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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중고차, 현대차가 팔면 다르다? 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들

[취재파일] 중고차, 현대차가 팔면 다르다? 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들
현대자동차가 7일 중고차 사업 방향을 공개했습니다. 완성차업계가 지난해 말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지 두 달여 만입니다.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건 역시 업계 1위 현대차와 기아였습니다. 지난 달 20일 두 업체는 각각 경기 용인과 전북 정읍에 자동차매매업 등록 신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조사가 인증한 중고차"

기존 중고차 시장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자신이 제 값에 차를 사고 파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구매자의 경우 혹시나 문제가 있는 차를 속아서 사는 건 아닌지 불안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조사답게 현대차는 보유한 기술력을 활용해 성능 검사와 수리를 거친 인증중고차(CPO·Certified Pre-Owned)만 시장에 공급한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중고차 시장 진출의 명분으로 현대차가 내세웠던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 전략입니다.

이를 위해 5년, 주행거리 10만 ㎞ 이내의 자사 브랜드 차량을 대상으로 국내 최대 수준인 200여개 항목의 품질검사를 실시하고, 이를 통과한 차량을 신차 수준의 상품과 판매 과정을 거쳐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매집점검'-'정밀진단'-'인증검사'으로 이어지는 3단계 품질 검사와 인증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중고차 매매업계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당 업계와의 협의 내용을 반영해 만든 자체 상생안도 이행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인증중고차 대상 이외의 매입 물량은 경매 등을 통해 기존 매매업계에 넘기고 특히 올해 2.5%를 시작으로 2023년 3.6%, 2024년 5.1%로 중고차 시장 점유율도 자체적으로 제한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현대차 측은 중고차 정비와 부품, 유통·관리, 중고차 기반 사업이 확장돼 기존 중고차 업계의 판매와 매출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고객 위한다면 5년, 10만 km 이상 차량 취급해야"

하지만 현대차의 이런 움직임을 바라보는 중고차 매매업계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먼저 현대차가 중고차 매매업 대상으로 하겠다는 '5년, 주행거리 10만 ㎞ 이내의 자사 브랜드 차량'은 중고차 매매업에서 사실 가장 노른자위입니다. '5년, 주행거리 10만 km'를 넘어가는 중고차…자금력이 달려 일부러 싼 차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면 '많이 타고 오래 탄 차'를 찾는 고객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중고차 업체 입장에서도 가격이 낮아 애써 팔아도 높은 수수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차를 반길 리 없습니다.

또 하나, 현대차는 자사 브랜드만 취급하겠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말 신차 기준으로 현대차와 기아가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3.5%에 달합니다. 중고차 시장 비중도 신차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업계 설명대로라면 절대 물량을 현대차와 기아가 차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5년, 주행거리 10만 km 이내 차량은 사고 차량이 아닌 한 세차, 광택 정도만 하면 되는 경우가 많다며 현대차가 정말로 소비자를 위해 중고차 업계에 뛰어든 거라면 원래 보증수리기간에 들어가는 5년, 10만 km 이내 차량이 아니라 그 보다 더 오래되고 더 많이 주행해 진짜 제조사의 점검이 필요한 차량을 취급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또 현대차가 소비자들에게 정보 제공을 위해 마련하겠다고 한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도 이미 국토교통부 '자동차 365' 사이트에 다 정보가 올라와 있다며 새삼스러울 게 없는 걸 보도자료로 포장해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중고차 업체를 믿을 수 없다면 시장에 들어와 있는 대기업형 브랜드들을 이용하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현대차가 내세운 보상판매 '트레이드 인'(Trade-in) 프로그램을 지목하며,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소비자들이 현대차의 신차를 살 때, 타던 차는 대부분 현대차에 넘기게 돼 결국 현대차가 자동차 생애주기 시장 전반을 장악하게 될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쉽게 말해 쓸만한 차는 현대차가 대부분 갖게 되며 중고차 경매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이 가격과 물량을 통제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겁니다.
현대차

심의위 앞두고 사업 방향 공개한 현대차

현대차나 중고차 업계 모두 시장을 두고 다투고 있는 상황인 만큼 어느 한쪽 당사자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을 순 없습니다. 중고차 시장에서 그간 소비자 불만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동반성장위원회가 2019년 11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추천하지 않은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다만, 대기업이 진출하면 해당 분야의 품질과 서비스가 높아지는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전반적인 가격대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지난 1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중고차 사업 개시 일시 정지 권고를 받은 현대차가 사업 진출 여부를 결정할 심의위를 앞두고 또 다시 자신들의 사업 방향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압박 수위를 높인 걸 보면, 소비자만을 위한 선택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게 된다면 현대차 주장대로 전반적인 서비스 질과 정보 대칭성이 개선될지, 아니면 기존 중고차 업계의 말대로 신차-중고차 시장 전반이 현대차그룹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게 또한 경제 정책입니다. 이번 제조사의 중고차 시장을 결정할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가 이달 안에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그 결과부터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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