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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구출 염전 노동자 "두려워서 말도 못했어요"

[끝까지판다] 아직도 '노예'가 있다

[취재파일] 구출 염전 노동자 "두려워서 말도 못했어요"
SBS 끝까지 판다 팀은 지난해 10월 염전 노동자 박영근 씨의 노동 착취 폭로 이후에도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신안 염전을 탈출했다는 사실을 지난 1월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염전 동료 2명이 최근 추가로 구출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경찰 조사 당시에는 피해 사실을 부인하며 염전에 남았지만, 최근 경찰이 섬 밖으로 데리고 나와 추가 조사를 벌이자 진술을 바꿔 폭행과 착취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목포에 찾아가 구출된 노동자들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물었습니다.

구출된 노동자는 "10년 동안 고향 한 번 못 가고 일했는데 번 돈은 백만 원 밖에 없다"며 "염전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있어 나가기가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언제 때릴 지 몰라 항상 겁이 났다"며 "누구한테도 하소연하지 못해 가슴에 한이 맺혔다"고 토로했습니다. 섬 안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는 사장 측이 모든 내용을 보고 받고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며 "보는 눈도 있고 두려워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최근까지도 사장 측이 "진술을 잘못하면 구속될 수 있다"는 식으로 압박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는 경찰 추가 조사를 받기 위해 증도를 벗어나는 순간 "사실대로 얘기하고 다시는 염전은 안 들어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일단 마음부터 추스르고 염전에서 못했던 걸 경험하며 살아보겠다"는 그는 "직장생활을 하고 염전에서 한 번도 못해본 신앙생활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어려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더 바랄 것도 없고, 염전에 있는 사람들 하루빨리 나오는 게, 진짜 내 인생에서 최고로 바라는 점"이라는 그의 꿈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숙제입니다. 그가 일했던 염전에서 중증 지적장애인을 포함한 노동자 4명이 나왔지만 노동자 4명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음은 최근 추가로 구출된 노동자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Q. 염전 일은 얼마나 하셨고, 돈은 얼마나 버셨나요?
"제가 여기에서 2012년부터 일해왔어요. 그런데 한 번도 고향을 못 가봤어요. 제가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면 그냥 전화 한 번만 하고 말아라, 그런 식이었어요. 추석이고 명절이고 한 번도 못 갔어요. 통장을 보니까 현금까지 포함하니까 딱 백만 원밖에 없어요."

Q. 염전을 왜 나가지 못했나요?
"저도 나갈 생각은 있었죠. 시도하려고 했는데 보는 눈이 있으니까. 가려고 해도 못 나가지, 두려움에. 사람들이 한창때는 한 방에 여섯, 일곱 명이었어요. 사람이 많으니까 도망가려고 해도 못 가요. 눈 떴는데 그 자리에 사람이 없잖아요? 그러면 얘기를 해요, 사람이 없어졌다고. 그러면 한 번 찾아보라고 그래요. 책임자가 방마다 다 뒤져보고, 창고마다 한 바퀴 돌아요. 없으면 전화해요. 그러면 차로 동네마다 다 돌고 다니지."

Q. 사장 일가가 왜 무서웠나요?
"사람들을 엄청 때렸죠. 일을 못 한다고 와서 때리고. 막 삽 있잖아요, 소금 삽. 그런 걸로 때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한 번 맞게 되면 거기에 겁나 시달리죠. 아침이 되면, 일하게 되면, 항시 불안을 가지고 일을 해요. 왜? 이 사람이 또 언제 때릴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항시 마음이 겁나는 거지. 또 와 가지고 뒤에서 어떻게 때릴까, 당연히 겁이 나지. 말하잖아요? 그러면 말대꾸한다고 또 때려요. 계속하다 보니까 이제 가슴에 한이 맺히는 거죠. 그렇다고 누구한테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그렇잖아요? 누구한테 하소연하겠어요. 내가 누구한테 이야기하면 그 사람도 또 맞아요. 그러니까 맞았어도 이야기를 안 해요. 거짓말 안 하고 한 달에 한 열 번 이상은 맞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사람이 지쳐버리죠."
전남 신안 증도 염전 모습
Q. 첫 조사에서는 왜 피해 사실을 부인했나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조사받을 때 '감금도 안 하고 폭행도 안 하고 우리 사장 참 좋다' 다들 그렇게 말했을 거에요. 사람 보는 눈도 있고 두려움 때문에 말을 제대로 못 했어요. 그때는 어떻게 나갈 길이 없잖아요. 사람도 왔다 갔다 하고 또 보는 눈도 있고. 동네 사람들이 누구 없어지면 바로 통보가 들어가. 야, 너희 집 애 어디로 가더라. 그러면 바로 차를 타고 다녀요. 그러니까 이제 두려움에 뭐 말도 못하고 나간다고 하지도 못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다 털어놓고 싶었어요."

Q. 사장 측이 경찰에서 할 말을 정해줬나요?
"주인들은 때렸어도 때리지 않았다고 말하라고, 임금이고 뭐고 너희가 저기 해서 했다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누가 먼저 조사받으러 파출소 가면 얘기를 해요. 두 사람 먼저 갔습니다. 그리고 전화로 내용을 다 말해줘요. (다음 조사 받을 사람에게) 사전에 가기 전에 전화가 와요. 가서 이렇게 얘기하라고. 그리고 또 끝나고 나면 그걸 보고해요."
"만약에 조사를 잘못 받으면 주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아요. 너희들이 거짓말 진술을 했다, 안 맞은 것도 때렸다고 너희들이 다 거짓말을 했다며 XXX라고 욕을 했어요. 너희들이 조사 잘 받았으면 OO이가 구속까지는 안 됐다고 했어요. 이해가 안 가는 게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구속된 거 아닙니까? 조사 잘못 받으면 너도 구속될 수가 있다고 그랬어요."

Q.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임금 착취 사실을 알게 됐다고요?
"통장 내역서 봤거든요. 그런데 나는 여기서 돈을 그렇게 관리하고 그렇게 쓸 줄은 몰랐어요. 황당했죠. 내가 10년 동안 일했는데 다 빼고 나니까 현재 있는 게 백만 원도 안 돼요. 돈이 다 어디 나갔는지 보니까요, 돈 몇백만 원 빠지고 또 그 다음 날 들어갔다가 다시 또 나오고 들어갔다가 또 나오고 반복했어요."

Q. 통장이랑 카드는 누가 관리했나요?
"나보고 카드랑 통장을 만들래요. 나는 신용카드도 어떻게 쓰는지 몰라요. 통장, 신용카드를 다 주인집에서 관리했어요. 내가 쓴 것도 없고. 저는 마트 간다고 해도 만 원, 이만 원, 그렇게밖에 안 사요. 그런데 돈이 순식간에 수천만 원씩 빠져나가니까. 염전 기계를 내 이름으로 한 것도 몰랐어요. 그러니 무조건 마이너스밖에 없죠."
전남 신안 증도대교 모습. 여러 섬과 다리를 거쳐 뭍과 연결된다.
Q. 섬 안에서 조사를 받을 때와 밖에서 조사를 받을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증도대교 딱 건너자마자 그랬어요. 아, 이때다. 이때다. 가서 사실대로 (전남)경찰청 가서 사실대로 얘기를 해주고 더 이상 내가 염전은 두 번 안 들어간다. (파출소에서는) 얘기해도 안 되는 것 같고. 저는 그게 또 겁나죠. 주인들하고 경찰서 사람들이 같이 알아버리면. 경찰한테도 한 번 부탁을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내가 얘기해도 그러겠죠. 직접 주인한테 한 번 얘기를 해보라고. 얘기한다 해도 안 보내주면 뻔한 건데, 내가 말을 뭐 하려 하겠어요, 내 입만 아프지."

Q. 최근에도 진술 관련 압박이 있었나요?
"여기(전남경찰청) 오는 날 아침에 가서 조사 똑바로 받아라, 그 얘기를 했어요. 법정 가면 너희들 동의하에 카드나 통장을 빌려줘서 돈을 쓰고 다음 날 현찰로 돈을 줬다고 진술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진술하면 거짓이잖아요? 진술을 잘못하면 법정에서 구속될 수 있다고 했어요. 내가 죄도 없는데 왜 구속되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Q. 이제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일단 마음부터 추스르고 나서 차근차근 하나씩 하면서 제 인생을 하려고 하죠.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거기서 못했던 거 나 스스로 경험도 해보고, 이제 한번 그렇게 살아보려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요. 회사 같은 데 한 번 들어가는 게 목표거든요, 아무래도 직장생활 하면서. 그다음 신앙생활도 하고 싶어요, 제가 여기 있으면서 신앙생활은 진짜 한 번도 못했어요. 저같이 어려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 돕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Q. 여전히 염전에 남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 생각하면 하루빨리 나오기를 바라죠. 나와 가지고 인생을 한 번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무래도 좋죠. 어차피 돈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될 거면 진작 나와야죠. 섬이나 그런 데는 어차피 못 나오겠지만. 그러니까 우리 같이 이렇게 경찰이 한 번씩 가서 뒤집고. 혼자 나오긴 저기 하니까, 같이 나와 가지고 조사도 하고 그렇게 했으면 하는 게 바람이죠. 더 바랄 것도 없고, 염전에 있는 사람들 하루빨리 나오는 게, 진짜 내 인생에서 최고로 바라는 점이에요."
전남 신안 증도 태평염전에 늘어선 노동자 숙소와 소금 창고

[끝까지판다] 아직도 '노예'가 있다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 이후에도 반복되고 있는 피해자들의 폭로. 우리 밥상에 올라온 음식들 뒤에는 여전히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끝까지 판다팀은 취약 계층을 상대로 이뤄지는 '현대판 노예 노동'이 2022년 한국에서 어떻게 가능한지 인권단체들과 함께 추적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 [끝까지판다] "다시 안 들어간다" 진술 바꾼 염전 노동자들, 왜? (풀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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