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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죄짓고 살지 맙시다

[인-잇] 죄짓고 살지 맙시다

시골소방관 심바씨 | 마음은 UN, 현실은 집나간 가축 포획 전문 구조대원

SBS 뉴스

작성 2022.03.13 10:56 수정 2022.05.03 11:2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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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죄짓고 살지 맙시다
"방역 위반 업소 방화문 개방"

출동벨이 울리고 지령서 PC에 사건 내용이 떴다. 처음 보는 지령이었다.

구조대는 종종 '시건개방'이라는 이름으로 문이 잠긴 현장에서 장비로 문을 개방하는 일을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자살이 의심되는 사건이나 노부모님과 연락이 되지 않아 안부 확인을 위해 개방해달라는 신고가 제일 많다. 그 외에 경찰 협조 건도 있다. 한 번은 경찰 협조 건으로 출동을 나갔다가 가죽재킷을 입은 형사들에 둘러싸여 현관문을 개방한 적이 있다. 문 앞에서 형사들이 범인에게 문을 열고 자수하라고 소리치는데, 우리가 문을 따면 범인이 칼을 들고 뛰쳐나올까 봐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문이 열리자마자 형사들이 우르르 들어가 우당탕탕 하더니 곧바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고개를 빼꼼 집어넣고 그 현장을 지켜본 팀원의 말에 의하면 범인은 베란다에 기대고 앉아 마지막 담배 연기를 하늘로 내뿜고 있었단다. 그 모습이 영화 신세계의 한 장면 같았다고 표현했지만 현실은 교도소 입소 전 마지막 담배였지 뭐.

방역 위반 업소 방화문 개방이라는 지령을 받고 구조차에 올라타서 태블릿 PC로 자세히 보니 주소는 모 노래방이었고 남원시청 협조 건이었다.

"남의 업소 문을 개방해달라고? 그래도 되나? 경찰도 없이."

나름의 경험 데이터로 볼 때 이건 안될 일이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 반장!! 현장 도착하면 문 개방 동의서 시청 직원한테도 받고 건물주한테도 받고 여기저기 받아. 경찰 없으면 주거침입이니까 남의 집 문 열 때는 확실히 해둬야 뒤탈이 없어."

팀장님의 말에 깜짝 놀랐다. 혼잣말을 했을 뿐인데 거기에 맞는 대답을 척-척-해주셨다.

"내 말이 들리나.."

나의 혼잣말에 대답을 해주시는 팀장님을 보며 이래서 소방은 짬밥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습관처럼 뒷머리를 긁으며 운전하시는 소방 짬밥 24년 차 팀장님 모습에 잠시 빛이 났다.

남원 구시가지에 있는 불 꺼진 2층 건물 앞에 도착을 하였다. 주변 상점들도 일찌감치 영업을 종료하고 문을 닫는 분위기였다. 우린 방화문을 열 수 있는 장비들을 챙겨 2층 노래방으로 올라갔다. 문 앞엔 경찰과 시청 단속 직원들이 우리 오기를 숨 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구조대입니다."

어둠 속에 속삭였다.

"예 안녕하세요. 여기가 영업 제한시간이 지났는데도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신고가 들어와서요. 혹시나 안에서 문을 안 열어주면 따주실 수 있는가 해서 불렀어요."

직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찰이 문을 두드리며 내부에 사람을 부르기 시작했다.

"경찰입니다.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신고받고 왔어요. 문 좀 열어주시죠."

문 너머로 쥐 발자국 소리 같은 게 들렸다. 수차례 경찰이 불렀음에도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개방하시죠."

경찰의 말에 구조대는 최대한 문에 손상이 없도록 개방해나갔다. 문고리를 제거한 구멍에 송곳과 일자 드라이버를 넣고 돌리는 순간 노래방의 문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렸다. 내부는 불이 꺼져있었지만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팀장님께선 경찰이 수색을 도와달라고 하기 전까지 구조대는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경찰과 시청 직원들이 들어가 노래방 내부를 돌아다녔지만 작은 휴대폰의 불빛으로는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해코지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경찰도 곧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린 자동차 써치 라이트처럼 밝은 휴대용 탐조등을 들고 노래방 내부에 진입했다. 밖에서 봤을 때 작은 건물 같아 보였는데 꽤나 많은 룸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수상한 룸을 발견했다. 노래방 기계는 꺼져 있었지만 테이블 위에는 술이며 담배, 안주들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방금까지 술을 마시던 흔적이었다. 그런 방은 또 하나 발견되었다. 술잔을 세어보니 얼추 13명 정도의 사람이 그 시각에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았던 것이다. 엄연한 방역수칙 위반이다.

룸들이 연결되어 있는 복도 끝에는 건물 뒤로 빠져나가는 문이 존재했고 이미 사람들은 그 문을 이용하여 사라진 상태였다. 방화문 밖에서 들었던 쥐 발자국 소리가 사람들 발자국 소리였던 것이다. 난 그 소리가 나만 들은 환청인 줄 알고 무서워했는데 사람들이었다는 게 확인되고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수색이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복도 반대편 쪽에 있는 문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팀원이 나왔다. 그 광경을 보고 시청 직원 한 명이 문으로 따라 들어갔다 덤덤하게 나왔다. 나는 처음에 노래방을 진입하면서 그 문 쪽 내부를 한번 둘러본 터라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팀원이 내 어깨를 잡더니 저 안에 사람이 있는 거 같다고 슬쩍 이야기를 던졌다.

휴대용 탐조등을 들고 있던 나는 다시 그 안을 비춰 보았다. 내부는 아까와 똑같았다. 외부 유리창과 시멘트 벽면 사이의 쓸데없는 공간을 창고처럼 쓰고 있었다. 시멘트 벽과 바닥이었고 공간은 협소한 긴 통로처럼 되어 있었다. 너무 비좁아서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 쾌쾌한 곳이었다. 탐조등만 다시 이리저리 비추는데 좁은 길 끝에 뭔가 덜덜 떠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착착 소리를 내며 앞으로 움직였다. '뭐야! 귀신인가?' 자세히 보니 사람 엉덩이였다. 몸통과 머리는 숨겼는데 엉덩이를 숨길만한 엄폐물은 없었던가 보다.

"뭐예요?"

경찰이 내쪽으로 걸어오면서 물었다.

"음.. 경찰관님이 와서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 안에 있던 노래방 사장은 "아이고 너무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를 연발하며 경찰에 인계되었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사건이 있고 한동안 그 사장님의 엉덩이가 생각이 났다. 마치 사냥꾼에 쫓기는 사슴이 머리만 수풀 속에 집어넣고 벌벌 떠는 모습이 그 동네를 지날 때 마다 뇌리를 스쳤다. 우리는 정의의 사도나 되는 것처럼 노래방을 들쑤시고 다녔지만 현장에서 막상 겁에 질린 업소 사장님을 마주하니 여러 가지 생각과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건 연민 같기도 하고 뭐랄까 공감이라고 해야 할까.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공감. 그리고 자영업자로 살았던 사람으로서의 안쓰러움.

나도 장사를 해봤다. 서울 회기동에서는 삼겹살 김밥을 파는 푸드 트럭커였고, 망원동에서는 깐풍기 가게를 운영했다. 매일매일 손님들에게 밝은 에너지를 전하기 위해 웃었고 인사도 열심히 했다. 지나가는 동네 강아지한테도 매일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장사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장사를 한다는 건 내가 만든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는 것과 똑같다고.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서서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매우 외로운 길이었다. 외롭기만 하면 괜찮은데 문제는 늘 돈이었다. 자기 건물에서 장사를 하지 않는 한 월세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월세, 수도세, 전기세, 가스비, 세금 등 내야 할 돈들이 이렇게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왜 이리도 들쑥날쑥인지. 나는 비 오는 날이 제일 싫었다. 비가 오면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님은 날씨가 너무 더워도 너무 추워도 없었다. 날씨가 따뜻한 날엔 다들 데이트하러 먼 길을 떠나기에 또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으로 후 불면 날아가는 게 바로 자영업이었다.

서울 망원동에서 깐풍기 장사를 했던 지난 날.

그랬는데 지금 코로나로 2년 가까이 이러고 있으니 저 사장님의 시커멓게 탄 속이 사람의 속일까 말이다. 그때 나는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됐는데, 이 시국에 딸린 식구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진짜 도둑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지 않을까. 이 노래방 사장님도 진짜 오죽했으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손님을 받았을까 싶었다. 따지고 보면 그 시간까지 정신 못 차리고 술 마시며 노래 부른 사람들이 더 잘못이지.

솔직히 말하면 탐조등으로 비추다가 엉덩이를 발견했을 때 떨고 있는 사장님을 그냥 못 본채 해줄까도 했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이 정도 겁을 줬으면 앞으로 다신 안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한데 운이 없던 거였다. 마침 경찰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소방관은 정의를 실현하는 그런 캐릭터는 아니지만 저분들은 정의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라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뭐 알아서 잘 처리하셨겠지.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에서 장발장은 가난과 굶주림에 빵을 훔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겨우 빵 하나 훔쳐서 5년 형을 선고받은 장발장은 중간에 4번의 탈옥을 시도하다 결국 19년이란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고 중년이 되어 출옥을 한다. 선과 악, 사회의 모순, 자유, 이상 등 원작자가 가진 사상을 매우 잘 표현한 대작이다. 나중에 이 대작을 내 아이에게 설명을 하는 날이 온다면 난 한마디로 정의하고 싶다.

"아들아 애초에 빵을 훔치지 마라. 알겠지?"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영업은 힘들고 취업을 안되고 주식은 땅바닥이다. 심지어 옆 옆 나라는 전쟁 중이다. 혼란의 시기에 유혹의 손길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죄는 짓고 살지 맙시다.



#인-잇 #인잇 #시골소방관심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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