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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갈 길 먼데 '시험발사 성공' 도장 남발…ADD도 정치하나

[취재파일] 갈 길 먼데 '시험발사 성공' 도장 남발…ADD도 정치하나
▲ 국방부가 공개한 L-SAM 발사 장면

대선 후보들이 "국산 장거리요격체계 L-SAM이 2~3년 내 전력화된다", "수도권 방어에 한국형 아이언돔인 장사정포요격체계가 적합하다" 등 설익은 주장을 거듭하는 가운데 청와대가 불쑥 L-SAM과 한국형 아이언돔의 시험발사 성공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국방부는 안보 불안 해소라는 명분을 내세워 L-SAM과 한국형 아이언돔의 시험발사 영상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L-SAM은 내년에나 요격시험하고, 한국형 아이언돔은 개발 착수도 안 된 무기입니다. 개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개발 중간 단계 또는 개발 전 단계의 무기이기 때문에 국방부 공보 준칙에 따라 비공개가 원칙입니다. 게다가 대선 국면에서 대북 미사일 방어 방법론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무기들이니 국방부는 언급을 자제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아무 상관없는 미국 무기 영상까지 몰래 삽입해서 L-SAM과 한국형 아이언돔의 영상을 공개하는 바람에 대선 개입 논란을 초래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국방부는 정치합니다. 통수권자와 청와대의 지침을 받아 군을 통솔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청와대의 정치 입김에 휘둘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군과 더불어 국방과학은 정치하면 안 됩니다. 안보만 바라보며 우직하게 연구해서 좋은 무기 개발하기를 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정치 이익과 안보 이익이 유별하니 국방과학은 안보 이익만 좇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거 개입 논란을 부른 국방부의 L-SAM, 한국형 아이언돔 영상 공개에 국방과학의 본산 ADD(국방과학연구소)가 깊이 개입했습니다. ADD가 모든 영상을 제공한 것입니다. ADD는 "국방부가 달라고 해서 줬다"는 입장인데 영상 자료의 면면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많습니다. 작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기 개발하랬더니 영상 개발한다"는 수근거림이 방산업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부터 벌어진 일들과 ADD

  
국방부가 공개한 장사정포요격체계(한국형 아이언돔)의 시험발사 장면.
 
청와대 발표와 국방부 영상 공개의 대상은 지난달 23일 ADD 안흥시험장에서 실시된 L-SAM과 한국형 아이언돔 시험이었습니다. L-SAM은 요격 미사일이 비행하는 과정을 점검했고, 한국형 아이언돔은 선행핵심기술을 검증했습니다. L-SAM은 내년부터 개발의 성패를 가를 요격시험에 착수하고, 한국형 아이언돔은 올 가을에나 개발의 첫발을 떼기 때문에 지난달 23일 안흥시험장 시험은 정부나 대중이 크게 주목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서욱 국방장관, 청와대 고위직, 박종승 ADD 소장 등이 참관했습니다. L-SAM과 한국형 아이언돔이 대선 논쟁에 휩쓸린 와중에 ADD가 L-SAM과 한국형 아이언돔의 초기 단계 시험을 한다며 국방장관, 청와대 고위직을 부른 셈입니다. 장관과 청와대 고위직이 이런 정도의 시험마다 참관할라치면 일주일에 한두번 안흥시험장으로 출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달 24~25일 국방부 당국자들, 귀 밝은 기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습니다. "청와대가 L-SAM 관련 발표를 하고, 국방부는 영상을 공개한다", "대통령이 3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국산 요격체계를 언급하고,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관련 메시지가 나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소문은 시차를 두고 100% 실현됐습니다. 일련의 과정이 다분히 정치 공식에 따라 진행됐는데 그 중심에 ADD와 박종승 소장이 있었습니다.
 

ADD가 제공한 '정치적 무기'의 영상들

 
김태훈 취재파일
국방부가 공개한 장사정포요격체계(한국형 아이언돔) 발사대, 레이더 등의 사진
 
국방부는 지난 2일 우리 군 핵심 무기 영상을 언론에 배포했습니다. 의도를 의심케 하는 컷들이 영상 곳곳에 있었습니다. 영상의 L-SAM 부분은 미국 미사일방어청의 요격체계(GBI) 태평양 발사 장면을 L-SAM 시험발사 도입부처럼 사용했습니다.

한국형 아이언돔은 더 심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올 가을 탐색개발에 들어가 13년 뒤인 2035년 개발 완료되는데 마치 개발이 끝난 것처럼 발사대, 레이더, 교전통제소 실사 사진을 내놨습니다. 확인 결과 모형(mock up)이었습니다. 또 국산 함대공 미사일 해궁을 조금 손봐서 발사한 뒤 진짜 시험발사처럼 보이도록 편집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영상에는 청와대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의 SNS처럼 '시험발사 성공'이라고 적어놨습니다.

내밀한 데까지 알 수 없는 국민들에게 L-SAM과 한국형 아이언돔의 시험발사 성공, 개발 완료의 이미지를 심었습니다. L-SAM과 한국형 아이언돔이 언제 실전배치되는지 기대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성공을 낙관할 수 없는, 살얼음판 같은 단계입니다. 실전배치는커녕 개발 완료까지 L-SAM은 3년, 한국형 아이언돔은 십수년이 더 필요한 터라 ADD 과학자들의 부담만 커졌습니다.

이 모든 영상은 ADD가 제작해 국방부에 제공한 것입니다. ADD 핵심 관계자는 "국방부 요청을 받고 영상들을 제공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3일부터 벌어진 일을 보면 국방부가 ADD에 영상을 달라고 한 이유는 뻔했습니다. ADD는 공개될 줄 모르고 영상을 국방부로 넘겼을까요? 기술적, 과학적, 정치적으로 공개하기에 부적절한 영상들이었습니다. ADD 스스로 정치적 영상, 덜 익은 영상은 걸러내야 했습니다.
 

작년엔 탐색개발 장거리공대지 모형 공개

 
2017년 6월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후 박종승 당시 유도무기체계단장이 대통령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ADD를 방문하자 ADD는 SLBM, 고위력탄도미사일과 함께 KF-21용 장거리공대지미사일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다른 미사일들과 달리 장거리공대지는 관통탄두도, 위성항법장치도, 엔진도 없는 미완성 모형이었습니다. 영상은 F-4 전투기에서 분리돼 폭탄처럼 떨어지는 장면인데, 항법장치의 인도를 받아 엔진의 추진력으로 비행한 것처럼 편집됐습니다.

작년 9월이면 장거리공대지미사일은 기초적인 탐색개발 단계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본격적인 체계개발을 맡을 주관기관을 정하지 못해 군 당국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KF-21의 양산 일정에 맞춰 개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늦어지면 KF-21의 경쟁력은 땅에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ADD는 작년 9월 바다, 육지, 하늘에서 쏘는 3종 세트의 구색을 맞추려는 듯 장거리공대지 모형을 개발 완료 미사일인 것 마냥 포장해 공개한 것입니다.

개발 중 또는 개발 전 단계 무기의 공개는 흔치않은 사례입니다. 작년과 올해 유독 자주 발견되는 특이점인데 ADD의 대외적, 정치적 과시욕으로 풀이될 소지가 큽니다. 작년 4월 ADD 총책임자로 취임한 박종승 소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2017년 6월 대통령 참관 하에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대통령 앞에서 눈물을 훔쳐 청와대의 눈도장을 받은 인물입니다. 밖으로 눈 돌리지 말고 첨단 비닉(秘匿) 기술 개발에 전념하기를 바랍니다. 영상 공개는 그 다음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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