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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붉은 '자유의 여신상' 볼 수 있나…구리 산화 막는 기술 개발

뉴욕의 랜드마크인 자유의 여신상은 1885년 처음 미국으로 건너왔다. 지금의 리버티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구조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이듬해인 1886년부터인데, 처음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구조 자체의 이야기가 아닌 색깔의 이야기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전쟁 승리 100주년을 기념으로 프랑스가 선물한 건축물이다. 에펠탑을 만든 귀스타브 에펠 등이 설계와 구조에 참여했는데, 80톤이 넘는 구리를 녹여 만들었다. 여신상의 겉면엔 300개가 넘는 구리판이 있는데 이렇다 보니 초기 구조물은 구리의 원래 색인 붉은색을 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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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는 공기 중 산소에 노출되면 산화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자유의 여신상 역시 이를 피하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여신상 겉면의 구리는 산소에 노출됐고 점차 산화되면서 지금의 청동색으로 변하게 됐다. 참고로 자유의 여신상에 있는 횃불은 청동색이 아닌 금색인데, 지난 1985년 대대적인 수리 과정에서 횃불에는 도금을 했기 때문이다. 자유의 여신상의 이런 변화는 2017년 미국화학학회에서 구리 산화가 이유라는 내용으로도 발표된 적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자유의 여신상의 변화, 즉 구리의 부식은 어떤 의미일까? 구조물에만 국한시켜 생각하면 오히려 내부 부식을 막아준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구리가 쓰이는 산업 전반으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다르다. 구리는 금속 중 은 다음으로 전기와 열을 잘 전달한다. 인쇄회로기판 배선과 배관 난방 파이프, 각종 전자제품에 구리가 쓰이는 이유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앞서 말한 부식, 즉 산화가 잘 된다는 것이다. 도체인 구리가 산화돼 산화구리가 되면 도체의 성질을 점점 잃는다. 따라서 전기를 흐르게 해야할 도선 등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반도체 회로에 비싼 금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런 구리의 단점 때문이다.
 

구리 산화 규명

그럼 구리가 산화되지 않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동안 인류는 구리의 산화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구리의 산화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올 정도로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언제, 어떤 조건하에서 산화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경험적으로 구리의 거친 부분에서 산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산화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산화를 막는 기술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정세영 부산대학교, 김영민 성균관대학교, 김성곤 미시시피주립대학교 공동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구리 산화의 원리를 규명했다. 구리의 산화 규명을 위해선 일단 산화가 일어나지 않을 조건을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단결정* 상태의 구리 막을 만들었다. 또 여기에 더해 구리판의 거친 면을 없애는 기술을 더했다. 흔히 금속판을 보면 표면이 매끄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nm(나노미터) 수준으로 보면 그렇지 못하다. 굉장히 울퉁불퉁해 거친 면이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곳에서 바다를 살펴보면 물결이 고요하고 평평해 보이지만, 실제 바다에 나가보면 바닷물이 넘실넘실 대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연구팀은 이런 초평탄면 구리 박막을 이용해 구리의 표면 거칠기가 구리 원자 1개 수준인 0.21nm 수준 이하면 산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2019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사용된 표면 거칠기 3nm의 1/15 수준이다.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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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거칠기 1.5nm 수준, 아래는 거칠기 0.21nm로 구리 원자 1층에 해당하는 거칠기)

구리의 단결정화와 구리 박막의 초평탄면 구현은 기존 과학에서 불가능에 가깝게 여겨졌다. 실제 지난 2017년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원자 수준의 거칠기를 없앤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기존의 거칠기에선 발열 반응이던 구리 산화가 원자 1층 수준의 거칠기가 되면 흡열 반응으로 바뀌어 자연 상태에선 산화가 일어나지 않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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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실선이 단원자층, 즉 구리 원자 한개 높이의 거칠기 박막인데 산화 과정이 흡열 반응임을 알 수 있다.)

*단결정 : 물질 내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물질 전체가 모두 한 방향으로 정렬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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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 다결정 l 오른쪽 : 물질 내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 단결정)
 

어떤 의미 있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리는 전도체로서 유용한 물질이다. 하지만 산화가 구리의 다양한 쓰임을 가로막고 있었다. 구리의 단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던 금은 구리보다 훨씬 비싸 경제성이 떨어진다. 오늘(17일)을 기준으로 금 1kg의 시세는 7~8천만 원에 육박하지만 구리는 1kg에 1만 원 수준이다. 구리가 산화되는 단점을 보완하면 그동안 사용하지 못하던 이런 값싼 물질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전도성 또한 금보다 뛰어나다. 저항이 금보다 작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덜 하고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발열로 구리 산화를 우려해 사용을 못하던 산업 부문에서 사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제 이론이 나오고 기술이 개발된 것이라 상용화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지금보다 저렴한 수준의 전자제품들을 살 수 있을 거라 예상해본다.

<참고문헌>
Su Jae Kim et al., "Flat-surface-assisted and self-regulated oxidation resistance of Cu(111)", nature(2022), doi.org/10.1038/s41586-021-04375-5
Kaihui Liu et al., "Epitaxial growth of a 100-square-centimetre singlecrystal hexagonal boron nitride monolayer on copper", nature(2019) 570, 91-95, doi.org/10.1038/s41586-019-1226-z
Xiaopu Zhang et al., "Nanocrystalline copper films are never flat", science(2017) 357, 397-400, doi: 10.1126/science.aan4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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