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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산재 신청하면 다신 조선소에 못 돌아가니까" 숨겨진 산재

중대재해법 시행 한 달, 현장의 목소리 ②

※ 이 취재파일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달을 맞아, 관련 취재를 지속해오고 있는 SBS 산업과학팀 제희원 기자의 취재기입니다. 제희원 기자가 취재 중 들을 수 있었던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 모두 세 편의 취재파일을 통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

울산에 사는 58살 김영희 씨. 지난 10년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와 미포조선소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선박 청소는 배 안에서 수직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각종 용접 부산물과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위험 작업입니다. 1년 전 이맘때 영희 씨에게 사고가 닥쳤습니다.
제희원 취재파일 이미지
"비 오기 전날이었던가…. 청소를 미리 해 놓으라는 지시가 있었어요. (선박) 밑에 바닥이 굴곡져 있는데 거기 청소를 하려고 이렇게 발을 한쪽은 좀 높고, 한쪽은 바닥에 닿은 상태로 거기를 쓸려고 하다가….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어깨가, 그 배 철판에 닿으면서 다친 거예요." - 김영희 씨 / 현대 미포조선 청소노동자

당장 왼쪽 어깨가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지정해 준 병원 진단은 황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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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하청업체마다 지정병원이 있거든요. (의사가) '엑스레이를 찍어 봐도 문제없다.' '타박상이기 때문에 아프다.'고 그래요. MRI 찍은 것도 제대로 판독도 안 해 주고. 집에 와서 눕지도 못하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노조 사무실에 얘기하고 다른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는 뼈가 골절되고 인대, 근육 파열 다 됐다고."

왼쪽 어깨뼈 골절로 응급 수술을 한 영희 씨. 수술 이후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영희 씨에게 '습관성 탈골'이 있었다며, 다쳐서 발생한 산재 승인이 한차례 거절됐고, 이후 영희 씨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간 뒤에야 산재로 인정받았습니다. 사고 이후 석 달이 지나서였습니다.
 

"산재를 산재라 부르지 못하고"

영희 씨는 싸움 끝에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지만, 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공식적인 산재 신청 대신 사업주가 치료 비용을 부담하는 '공상 처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이 선택이지, 사실상 압박받는 일이 다반사랍니다. 위험한 작업에 더 많이 내몰리는 것도, 공상 처리를 더 많이 강요받는 것도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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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앞에 중공업 앞에 쭉 보면 지정 병원들이 있어요. '그냥 타박상이다.' 이렇게 진단을 하고, 조금 더 일주일 2주 정도 더 치료받아보자. 이런 식으로 질질 끌어버립니다. 그러면 인대가 끊어진 경우에라도, 사고성 재해가 아니라 나중에는 근골격계 질환처럼 보이는 거죠. 이걸 근거로 나중에 사업주들은 산재 신청 이유서에 '어디에서 다쳤는지 구분할 수 없다.'고 쓰는 거죠." - 정동석/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장


산업재해를 증명하는 것도 다친 노동자 몫이어서 산재 신청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전히 2인 1조 작업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혼자 작업하는 일이 많고, 이 경우에 다치더라도 목격자가 없어서 다친 노동자가 모든 걸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 제일 힘든 부분이, 하청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하려고 하면 사 측이 '공상 처리해라 모든 거 다 해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공상 처리 이후에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나와서 청소하라'고. 충분히 쉬면서 요양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자꾸 불러내서 일을 시킨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부상이) 걷잡을 수 없게 되죠. 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로 악화되고. 그럼 관리자들이 그걸 빌미로 그 노동자를 퇴사하게 만드는…. 사실상 쫓아내는 격이죠." - 정동석/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장

인터뷰 중에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조합 사무실에는 산재 처리를 묵살당한 노동자 부부가 찾아와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청 노동자일수록 산재 신청이 어려운 이유를 한 노무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청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하면 원청으로 다 보고가 되고, 산재 신청률이 높을수록 이 회사는 재계약에 탈락해 버리니까 어떤 사업주 하청 사업주가 이제 그것을 좋아하겠어요." - 권동희 공인노무사

"낮은 산재재해율-높은 산재사망률'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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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국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도 산업재해율은 낮은데 산재사망률은 높은 수준입니다.(표 참고) 숨기기 어려운 사망사고가 아닌 이상,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크고 작은 산업재해는 여전히 은폐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산재 보상 수준이 높은 나라는 '산재 사망률이 낮고 산업재해율'이 높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더 많은 산재사고를 발굴하고, 다친 노동자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절실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청업체가 위급 사고 직후에도 구급차를 제때 부르지 않거나, 공상 처리 이후 퇴사를 강요하는 일이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산업재해자 10만 명…무너지는 일상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매년 10만 건 안팎의 산업재해가 발생합니다. 2020년 기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자는 108,379명. 중대재해처럼 큰 사고가 아니더라도 일터에서의 부상은 이 각각의 개인의 삶에 큰 타격을 줍니다. 크든 작든 일터에서 다친 사고로 삶의 행로가 달라진 사람이 연간 10만 명이라는 얘기입니다. 앞서 조선소에서 어깨를 다친 영희 씨는 1년째 조선소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계도 막막한 상황입니다. 영희 씨는 끝으로 이런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 직영이냐, 하청이냐에 따라서 우리나라는 너무 차이가 나잖아요. 실제로 일하는 건 저희 하청 직원들이거든요. 직영들은 그만큼 안 하거든요. 그런데 산재 나고 나서도 휴업급여나 산재 승인도 직영하고 너무 차이가 나요. 휴업급여라든가 모든 게…. 저만 그런 게 아니고. 다치고 나면 뒤에 후유증이라든가 그다음에 생계를 유지한다든가 이런 게 되게 어려워요. 먹고사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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