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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중대재해법 한 달…"오늘도 아무 일 없게 해 주세요"

중대재해법 시행 한 달, 현장의 목소리 ①

※ 이 취재파일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달을 맞아, 관련 취재를 지속해오고 있는 SBS 산업과학팀 제희원 기자의 취재기입니다. 제희원 기자가 취재 중 들을 수 있었던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 모두 세 편의 취재파일을 통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일하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기사는 날씨처럼 익숙했습니다. 보도되지 않거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죽음은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겁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대형 산재 사고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요. 부끄럽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건 쉬이 와 닿지 않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눈길이 갔습니다. 돈 벌러 갔다가 어제도 죽고 오늘도 죽고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주 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산업재해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산재공화국'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원청이 관리 감독 신경 쓰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조선소는 '산재 직업병의 백화점'이라고 불릴 만큼 위험 유해 요인이 늘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틀 앞두고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는 또 사망사고가 나기도 했죠.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전하는 분위기는 이렇습니다.


 
" 떠들썩한데 실감을 못 하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이 좀 나아졌다든가 이렇게 느껴야 되는데, 실제 현장은 변한 게 없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지도 않고요. 자기들(경영진)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방법만 찾는 게 뻔히 보이기 때문에…피해가려고만 하죠." - 윤용진 현대중공업 하청노조 사무처장

[취재파일] 중대재해법 한 달, '오늘도 아무 일 없게 해 주세요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5월 만든 '중대재해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작업계획서'(사진)에서 질식사고 예방을 위해 밀폐 공간 출입 전 가스 농도를 측정하게끔 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답니다. 노동조합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안 지켜요. 측정기도 없고 노동조합에서 (사측에) 우리가 측정할 테니까 내놓으라 했더니, 안 준대요. 네. 비싸다고 없다고. (경영진은) 노동자들이 안 지킨다고 하는데 지킬 수 있게 해줘야 지키죠." - 윤용진 현대중공업 하청노조 사무처장

안전 조치를 하면 '시간'을 빼앗기고, 빼앗긴 시간만큼 하청업체가 돈을 받는 시간도 늦어진답니다.
 
"물량팀들은 구조가 어떻냐면, 어떤 블록을 하나 맡으면 그걸 끝내야 돈을 받아요. 즉,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그 돈을 100% 다 받는다고요. 그러면 이 사람들은 안전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일을 빨리 끝내고 싶겠죠. 이런 거를 (사측이) 뻔히 알면서 그 사람한테 일을 주고 있단 말이에요. 작업자가 안전 조치하는 시간을 받는 돈에 다 포함시켜서 준다면 서둘러서 일하거나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하거나 이럴 이유가 없죠. 그런데 일을 못하면 돈을 못 받는 거예요. 아예."
 
 

"노동자들이 안 지킨다고 하는데 지킬 수 있게 해줘야 지키죠"


다른 조선소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배기 설비가 설치는 돼 있죠. 근데 작업장 바깥 10m 정도 떨어진 곳에 형식적으로 설치가 되어 있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작업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배기가 되지가 않고 있는 거죠. 그 근처에 있는 공기만 돌다가 실질적으로 필요한 작업 공간에는 환기가 안 되는 거죠. " - 유최안 거제통영고서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회사는 이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가스농도측정기는 관리감독자에게 지급되어 주기적으로 관리되고 있다(현대중공업)", "회사에 신고했으면 즉각적으로 해결됐을 문제(대우조선해양)"라는 겁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안전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대형 사고가 나면 대대적으로 안전 수칙을 고치고,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하지만 결국 사고의 뿌리인 '다단계 하청' 구조를 손보지 않으면 해결은 요원합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후 전체 사망사고의 74% '50인 미만 사업장'


[취재파일] 중대재해법 한 달, '오늘도 아무 일 없게 해 주세요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자료를 볼까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한 달 동안 42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0명 감소했습니다. 문제는 소규모 사업장입니다. 사망사고 발생 사업장 중 50명 미만 사업장 비중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법 시행 후 발생한 사망사고 35건 중 74.2%(26건), 사망자 42명 중 64.2%(27명)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발생한 사망사고와 사망자수 중 50명 미만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사고 중 61.5%, 사망자 중 61.5%였습니다. 법 제정 당시 50인 미만 사업장은 영세 사업장의 어려움 등을 감안해 적용이 2년 유예됐습니다.



이달 초 시청자가 제보한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공사현장입니다. 지붕 보를 타고 안전모만 쓴 작업자 세 명이 철근을 들고 걸어갑니다. 다른 안전장치는 전혀 없어서 영상만 봐도 상당히 위험해 보이죠. 안형준 전 건축대 건축공학대 교수에게 물어봤습니다. 안 교수는 "영상 속 작업자들은 상당한 숙련공으로 추정되고 안전장치를 맸을 때 불편함 때문에 착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숙련정도는 추정에 불과하고, 미숙련공이 저 작업에 투입됐다면 상당히 사고의 위험이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공정별 세부 안전지침이 없고 그에 따른 안전 교육도 부재한 점도 문제로 지적했는데요. 건설기술교육원 등에서 지금보다 더 세밀한 안전 지침을 만들고 그것을 교육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성문화된 규정 없이도 스스로 안전을 지키려는 문화가 발전한 외국에 비해, 편법과 꼼수가 발달한 우리나라는 더 촘촘한 예방 방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더 이상 목숨을 운에 맡기지 말자"


중대재해법 시행 전후로 경영계와 노동계 양측을 두루 만났습니다. 같은 법을 두고도 '사업주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다', '정작 노동자를 보호해주지 못 한다'며 온도차가 컸습니다. 중소기업에선 대기업처럼 대비하고 싶어도 안전 관리 비용이 기업 살림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했고요. 고용이 불안한 처지일수록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수 없다고 노동자도 하소연했습니다. 중대재해법은 이제 첫 걸음마를 뗐지만 현장에서는 더 세심한 조율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취재파일] 중대재해법 한 달, '오늘도 아무 일 없게 해 주세요

다시 조선소로 돌아가 볼까요. 지난해 말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에겐 안전모에 이름표를 붙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답니다. 안전대책의 하나라면서요. 과로사와 화재 사고가 잇따랐던 쿠팡에서는 작업 중 휴대폰 반입금지 규정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요. 기업들이 안전 관련 예산을 늘리고, 여러 가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해보는 건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나 이름표를 붙이고 휴대전화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위험 작업이 애초에 벌어지지 않는 작업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설령 위험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노동자가 그 일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가 당연해져야합니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이 우리가 만드는 물건보다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때때로 잊는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나, 조선소 노동자>
노동건강연대 기획, <2146, 529-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

( 취재 : 제희원, PD : 김도균, 편집 : 정용희, 스크립터 : 홍준영, 제작 : D콘텐츠기획부 ) 

▶ [취재파일] "산재 신청하면 다신 조선소에 못 돌아가니까" 숨겨진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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