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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꿀벌이 사라졌다…대체 무슨 일이?

[취재파일] 꿀벌이 사라졌다…대체 무슨 일이?

이용식 기자

작성 2022.03.15 13:1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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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꿀벌이 사라졌다…대체 무슨 일이?
초여름에나 먹던 딸기가 어느덧 겨울 과일이 됐다. 춥고 눈 오는 겨울에 빨갛게 익은 딸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추위를 견디는 데 위안이 된 지 오래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재배 기술 덕에 제철 과일은 이제 옛말이 됐다. 경남 하동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요즘 마음고생이 심하다. 지난겨울부터 유난히 기형과가 많이 생겨서다. 기형 딸기는 상품성이 떨어져 팔 수 없고, 모두 따 버려야 한다. 비닐하우스 9동에 딸기를 키우는 이차용 씨는 주렁주렁 달린 딸기를 봐도 마음이 언짢다. 딸기 10개 중 2~3개는 모양이 이상하게 생긴 기형과이기 때문이다. 꿀벌이 수정을 못해서 생긴 불량 딸기다. 딸기 꽃이 여기저기 활짝 피었지만 꽃을 옮겨 다니는 꿀벌을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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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쯤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면서 딸기 농사에 불똥이 튄 거다. 비닐하우스 1동마다 벌통 1개씩을 놓고 딸기꽃 수정을 시키는데, 벌통 안에 꿀벌이 거의 없다. 갑자기 꿀벌이 사라져 벌을 구할 수 없어서 생긴 일이다. 꿀벌 대신 바람에 꽃가루가 날려 수정이 되다보니 상품성 없는 기형 딸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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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에서 30년 넘게 양봉을 한 정현조 씨도 올해 꿀 농사는 희망이 없다. 벌통 600개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250개 벌통이 텅 비었다. 월동에 들어갔던 벌이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벌을 다시 들여오려 해도 1통당 13만 원 하던 꿀벌 가격이 요즘엔 30만 원을 준다 해도 구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정 씨는 말했다. 꿀벌 품귀 현상이다.

국내 양봉 농가는 3만여 농가에 이른다. 벌통 수는 270만 개가량 된다. 꿀벌 실종 피해는 남부지방이 심하다. 양봉협회 윤화현 회장은 전남의 피해 규모가 70%가량으로 가장 크다고 했다. 또 지역별로 경남 60%, 경북50%,충청도 40%가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꿀벌이 사라진 것이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지자체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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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과 12월쯤 꿀벌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농촌진흥청이 농림축산검역본부, 양봉협회등과 함께 민관 합동조사를 벌였다. 조사기간은 지난 1월 7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였고, 전국 9개도 34개 시·군에서 벌을 키우는 99농가를 대상으로 했다.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최용수 연구관은 꿀벌응애와 말벌, 그리고 기후 변화 등 3가지 요인이 꿀벌 집단 실종의 원인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최 연구관은 특히 기후 변화에 주목했다. 국내 꿀 생산의 80%는 아카시아꽃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지난해 아카시아꽃이 일찍 폈고, 절정기인 5월엔 비가 자주 내려 꿀 생산이 예년의 절반에 불과할 만큼 흉작이었다. 벌통 1개당 30kg가량 꿀을 따야하는데, 생산량이 15kg에 그쳤다고 양봉협회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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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과 꽃가루는 꿀벌에게 가장 중요한 영양원이다. 꿀 생산이 적다보니 벌이 영양 섭취를 못했고, 면역력도 약해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과 12월 초 일시적 고온 현상으로 꽃이 피면서 월동에 들어간 벌이 벌통에서 나왔다. 꿀과 꽃가루를 따러 갔는데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돌아오지 못하고 밖에서 얼어 죽었다는 설명이다. 기온이 섭씨 영상 4도 이하로 떨어지면 꿀벌이 살기 힘들어진다.

꿀벌의 천적 응애류도 꿀벌 감소의 한 원인으로 조사됐다. 응애는 꿀벌 애벌레에 기생하면서 체액과 조직을 먹고 자라는 해충이다. 대부분 피해 봉군(벌무리)에서 응애가 관찰됐는데, 일부 농가에서 과도하게 약제를 뿌려 오히려 꿀벌 발육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최용수 연구관은 현재 농가들이 쓰는 응애 방제약이 30년 전부터 사용된 것이어서 내성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꿀벌 응애 방제약품은 살충제다. 벌한테 좋을 이유가 없다. 질병 퇴치를 위해 약을 뿌렸지만 내성이 생겨 응애는 못 잡고 오히려 꿀벌 유충들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최 연구관은 설명했다. 또 말벌류 중 등검은말벌은 벌통 출입구에서 일벌을 포획하는 습성이 있는데 포식성 말벌의 퇴치가 어려워 지난해 10월까지 큰 피해를 준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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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는 피해를 입은 양봉 농가에게 농업경영회생자금을 융자해 주고, 응애 등 질병 방제약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꿀벌응애 친환경 방제 기술과 드론을 이용한 말벌 방제 기술을 개발해 양봉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꿀벌은 딸기뿐 아니라 참외, 수박, 사과, 배 등 꽃을 피우는 대부분의 식물 수정(수분)을 돕는 아주 유익한 곤충이다. 세계 100대 농작물의 71%가 꿀벌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농산물 생산이 줄어들고 더 나아가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 변화의 위험은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데 있다. 온난화에 따른 이상 징후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꿀벌의 실종도 기후 변화의 시그널일지 모른다. 생태계 구성원들이 제 할 일을 하면서 어울려 살아갈 환경 균형을 유지해줘야 한다. 생태계 균형은 인류에게 발등의 불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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