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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도면'이라도 만들어라?…불법 부추기는 안전인증

<앵커>

금속을 자르거나 구부려서 산업용 부품을 만드는 공작기계는 사고 위험이 높아서 당국의 안전 인증을 받도록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안전장치를 달아도, 인증 과정에 내야 할 서류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오히려 불법을 부추긴다는 제보가 왔습니다.

제희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10년 넘게 중고 공작 기계를 수입 판매해 온 김향수 씨.

지난해 말 처음으로 고용노동부로부터 절단기와 절곡기가 안전 인증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김 씨는 안전 인증을 받기 위해 사람 손이나 팔이 들어가면 기계가 작동을 멈추는 별도 안전장치를 달았습니다.

[김향수/중고기계 수입판매업체 대표 : (저희도) 안전인증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안전장치나 구호장치를 저희가 만들 수는 있는데.]

그런데 인증 신청 때 반드시 내야 하는 설계도면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설계도와 조립도 같은 서류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생산된 지 오래된 기계인 데다 제작사인 일본 업체는 기술 유출 위험이 있다며 제공을 거부했습니다.

[김향수/중고기계 수입판매업체 대표 : (만약) 신품을 제작한다면 저희가 직접 도면을 그려서 비파괴검사·열처리 성적서 등이 나올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중고잖아요.]

이 업체처럼 안전 인증을 받지 못해서 운영을 못하고 있는 공장들이 이 시화반월공단에만 50여 곳에 이릅니다.

[이석우/중고기계 수입판매업체 대표 : 위험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달게 하는 게 현실성이 있는 건데. 이미 만들어진 기계에 대해서 그 서류가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근로 감독을 나왔던 노동부는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근로감독관 : 그런 내용을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관련) 제도가 아직 제대로 잘 마련되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딱히 없어요.]

김 씨는 이달 말까지 인증을 못 받으면 예전에 판매한 기계들까지 모두 수거해 직접 폐기해야 합니다.

이렇다 보니 엉터리 설계도라도 직접 그려 내야 할 처지입니다.

실제로 일부 업체는 임의로 그린 설계도를 인증 대행 기관에 맡겨 안전 인증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계 따로, 도면 따로 인증인 셈입니다.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게 인증 제도의 근본 취지라면 중고 기계 수입 단계에서 설계 도면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황인석, 영상편집 : 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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