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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포켓몬 빵 열풍'으로 본 MZ의 마음 한 조각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포켓몬빵
"지난주에 한 30만 원? 번 것 같은데. 리셀 해가지고."
"당근으로? 근데 온라인에서 이제 안 판다며?"
"어, 그래서 우리 애들은 한 명이 오프 돌기로 했어. 커미션 주고."

어제 동네 카페 옆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20대 중반 남짓한 두 청년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이 가세요? 재태크 이야기 같기도 하고 NFT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 하지요? 뭔지 단박에 알아채셨다면 2030세대이시거나 SNS를 활발히 사용하고 계신 분일 겁니다. 바로 '포켓몬 빵' 이야기인데요.

포케몬 빵은 1999년에 출시되어 2000년대 초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초유의 인기를 끌었던 상품입니다. 내용물 자체는 평범한 초코롤, 소보로 같은 것들입니다만, 특징은 봉지 안에 작은 스티커가 함께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띠부띠부씰'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스티커는 유명 애니메이션인 포켓몬스터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습니다.

기성세대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최고의 인기 캐릭터 피카츄를 비롯해서 애니메이션 속 다양한 몬스터 스티커가 빵마다 1장씩 무작위로 들어있는데요. 아이들이 선호하는 포켓몬일수록 나올 확률이 낮고, 악역으로 등장하거나 외형이 다소 못생긴(?) 포켓몬은 아주 흔하게 나옵니다. 일종의 '스티커 뽑기'인 셈이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님 몰래 빵을 한아름 사서 스티커만 확인하고 빵은 모두 길거리에 버리는 바람에 거리가 음식물 쓰레기 천지가 되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의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 빵'이 16년 만에 재출시 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아마 최근 편의점에 가보신 분들은 '포켓몬 빵 재고 없음'이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는 걸 보신 경우도 많으실 겁니다.

포켓몬빵 품절 알림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갑자기 이 포켓몬 빵은 왜 다시 출시되었으며, 무엇 때문에 인기이고, 어떻게 '빵테크'를 하는 사람들까지 속출하는지 의아하시지요?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지금의 열풍을 주도하는 세대가 어느 연령층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주 소비층은 어린이도 청소년도 아닌 MZ세대, 즉 2030인데요. 한참 빵이 유행하던 2000년대 초반에 초등학생이었던 세대입니다.

어린 시절 그토록 모으고 싶었지만 끝내 얻지 못한 추억의 스티커에 대한 마음이 담겼다고나 할까요. 꼬깃꼬깃 용돈을 모아 큰마음을 먹고 너댓 개를 사도 똑같은 스티커만 줄줄이 나왔던 쓰라린 유년기를 지나, 이제는 세월이 흘러 서너 박스도 과감하게 살 수 있는 어른이 된 겁니다. 주 소비층이 어린이라면, 주머니 사정 때문에 엄마 아빠가 못 사게 해서 한 명의 소비자가 서너 개를 사는 것에 그칠 텐데요. 이제 구매력이 있는 직장인이 주 소비층이 되다보니, 1인당 구매량이 '박스 단위'가 되는 겁니다.

게다가 희귀한 스티커는 중고거래 시장에서 50배에 가까운 가격으로 팔리기도 하니, 사재기해서 스티커만 되파는 '빵테크족'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런 레트로 열풍에 빵테크 바람까지 겹쳐 재출시 이후 단 일주일 만에 150만 개가 팔려나가 버렸습니다. 아마 이 중에 실제로 소비자가 '먹은' 빵은 20%가 채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요.

띠부띠부씰 온라인 거래 (사진=중고거래 앱 캡쳐)
포켓몬빵 (사진=연합뉴스)

먹지도 못할 빵을 그렇게 사대는 심리는 단순히 '추억 회상'만은 아닙니다. 몇 박스를 사더라도 어린 날의 내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꼬부기'나 '피카츄'를 드디어 얻게 되는 희열감. 저는 이것이 철없는 과소비가 아니라, 심리적 치유 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포켓몬 빵은 2030세대가 처음으로 "세상은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를 느꼈던 유년기의 첫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빵을 사고 싶어도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게 되고, 그 와중에도 근검절약 아껴 모은 돈으로 빵을 다섯 개나 샀지만 단 한 개도 내가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는 좌절감. 그런데 내 옆자리 친구는 딱 하나만 샀는데도 피카츄 스티커를 얻을 때 느끼는 박탈감은 사회 초년생으로 세상의 고된 맛을 보고 있는 2030세대 현재의 삶과도 닮아있지 않을까요?

비록 여전히 세상살이는 녹록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때 그 시절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을만큼은 컸다는 것. 마음속 한편에 여전히 자리 잡은 어린 나에게 빵 한 아름을 사줄 수 있는 정도의 '사소하게 멋진 어른'은 되었다는 것에서 청년들은 작은 자기 위안의 싹을 틔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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