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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팔다리가 잘렸으면 동정이라도 받을 텐데"…남겨진 고통

중대재해법 시행 한 달, 현장의 목소리 ③

남들은 '벌써 5년 전'이라고 하지만 영환 씨에겐 억겁의 시간이었습니다. 2017년 노동절, 오후 휴식 시간에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타워크레인 충돌사고. 6명이 목숨을 잃고 26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영환 씨가 '한 다리 건너면 아는 동료들'의 생사가 하루아침에 엇갈렸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선 서서히 잊혀졌지만, 영환 씨의 일상은 크레인과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동료의 참혹했던 순간은 불시에 살아나 영환 씨를 끈질기게 괴롭혔습니다. 사고 당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출근한 사람은 공식적으로 1,623명, 대부분은 하청업체 노동자였습니다. 그중 최소 5백 명이 넘는 사람이 사고를 목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환 씨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순식간에 (크레인이) 무너지고…. 멍하니 있는데 그 순간에 와이어가 딱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거예요. 휘릭휘릭 하면서. 제 왼쪽에 있는 어떤 사람이 와이어 같은 걸 한 대 맞고 딱 쓰러지더라고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전혀 분간도 안 되고….그때 사람이 깔려 있는 장면은 지금은 기억이 안 나거든요. 왜 그런지, 기억이 지금은 좀 지워졌는데 그 순간에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고 있는 거예요. " -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목격자 김영환 씨

제희원 취재파일용

같이 일하던 동료가 죽어간 자리…전이되는 감정

사고 열흘 만에 영환 씨는 조선소 현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아 보려 했지만, 날이 갈수록 별것 아닌 일에 울컥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동이 트는 걸 확인하고서야 겨우 잠드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어린 아들이 뛰노는 소리에도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은 못 견디게 괴로웠습니다.
 
"초반에는 좀 괜찮았어요. 괜찮았는데 가면 갈수록 소리에 되게 예민해지더라고요. 그때 저희 아들이 일곱 살이었으니까, 한참 이제 뛰어놀 때잖아요. (아들이) 노는 것도, 노는 소리도 듣기 싫은 거예요. 집사람이 조금만 크게 말해도 싸움이 나는 거예요. 물건도 이제 막 자꾸 집어던지기 시작하고 너무 화가 나니까 제가 좀 약간 심기가 조금만 거슬려도 이제 막 불같이 화를 내니까…."
 

"저는 사고를 목격한 입장밖에 안 되니까요."

보이지 않는 상처로 고통받는 영환 씨에게 세상은 날 선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친구와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이해받기 어려웠습니다. 우울과 분노, 슬픔과 불안 같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아쳤고,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복용해야만 그나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트라우마로 산업재해를 인정받는 과정 역시 험난했습니다.
 
"나중에는 오히려 돌아가신 분들이 되게 좀 부럽더라고요. 나중에는 되게 부러웠어요. 저는 그냥 사고를 목격한 그런 입장밖에 안 되니까요. 저는 어디 다친 것도 아니고, 팔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정신적인 문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어요. 제가 이렇게 힘들다고 아프다고 얘기해도 선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산재)인정을 안 해주려고 했고요."

영환 씨는 트라우마로 산재를 끝내 인정받았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봐 산재 신청을 포기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사측에) 트라우마 치료를 요구하면 밥벌이가 끊어질 수도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근거 없는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영환 씨 역시 산재 신청 과정에서 협력업체 간부로부터 '아프지 않다', '병원 안 다녀도 된다'는 각서에 서명을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서명하지 않으면 팀에도 불이익을 준다는 협박도 받았습니다. 사고 그 자체보다 이후 '회사에서 벌어진 일을 회사가 입막음하는 과정'이 더욱 상처가 됐습니다. 결국 일터를 떠나고 거처를 옮기는 동료들이 하나둘 늘었습니다.
 

"마음이 아픈 건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정의당 강은미의원실 제공 자료)

영환 씨처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산재를 신청한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표 참고) 5년 전에 비하면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문제는 다른 산재에 비해 정신적 외상을 증명하는 과정이 훨씬 지난하다는 겁니다. 발병 초기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산재를 신청해 승인받기까지 평균적으로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립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자신이 처한 괴로움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어 당장 생계도 막막해지는 건 다반사입니다. 혹여 산재로 인정받더라도 주변의 시선과 사회적 고립으로 당사자는 이미 지쳐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환 씨가 다시 카메라 앞에 어렵게 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제가 계속 인터뷰를 하는 이유는 저희 아들만큼은 정말 사고당하지 말고, 혹시 사고를 당하더라도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거든요. 이것만큼은 꼭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보호를 받지 못했거든요. 아들이 이제 12살이에요. (아들한테) 미안하죠 되게."

제희원 취재파일용

과연 '그들만의 불행'일까

우리나라에서 매년 산업재해에 따른 경제적 손실규모가 무려 20조에서 30조 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사실 마음속 깊이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위험의 외주화' 탓에 하청 노동자가 주로 죽고 다친다는 기사를 줄곧 썼지만, 그 현실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산재라는 풍파를 만나 생이 뒤바뀐 사람들을 직접 만난 뒤에는 마음이 오랫동안 무거웠습니다. 끝내 피해자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았던 기업들. 인터뷰 내내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눈언저리가 자주 벌게졌던 영환 씨의 얼굴. 뉴스에 다 담지 못했던 중대재해 그 이후의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였습니다.

대형 산업재해 이후 꾸려진 조사 단체와 전문가들은 중대재해 재발 방안에 대해 이렇게 입을 모읍니다. 결국 손봐야 할 것은 구조의 문제인데 1) 비용 절감만을 위한 도급화를 막고, 2)위험을 제어할 수 있는 주체에게 산업안전에 관한 전반적인 권한과 의무를 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임기응변식 사고 대응을 넘어설 수 있는 변화의 첫걸음이라는 겁니다. 노동자가 '위험한 것을 알고서도 계속하지 않아도 되는' 작업장의 분위기도 중요합니다. 아파도 참고 일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 누구나 위험한 상황에서 스스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당연해져야한다는 겁니다.

어제(2일) 현대제철에서 50대 노동자가 금속을 녹이는 대형 용기에 빠져 숨졌습니다. 홀로 450도가 넘는 액체 금속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한 걸로 보입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 모두 이제는 '산업현장에서 그만 죽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되물어야합니다. 법 시행 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하루는 과연 정말로 달라지고 있을까. 어제 숨진 노동자는 과연 중대재해법이 자신을 지켜주는 방파제라고 여겼을까. 숨진 노동자와 그 가족이 되뇔 질문에 쉬이 답하기 어렵습니다.

<참고문헌>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 사고조사보고서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노동재해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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