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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큰 산불이 난 울진 숲…산양 생존 확인

[취재파일] 큰 산불이 난 울진 숲…산양 생존 확인
시뻘건 화마가 할퀴고 간 경북 울진 숲은 곳곳이 숯검정이 됐다. 산불을 끈 지 1주일이 지났는데도 매캐한 탄내가 가시지 않았다. 바람이 살랑거릴 때마다 코가 매웠다. 바닥에 쌓인 나뭇잎은 불쏘시개가 됐다. 기름을 부은 듯 불을 키웠고, 다 타고난 뒤 까만 잿더미로 남았다. 영덕에서 울진읍을 지나 북면으로 들어서자 도로 옆 언덕 까지 불탄 흔적이 생생했다.

큰 산불이 난 울진은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산양의 서식지 중 한 곳이다. 지난 2019년 기준 산양 126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겨울철 폭설이 내리면 산양은 먹이 구하기가 어렵다. 굶어죽는 산양도 발견된다. 환경부는 10여 년 전부터 산양이 주로 살고 있는 숲속에 먹이급여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겨울이 시작되면 먹이터 5곳에 마른 뽕잎 500kg을 가져다 놓는다. 뽕잎은 대형 비닐봉투에 담았고, 비닐을 찢어 구멍을 내 산양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울진 산불..산양 생존

산불은 지난 4일 시작된 뒤 9일째인 13일에서야 어렵게 진화됐다. 봄철에 불어오는 태풍급 강풍의 위력에다 심한 가뭄이 겹치면서 최장 기간 불이 이어졌고, 피해도 최대 규모인 2만 1천여ha의 숲을 태웠다. 역대급 산불의 위력에 산양은 무사할까? 환경부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산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리느라 속이 타들어갔다. 산양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 곳엔 무인센서카메라를 달아 놓았다. 카메라는 먹이를 먹는 산양의 모습을 그동안 생생하게 담았다.

소방대원들의 헌신으로 산불은 꺼졌지만 산양이 자주 찾아오는 먹이 급여대 주변 숲도 잿더미로 변했다. 천만다행으로 뽕잎을 놓아둔 먹이 급여대는 불길을 피한 채 온전했다. 먹이터 주변에 설치한 카메라도 일부는 불에 탔지만 화마를 피한 카메라가 산불이 시작된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빠짐없이 지켜봤다.

울진 산불..산양 생존

먹이 급여대 근처 숲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것은 지난 8일 밤이었고, 산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나기 하루 전인 7일 새벽 카메라에 포착됐다가 불을 끈 뒤 10일 새벽 다시 먹이터에 나타났다. 불길에 놀라 달아났다가 곳곳이 숯검정이 돼 먹을게 없자 뽕잎이 있던 급여대를 찾아온 것이다. 산양은 15일까지 매일 같이 먹이를 먹으러 나타났다. 먹이 터에는 지난 1월에 제공한 뽕잎이 거의 다 떨어져갔다. 산양이 무사한 걸 확인하자 연구원들은 지난16일 곧바로 뽕잎 126kg을 갖고 산길을 올랐다. 5일 뒤인 지난 21일 2차로 92kg을 추가로 가져다주었다.

울진 산불..산양 생존

산양이 다니는 길목에선 배설물이 발견됐다. 뽕잎을 먹은 흔적이 배설물에서도 보였다. 다행히 아직까지 산불로 폐사한 산양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넘게 산양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 김상미 사무국장은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김 국장은 "헬기들이 100여 대가 와서 계속 물을 나르고 불끄는 작업을 했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어디 궁지에 몰려서 사고가 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며 걱정을 털어놓았다. 산양의 출산 시기는 4월 말에서 7월까지다. 출산을 앞둔 어미 산양들이 예상치 못한 큰 산불에 화를 입었을 가능성도 있다.

울진 산불..산양 생존

산불 피해 면적은 2만ha가 넘는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산불로 산양 서식지 1만 1천ha가 피해를 입었을 걸로 추정했다. 워낙 넓은 면적이다 보니 폐사하거나 다친 산양이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울진 산양이 모두 무사한 걸로 단정하면 안 된다.

윤광배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선임연구원은 "산불이 난 뒤 초본류나 관목층이 올라올 때까지 5년에서 10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산양 먹이가 안정화되는 시기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진 산불..산양 생존

국내 서식하고 있는 산양 수는 2019년 기준 1천382마리다. 강원 인제, 양구, 고성, 화천 4개 지역에 857마리, 설악산 297마리,울진·삼척 126마리,월악산 102마리다.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산양 서식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 울진·삼척을 비롯해 설악산 권역, 설악산 이남, 민통선 지역 등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진행 중이다. 지난해 3월 시작한 울진·삼척은 이번 달에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큰 산불로 인해 올해 말까지 연장해 조사하기로 했다.

숲속에는 산양뿐 아니라 담비, 노루, 오소리 등 수많은 포유류와 조류, 양서파충류, 그리고 풀과 나무 등 식물이 어울려 살고 있다. 숲의 주인인 동식물이 건강하게 살도록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서식지를 보호해야 한다.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의 책무요 도리다. 숲이 건강하게 잘 보존돼야 사람의 삶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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