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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민주당의 내일은?

"사실상 이재명의 승리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이 끝난 지난 24일 저녁, 한 다선 중진 의원에게 선거 결과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일정 수준의 (권력) 이동이 있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신임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이번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의 승자, '이재명계' 박홍근 의원입니다. 서울 '중랑을' 3선 국회의원으로, 애초 '박원순계'로 분류됐지만 박 전 서울시장이 숨진 뒤 중진 중 가장 먼저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후 이재명 후보 경선캠프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이재명계'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패자는 '친문·이낙연계' 박광온 의원이었습니다. 이번 경선이 '이재명계' vs '친문·이낙연계' 사실상 계파 대리전으로 치러졌는데, 때문에 결과를 두고 "박광온의 패배가 아닌 '친문·이낙연계'의 패배라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지난 21대 총선 직후 원내대표 경선에서 '원조 이재명계' 정성호 의원이 9표를 받았던 점을 떠올려보면, '이재명계'의 상승세는 놀라운 수준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이재명의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소위 '7인회'로 불리는 이재명 당 상임고문 핵심 측근들과 '박원순계', 일부 '이해찬계', 초선 의원 그룹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당내 최대 계파인 '더좋은미래(더미래)' 소속 의원 일부도 힘을 보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한 다선 중진 여성 의원은 역시 박 원내대표 지지 의사를 밝히며, 후배 여성 의원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던 것으로도 전해졌습니다. 이는 그만큼 이재명 고문의 영향력이 당내 여러 계층에 또 골고루 스며들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 (사진=연합뉴스)

한 초선 여성 의원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봤다. 그리고 그건 결국, 이재명 (고문)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현실은 현실이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으려면 그(이재명 고문)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라면서 박 원내대표 지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박 원내대표 역시 이재명 고문의 공약과 철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선거 직후 그는 "대선은 졌지만, 이재명 상임고문이 대선 때 국민께 했던 약속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이재명계' 초선 의원은 "(이 고문이) 굳이 당장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이제야 비로소 진짜 '이재명의 민주당'이 돼가는 것이 아니겠느냐"라며 "출입기자로서 어떻게 보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또 다른 호남 지역구 초선 의원은 조금 더 나아가 "이제는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힘줘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력해진 '문재인 모델'

문재인 대통령

"박홍근의 승리로, 유증기는 충분해졌다. 이제 불만 붙이면 된다. 그러면 폭발한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고문을 열심히 도왔던 한 재선 의원의 말입니다. '유증기가 박 원내대표 승리라면, 불은 이재명 고문의 당 대표 출마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소이부답(웃을 뿐 답하지 않는다)"이라고만 했습니다. 또 다른 '이재명계' 의원도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사견으로는 매우 (출마가) 유력하다고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고문이 지방선거에서 박 원내대표와 함께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한 뒤, 8월 전당대회 출마하는 경로를 유력하게 거론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 고문은 최근 핵심 측근들과 만나, 당 대표 출마를 포함한 다음 정치 행보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고문이 당 대표직에 도전해 당을 장악한다면, 그동안 아킬레스건으로 평가받던 '중앙정치 경험 부족'이라는 숙제도 해치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민주당 의원 상당수도 이 고문이 당 대표를 거쳐 대권에 재도전하는 길을 걸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른바 '문재인 모델'을 따를 것이란 분석인데,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2015년 당권을 잡은 뒤 2017년 대선에서 결국 승리했습니다.

 

"강한 야당으로 거듭나자"

박홍근 의원 민주당 새 원내사령탑

이 같은 이른바 '선 당권·후 대권' 전략이 성공할지는 민주당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 원내대표는 경선 출사표를 던질 때부터 일관되게 '강한 민주당'을 주장해왔습니다. 당선 수락 연설에서도 "개혁과 민생을 야무지게 책임지는 '강한 야당'을 반드시 만들어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후보들이 전반적으로 온건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박 원내대표는 상대적으로 '전투력 좋다'는 평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새 민주당 원내사령탑은 이재명 고문이 대선 후보 시절 약속했던 민생 개혁, 정치·검찰·언론 개혁 공약 등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특히 '부동산 강경파'로 분류되는 진성준 의원을 원내수석부대표로 임명하면서, 이 같은 분석에 힘이 더 실리는 모습입니다.

박 원내대표가 '강한 야당'으로 나아가는 순간, 대선 승리 이후 정국 주도권까지 잡으려는 국민의힘과의 충돌은 불가피해집니다. 국민의힘이 다음 달 29일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다는 점도 '강대강' 대치 가능성을 높입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새롭게 집권 여당이 된 원내 사령탑에게도 강력한 전투력은 역시 필수적인 덕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지역 한 재선 의원은 "박 원내대표 자신을 위해서도, 이재명 고문을 위해서도 강경 드라이브는 불가피할 것이다. 저쪽(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측근' 권성동(4선) 의원 혹은 '친박 강경파' 김태흠(3선) 의원이 유력해 보이는데, 누가 되든 이재명 고문과는 결이 다르지 않겠냐. 협의와 투쟁,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외줄을 잘 타야 할 것이다."

 

오직, 네거티브의 한계

민주당 비대위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지난해 재·보궐선거에 이어 이번 대선까지, 국민은 잇따라 민주당을 외면했습니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압승의 환호가 미처 채 사라지기도 전에, 불과 1~2년 새 일어난 뼈아픈 현실입니다. 이처럼 민심은 냉정하고 또 무섭습니다.

민주당에 대한 민심 이반, 이에 대해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저서를 통해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K-방역'의 성과 덕분에 202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건만, 그걸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면허장으로 오인해 힘으로만 밀어붙이려는 '입법 독재'에 재미를 붙이고 말았다."

실제 그간 논란이 된 주요 정책들을 보면, 일부 고개가 끄덕여지는 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부동산 정책입니다. 세 부담을 가중하고, 대출은 옥죄었으며, 재건축·재개발 진입 장벽은 높였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폭등'이란 모습으로, "그 정책은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과도한 것은 규제하고 잘못한 것은 처벌하는 것, 지극히 당연하고 또 바람직합니다. 문제는 네거티브에만 천착했다는 점입니다. 응징하고 옥죄는 '네거티브'는 있었지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파지티브'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우리 국민이 부동산에 대해 가지는 감정과 욕구, 욕망을 두루두루 살피고, 경우의 수를 고민하며,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에 대한 준비는 부족한 것입니다.

실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정작 그 '네거티브' 선봉에 섰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소위 '임대차 3법' 시행 이틀 전에 자신의 강남 아파트 전셋값을 1억 2천만 원, 14퍼센트나 끌어올렸다가 경질됐습니다. '88만 원 세대' 저자인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삼성 주주총회장에서 고함치던 영웅으로 세상에 나와서 양아치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 이게 뭔 우스운 꼴인가?"라고 개탄했습니다. 과연 이런 문제가 어디 부동산 정책만의 문제였을지, 민주당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정책과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어떤 판단과 의사소통을 해왔는지 스스로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은 실패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그것도 연거푸 말입니다. 실패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깊이 고민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비단 민주당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국민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야당'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꿈꾸는 건 정신병 초기 증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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