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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핀란드판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그 남자는 타이나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 영화는 '인생 찬가'이며 적은 예산으로도 독창적 아이디어와 무한한 용기로 만들어진 '작은 거인' 같은 영화입니다."

좋은 영화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에게 좋은 영화란 다른 사람의 삶에 깊숙하게 들어가 볼 수 있는 영화다. 이런 영화를 만나면 극장 불이 꺼진 후에도 마음의 불이 쉽게 꺼지지 않는다.

지난 10일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라는 특이한 제목의 핀란드 영화도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주인공인 야꼬는 다발성경화증(MS)으로 시력을 잃고 하반신까지 마비된 40대 중반 남성이다. (*다발성 경화증: 환자의 면역체계가 건강한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으로 한 번 발병하면 회복되지 않는 희귀난치성 질환)

어느 날 그는 전화로만 데이트를 하던 여자친구로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중증 장애인인 그가 혼자서 그녀를 만나러 집을 나서면서 영화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 영화는 시각 장애인인 야꼬의 관점을 느낄 수 있도록 촬영됐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우리는 주로 희뿌옇게 처리된 화면을 쳐다봐야 한다. 기존에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대담한 촬영 방식은 관객과 주인공을 같은 눈높이에 두며 동정이 아닌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감독의 숨은 장치로 보여진다.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연히 장애를 입은 사람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는 감독의 말에서도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스틸컷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스틸컷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스틸컷.

뿌연 화면과 클로즈업한 주인공의 얼굴만으로 필름을 가득 채운 이 영화는 놀랍게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액션은 없지만 액션 영화처럼 흐름이 빠르고 몰입도 또한 최고다. 휴먼 드라마, 스릴러, 서바이벌, 로맨스가 다 들어있다. 2021년 베니스 영화제 관객상인 오리존티상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 긴박감 속에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주인공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특히 돋보인다. 야꼬 역을 맡은 페트리 포이꼬라이넨(Petri Poikolainen) 씨는 시각 장애와 하반신 마비가 겹친 중복 장애인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페트리 씨가 그 어떤 트릭 없이 완벽한 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극 중 주인공과 같은 병을 앓고 있으며 시각 장애와 하반신이 마비된 것까지 똑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다. 그리고 페트리 씨도 전문 배우 출신이다. 10년 전 이 병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그는 연극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이 모두가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이야기는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영화를 감독한 테무 니키(Teemu Nikki) 씨와 페트리 씨는 군대에서 처음 만났다. 군 연극에 함께 참여하며 영화감독과 배우가 되겠다는 각자의 꿈을 함께 나눴다. 제대 후 연락은 끊어졌지만, 두 사람 모두 꿈을 향해 열심히 나아갔다. 테무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돼지 농장에서 돼지를 돌보는 대신 (그는 돼지가 너무 싫었다고 한다) 비디오를 보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처럼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다. 영화사 밑바닥에서 거의 무급으로 일하며 한 계단씩 밟아 나간 그는 마침내 영화감독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페트리도 핀란드 최고의 연기학과를 졸업하고 연극배우가 됐다. 그러나 2008년 가을 어느 날, 33세의 페트리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다발성경화증 진단이 내려진다. 눈물이 났다는 것 외에 그날에 대해 그가 기억하는 것은 없다. 2년간 발병 사실을 동료들로부터 숨기고 무대를 떠나지 않으려 애썼지만, 급격히 악화되는 병세로 2011년 12월 13일 (페트리 씨는 이 날짜를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마지막 공연을 뒤로한 채 연극 무대를 떠난다.

그 후 1년이 가장 어려운 한 해였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병세가 얼마나 더 나빠질지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2013년에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게 되었고 2016년에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 와중에 이혼도 하게 된다. 인생이 끝났다고 절망도 했지만, 절망의 끝에서 그는 다시 살아나게 한 것은 하나의 굳은 결심이었다.

'절대로 인생에 투덜거리거나 분노하지 않겠다.'

그리고 또 이렇게 되뇌었다.

'다른 사람만큼 나도 귀중한 사람이다.'

지금도 그의 인생 좌우명은 "모든 사람은 다 귀중하다" 이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 무한 긍정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2018년에는 휠체어를 타고 하프 마라톤에 도전, 완주에 성공하며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즈음 페트리와 테무는 그야말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테무의 누나도 비슷한 자가면역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 누나가 같은 병원에서 페트리와 만나 대화를 나누다 영화감독이 된 동생 얘기를 하게 됐다. 그는 그 영화감독 동생이 자신의 군대 친구 테무임을 알게 됐다.

테무 니키 감독.

"너 연극 같이 했던 미치광이 사보(핀란드 중부에 있는 한 지방) 촌뜨기 기억나?"라며 그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이 둘은 아이러니하게도 병 때문에 24년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테무는 친구에게 그간 벌어진 일을 듣고 많이 놀랐다. 그러나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페트리에게 감동하게 된다. 이런 감동은 놀라운 제안으로 이어진다.

"혹시 아직도 배우 하고 싶어?"
"미치도록…."

연극배우로 활동했지만, 페트리의 원래 꿈은 영화 주인공이었다. 테무는 친구의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영화감독이 되어 있었다.
그는 몸이 아프다고 촬영을 살살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페트리에게 살짝 엄포를 놓았다. "네가 비싸지 않아서 출연시키는 거야"라며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만 통하는 블랙 유머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편 영화로 기획됐지만, 감독은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며 이 영화가 생각보다 길고 의미 깊은 영화가 될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작비를 지원할 제작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페트리 대학 친구들의 우정 출연으로 일단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히려 제작자의 큰 입김 없이 독창적이고 자유롭게 영화를 찍을 수 있어서 전화위복이 됐다.

페트리는 눈이 안보여 소리를 들으며 대사를 익혔야 했다. 촬영 중 다리에 끓는 물을 붓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찾아올 때도 많았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발휘하는 그를 바라보며 촬영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때로는 촬영 감독이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모니터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래도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았다. 페트리가 보여준 무한 긍정의 태도와 유머 감각은 울음을 곧 웃음으로 바꿔주었다. 그의 옆에 손과 발, 그리고 눈이 되어 준 19세 아들 라쎄도 촬영 기간 큰 몫을 해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바로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이다.

페트리는 그가 지난 10년 경험했던 모든 것을 이 영화에 쏟아부었다. 영화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은 조금 늦었지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꿈조차 꾸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작년 8월 핀란드 국내 영화 시사회에 그는 턱시도를 입고 참석했다. 그는 이 경험을 '8월의 크리스마스 선물' 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날 그에게 시사회보다 더 뜻깊었던 것은 아들로부터 들은 "아버지가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라는 한마디 말이었다. 그 이후 9월에 열린 베니스 영화제까지 직접 참석, 관객상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영화제 수상과 호평으로 전 세계 보급의 길이 트이며 여러 나라에서 이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됐다.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스틸컷.

그가 이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과 같이 인생의 많은 소망이 남아있지 않은 사람도 이 영화를 본 뒤, 조금의 힘이라도 얻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리고 두 번이나 힘주어 이렇게 말했다.

"You can if you want!"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페트리는 현재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전화하지 않는 한 컴백은 없다며 즐겁게 공식 은퇴를 선언한 상태다. 최근, 고향으로 이사한 그는 여생을 그곳에서 보낼 예정이다. 21세 나이에 큰 꿈을 품고 떠났던 고향에 꿈을 다 이루고 그만의 금의환향을 했다.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릴 수 있는 익숙한 곳이라 훨씬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어릴 적 살던 집과 가까운 곳에 있다. 그곳에는 여전히 노모가 살고 있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그에 관한 모든 것들을 차곡차곡 앨범에 모아놓고 있다. 이번 영화로 기사가 넘쳐나서 새로운 앨범을 구매하셨다고 한다.

영화를 찍은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페트리의 건강 상태는 그 전보다 나빠졌다. 손도 점차 마비되어 좋아하던 기타도 이제는 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예상을 또 벗어나는 핀란드 전통 가요 한 구절이 흘러나왔다.

"Elämä on ihanaa kun sen oikein oivaltaa~"
(깊이 깨달으면 인생은 얼마나 멋진 것인지요~)
 
P.S. 페트리와 영화 속 야꼬는 유머 감각, 초긍정적 삶의 자세까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한가지가 다르다. 페트리는 타이타닉 영화를 보았다. 본 정도가 아니라 그 영화의 열성 팬이다. 개봉 첫날 영화관에서 직관했고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울음을 못 그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

알고 보니 타이타닉을 아직까지 안본 사람은 감독 테무였다. 그가 타이타닉을 보지 않은 이유는 극 중 야코와 같다. (그 이유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서 말하지는 않겠다.) 다행히 그는 타이타닉 관람에 대해 일말의 가능성은 열어 두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사나이'로 부르는 소중한 친구 페트리의 요청이라면 한번 고려해볼 예정이다.

#인-잇 #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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