상나무는 추운 고산지대에서 사는 수종이다. 우리나라 고유종이자 크리스마스 트리로도 유명한 나무인데, 기후변화로 점차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높은 기온이 직접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바뀌어 버린 환경이 더 문제다. 보통 식물은 봄에 필요한 수분을 겨울철 쌓인 눈을 통해 얻는다. 봄이 되면 겨울에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토양을 적셔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겨울철 기온이 높아지면서 겨울에 내린 눈이 봄까지 버티지 못하고 빠르게 녹고 있다. 식물이 봄에 써야할 수분이 겨울에 이미 다 사라지는 셈이다. 필요한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니 식물들의 수분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생장에 문제가 생기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여기에 여름철 점점 강해지는 태풍도 문제다. 스트레스를 받고 자라는 식물이 점점 강해지는 태풍을 이겨낼 리 없고, 구상나무 같은 종들은 아예 군락 전체가 꺾이고 뿌리째 뽑혀 쑥대밭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셈이다.

취재파일에 사용할 그림

실제 1990년대와 2010년의 한라산 침엽수림을 위성 사진으로 살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나타난다. 침엽수림의 대부분 구상나무인데, 과거 20년 전에 비해 면적이 33.3%나 줄었다. (그림참조) 최근 산림청 현장 조사에 따르면 2018년에 비해 2020년에 어리 나무 개체수가 핵타르 당 444본에서 핵타르 당 212본으로 절반 넘게 줄기도 했다. 이미 죽어가는 나무도 문제지만 어린 나무가 준다는 건 종의 보전에 큰 적신호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최병기 박사는 구상나무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이미 변해버린 환경 탓에 쉽지 않다고 말을 전했다.
 
최병기 ㅣ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박사
"특별히 저희가 구상나무 복원을 위해서 복원지 내에 이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지역들도 보면 과거에 비해서 훨씬 더 눈이 짧은 기간 동안만 쌓여 있음으로 인해서 그 지역에 있는 이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이 발생되면 흙이 쉽게 이렇게 두드러져 올라와 버리고 그러면서 숨겨져 있던 어린 복원 유묘들이 쉽게 고사되어 버리는 것들이 많이 관찰되고 있거든요."
 

구상나무 앞으로가 더 걱정?

 
이미 직격탄을 맞은 구상나무지만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 같다. 최근 해외 연구팀이 기후변화가 구상나무 같은 고산식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예측했다. 다양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고산식물이 받는 영향을 분석했는데, 기후변화가 같은 종 내에서 유전적 다양성을 해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종은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유전자를 통해 각자 다른 특색을 보인다.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인 우리 인간이 가장 좋은 예다. 고산식물도 마찬가지인데,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다양한 유전 형질 중 따뜻한 곳과 추운 곳에 적응에 필요한 유전 형질에 초점을 맞췄다. 모두 6종의 식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는데, 결과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라 따뜻한 곳 적응에 필요한 유전자가 먼저 파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점차 따뜻해지는 미래 환경에 고산식물은 더 불리하게 진화하는 것이다.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여야하는 생물종에는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취재파일에 사용할 그림
▲ 따뜻한 곳 적응에 필요한 유전형질 변화를 각각 4가지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예측한 것, 마이너스 값은 그만큼 유전형질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


당연히 기후변화에 따라 앞으로 고산식물이 살게 될 분포면적 또한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파일에 사용할 그림
▲ 왼쪽은 분포면적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의미, 오른쪽은 앞으로 있을 수 있는 고산지대 면적이 사라짐을 의미.
 

유전적 다양성 매우 중요해

 
우리나라의 62% 정도는 산림이지만, 이 중 구상나무 같은 고산식물이 살 수 있는 고산지대는 매우 적다. 또 고산식물의 특성상 기후변화를 피해 이동할 수 있는 곳도 매우 제한적이다. 여기에 이미 적은 면적에 분포하는 종이다 보니 전체적인 개체수도 많지 않다. 구상나무는 현재 분포하는 어느 한 곳이라도 타격을 받으면 종 전체가 위협에 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앞서 이런 구상나무를 복원, 그리고 보전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또 유전적 다양성도 점차 구상나무가 살기 불리한 조건으로 변해갈 것으로 연구팀은 예측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168개국 맺은 생물다양성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CBD)에서 논의되는 2021-2030 전략계획에서는 종의 보전을 위해 최소 90% 이상 유전적 다양성이 유지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특정 종을 보전할 때 유전적 다양성이 고려되지 않았는데, 이런 형태는 근친 교배의 위험성 또한 증대시켜 안정적인 종 유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최근 국내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구상나무의 안정적인 보전을 위해선 최소 35개 이상의 서로 다른 유전형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후변화로 자연이 변하고 있다. 어떤 종은 이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구상나무 같이 멸종을 걱정해야 하는 종들도 있다. 자연의 변화를 우리의 관점에서 봐선 안 된다. 자연에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보전돼야 좋을지 판단할 수도 없다. 이미 과거에도 수많은 생물종들이 출현과 소멸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 시점 분명한 건 과거의 변화는 자연의 선택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일어나는 이 변화가 인간이 개입한 매우 부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


<참고문헌>
Johannes Wessely and Andreas Gattringer, Frédéric Guillaume, Karl Hülber, Günther Klonner, Dietmar Moser, Stefan Dullinger, "Climate warming may increase the frequency of cold-adapted haplotypes in alpine plants", nature climate change(2022) 12, 77-82, doi.org/10.1038/s41558-021-01255-8

Seung-Beom Chae, Hyo-In Lim*, Yong-Yul Kim, "Selection of Restoration Material for Abies koreana Based on Its Genetic Diversity on Mt. Hallasan", forests(2022), 13(1) 24, doi.org/10.3390/f13010024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