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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 2년, 인간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을까

코로나 비하인드_코로나 2년
※ '코로나 비하인드'는 코로나19 취재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SBS 보도본부 생활문화부 박수진 기자의 취재기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사에는 담지 못했던 박 기자의 취재물과 생각들을 독자들께 풀어놓습니다. [편집자 주]

예정된 기자회견 시간은 오전 11시. 하지만 10분이 지나도록 시작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준비한 스피커가 말썽이었습니다. 스피커를 고치려 분주히 움직이는 관계자들 속, 조용히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봄인데도 봄인 것 같지 않은 스산한 바람과 흐린 하늘 아래, 그녀는 '정부는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사망자,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녀의 옆에도 유가족으로 보이는 한 참가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팔을 붙잡으며 위로하는 그녀의 눈가도 어느샌가 촉촉해졌습니다.

장조아 씨는 지난 2월 코로나19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는 서울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입니다. 코로나 방역의 최전선에 서 있지만, 코로나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피해자가 됐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20일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20일은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코로나 확진, 중환자실 입원, 일반 병실 전원 명령, 그리고 사망. "만약 암에 걸렸다고 하면 투병이 고통스럽겠지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은 있었을 거 같은데, 그럴 시간도 없었어요." 장 씨를 더 애끊게 하는 건, 손을 써볼 새도 없이,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보지도 못한 채 아버지를 떠나보낸 것 같은 미안함 때문입니다.

급성신부전이 와서 투석을 해야 했지만 열악한 병원 사정으로 신장투석치료기(CRRT)를 한번 써보지도 못한 채 사망한 아버지. 불연 듯 떠난 아버지를 보며 장 씨는 "코로나는 한순간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감염병"이라고 생각을 바꾸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든 받아 마땅한 인간적 존중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숫자로 대체된 사망자의 존엄

319, 327, 329, 384, 291, 469, 393...
지난 일주일, 매일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수입니다. 매일 아침 9시 반, 질병관리청은 당일 0시 기준으로 집계된 전날 코로나19 현황을 발표합니다. 몇 명이 확진됐고, 또 몇 명이 위중했고, 이중 몇 명이 사망했는지 수치가 나옵니다.

수치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건 중요합니다. 쏟아지는 숫자들 속 흐름과 맥락을 파악하는 건 유행의 확산을 미리 가늠하고 대비하기 위한 필수적 작업입니다. 그래서 정부의 발표 자료도, 또 이후 이어지는 언론의 보도도 '어제보다 사망자가 몇 명 늘었고, 전체 확진자 중 사망자의 비율은 얼마이며, 그래서 이것이 예의주시해야 할 '확산의 숫자'인지, 다행으로 여겨야 할 '감소의 숫자'인지 분석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고인에 대한 추모와 애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을 향한 위로까지 담아내진 못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국내에서 처음 코로나 사망자가 나왔던 때(2020년 3월 20일)와 하루에 400명 안팎의 사망자가 나오는 지금을 비교하면 처음과 같은 충격과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매일 코로나 확진자, 위중증 환자, 사망자의 숫자를 비교 분석하는 기사를 쓰고 있는 저 스스로도 많이 무뎌졌단 반성이 듭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 2년, 인간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을까

사회는 무뎌져가지만 유족들의 상처까지 무뎌지진 않습니다. 유족들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하나의 숫자로 치환된 죽음 앞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충분히 추모하고 애도할 기회를 잃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3월 21일 중대본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주간 평균 321.9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과연 0.9만큼의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7.8%에 불과하다"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과연 7.8%에 '불과'한 죽음은 무엇입니까? 걱정해도 되지 않을 수치에 지나지 않는 죽음들이란 말일까요. 어떤 사람이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 모두는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며 기억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3월 23일,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기자회견 中)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2월 23일 중대본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현재까지 2년간 누적된 확진자가 200만 명이다. 그중에서 100만 명이 최근 15일 사이에 발생했다"며 "그렇게 되면 사망자 숫자도 반이 돼야 될 텐데 그렇지 않다. 사망자 숫자는 7.8%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 2년, 인간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을까

온전한 모습으로 죽을 권리

죽음에도 예의가 필요합니다. 장례를 치를 때 고인의 몸을 깨끗이 닦고 수의를 입히는 것도,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깨끗하길 바라는, 남은 자들의 추모와 애도가 담긴 행위일 겁니다. 하지만 오미크론 대유행 속 하루 300-400명의 사망자가 속출하는 지금, 이 예의를 갖추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장례지도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오죽하면 언론사에 연락을 했을까요. 아무리 코로나여도 이건 좀 아니지 싶었어요. 이 일하면서 처음 겪는 경험이에요."

[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 2년, 인간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을까

장례지도사는 직접 찍은 사진을 보내줬습니다. 지하 복도에 탑을 쌓듯 쌓여있는 나무 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냉장 보관할 안치실이 부족해 실온 상태에 방치돼있는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15구까지 쌓여있는 걸 봤다는 게 이 장례지도사의 증언입니다.
 
"며칠씩 실온에 있으니까 부패가 심하죠. 냄새가 너무 심해서 입관을 하기가 어려워요. 얼마 전에는 염을 하려는데 너무 냄새가 심해서 제가 '변사체 들어 왔냐'고 물어볼 정도였다니까요. 유족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통곡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부모라고 생각하면 정말.." (장례지도사 A 씨)

밀려드는 사망자로 화장장 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유족은 화장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상황입니다. 화장을 하지 못해 대기하는 시신이 많다 보니, 냉장 안치실도 부족하게 되고, 결국 실온에 방치되는 시신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겁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 2년, 인간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을까

정부는 지난 22일 화장장 적체 현상 해소를 위해, 전국 모든 화장시설에 화장로 1기당 7회 운영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하곤 1기당 5회를 운영해왔는데 이걸 전체적으로 늘린 겁니다. 또 모든 장례식장에 코로나 사망자 장례를 수용하도록 조치하고, 임시 안치 공간도 구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화장장은 화장로 1기당 10회를 운영해도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인이 온전한 모습으로, 또 가능한 아름답고 깨끗하게, 마지막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권리. 그 권리는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볼 권리

앞서 소개한 간호사 장조아 씨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자체도 장 씨와 가족들에겐 쉽게 아물 수 없는 상처지만, 그 상처가 더 고통스러운 건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지 못했다는 자책과 20일간 직접 겪었던 코로나 의료 현장의 열악함 때문입니다.
 
"코로나 중환자실에서 열흘 만에 나와야 했어요. 좀 더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병원에서 정부 행정명령 때문에 안 나가면 지원도 못 받고 벌금도 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지원금 제가 드리겠다고, 제발 조금만 더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결국 안 됐어요."

아버지는 일반 병실로 옮기면서 인공호흡기(벤틸레이터)를 뗐습니다. 일반 병실이라 벤틸레이터 같은 중환자용 의료기기가 있지도 않았고, 가져온다 해도 이를 다룰 수 있는 의료진이 없었다고 합니다. 신장투석치료기(CRRT)가 없어 투석도 못 했고, 결국 칼륨 수치가 높아져 심정지까지 왔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장 씨는 아버지의 임종 면회를 가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있던 병실에 간호사가 2명밖에 없었더라고요. 벤틸레이터나, CRRT가 없기도 했고, 있었어도 다룰 수 있는 의료진이 없었어요. 그것도 임종 면회 때 알았어요. 전담병원이니 다 갖춰져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정부 발표에도 그렇게 나오잖아요. 그걸 믿고 대학병원으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게… 가장 후회가 돼요. 대학병원으로 아버지를 옮겼으면 살지 않았을까."

중환자 병상 효율화를 위해 정부는 검체 채취 후 7일이 지나면 증상과 상관없이 격리 해제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위중증 환자는 증가하지만, 병상 여력은 한계가 있으니 감염 전파력이 떨어지는 일주일 이후부턴 코로나 중환자 병동에서 격리 해제해 일반 병실 또는 일반 중환자실로 가는 겁니다. 병상 효율화도 필요한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들의 의사가 충분히 고려되진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아쉬움과 후회를 남깁니다. '더 충분한 치료를 받았다면 회복되지 않았을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장 씨의 아버지는 코로나 사망자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격리 해제 후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이 무너졌어요. 어머니는 대인기피증이 생기셨고, 아직도 안방에 들어가지 못하세요. 침대 매트리스 아빠 자리가 그대로 있으니까 그걸 보기 힘드신가 봐요. 저도 선별진료소에서 아버지랑 동명이인이거나 비슷한 연배 어르신들을 보면 눈물이 막나요. 눈물 흘리면서 검사해요."

[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 2년, 인간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을까

지난 24일 코로나 일일 사망자는 469명으로 국내 코로나 발생 이후 최대 하루 사망자를 기록했습니다. 지금까지 누적 사망자는 1만 4천여 명, 치명률은 0.13% 수준입니다. 정부는 오미크론 확산세에 비해 사망자 수가 안정적인 편이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누적 확진자가 미국(100만 명), 영국 (16만여 명) 등에 비해 훨씬 적습니다. 누적 확진자 기준 한국은 통계에 잡히는 나라들 기준으로는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치명률도 미국 1.2%와 비교하면 9분의 1 정도입니다.

다만 최근 인구 100만 명당 일주일 평균 확진자, 하루 사망자를 보면 누적 사망자 1위인 미국을 앞서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망자 증가에 대한 우려가 최근 더 커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위중증 환자 증가세에 비해 사망자가 많은 현상을 정부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따져보면, 결국 어느 지표를 어떤 기간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숫자는 커 보이기도, 또 작아 보이기도 합니다. 숫자를 기준으로 사망의 경중을 논하기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군과 위중증 환자를 빠르게 진단하고 치료해 사망자 숫자를 줄이는 것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코로나 사망자의 존엄한 죽음, 고인과 유족에 대한 고민과 논의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코로나 2년, 우리는 그 고민을 너무 뒤로 미뤄두기만 한 건 아닐까요.

(취재 : 박수진, PD : 김도균, 일러스트 : 김정연,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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