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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KF-21 미사일' 의사결정 갈팡질팡하더니 절차도 오락가락

[취재파일] 'KF-21 미사일' 의사결정 갈팡질팡하더니 절차도 오락가락
▲ 한국형 전투기 KF-21의 비행 가상도

한국형 전투기 KF-21의 '독침' 장거리공대지미사일 개발 주관기관 선정을 놓고 의사결정이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개발 사전 절차도 규정을 넘나들며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장거리공대지가 KF-21의 성패를 가를 무기인 만큼 신중하게 개발 주관기관을 결정해 과묵하게 밀어붙여야 하는데 매 과정이 상식적이지 못합니다.

방사청과 ADD(국방과학연구소)는 2019년부터 업체들과 머리를 맞대 논의한 끝에 KF-21용 장거리공대지의 개발 주관기관을 ADD에서 업체로 전환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방사청은 기자들에게 대대적으로 설명한 뒤 2020년 6월 국방부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공식 보고했고, 국방백서에도 그 취지를 실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아무 말 없이 다시 ADD에 개발을 맡기기로 변심했습니다.

작년에는 10개월 동안 KIDA(한국국방연구원)가 장거리 공대지 체계개발 관련 사타 즉 사업타당성 재검증을 했는데 도중에 사타의 대상이 바뀌는, 규정에도 없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법률적으로 유효한지 모호한 사타 재검증 보고서는 기획재정부와 국방부, 정부 심의 기구 등에 배부됐고 정부 당국자들은 아무런 문제제기도 안 하고 있습니다.

방사청과 ADD가 왜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책을 180도 바꿀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방사청, ADD, 그리고 국방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정책 전환의 절차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니 숨은 의도가 있는지, 공대지미사일은 제대로 나올지 의심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타, 한 적 있었나

정부 과천 청사 내의 방위사업청. KF-21 미사일 관련 사타 재검증을 발주했다.

방사청과 ADD는 KF-21용 장거리공대지의 체계개발 주관기관을 ADD에서 업체로 전환하는 방안을 2020년 6월 방위사업추진위에 보고한 뒤 2021년 2월부터 11월까지 KIDA에 사업타당성 재검증을 맡겼습니다. 앞서 ADD가 체계개발하기로 했을 때 ADD 개발을 상정한 사타 검증은 벌써 몇 년 전에 했고, 업체 주관 개발로 전환해 추진하려니 사업비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에 사타 재검증을 한 것입니다.

사타 재검증에 앞서 거쳐야 하는 사업추진기본전략 수립도 건너뛰었는데 이는 이후 벌어지는 사건에 비하면 애교에 가깝습니다. 먼저 업체 주관 체계개발에 대한 사타 재검증을 하는 도중 방사청과 ADD의 생각이 돌연 바뀌었습니다. KIDA 핵심 관계자는 "업체가 아니라 ADD가 개발하기로 의사결정이 급변하면서 업체 주관 개발 사타가 중단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원래대로 ADD에 개발을 맡긴다면 사업비 증감도 없습니다. 사타 재검증할 이유가 사라진 것입니다. KIDA 핵심 관계자는 "따라서 사타의 기본 요건이 사라졌고 사타는 종료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사타 재검증이 중지된 것인데 방사청은 정상적 절차라는 듯 "완료됐다"고 주장합니다.

이번처럼 사타 도중에 사타의 대상이 바뀐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을까? 방사청에 질의했지만 며칠째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한 보좌관은 "사타 도중에 사타 대상의 변경을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안다", "사타 대상을 바꾸는 것이 말도 안 되기 때문에 별도 규정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사타 재검증 과정이 이 모양이었지만 사타 재검증 보고서는 나왔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방사청이 기각한 업체 주관 개발안을 담을 수도 없고, 몇 년 전에 했던 ADD 주관 개발안을 담을 수도 없습니다. 기이한 보고서입니다. 또 KIDA가 사타에 투자했다는 11개월은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방위사업추진위의 박진호 위원은 "사타 재검증 대상이 바뀌면 사타 재검증 절차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 "방사청과, KIDA는 11개월 사타 기간을 그냥 둠으로써 불필요한 행정력을 낭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타 이전에 벌어진 일들…

작년 10월 서울 아덱스에 KF-21과 타우러스 장거리공대지미사일 개량형 모형이 함께 전시됐다.

장거리공대지미사일 등 일반 무기체계 개발의 주관기관을 ADD에서 업체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다 방사청과 ADD, 업체들이 2019년부터 집중적으로 십수 차례 회의를 열어 장거리공대지 등의 업체 주관 개발을 결정했습니다. 명분은 ADD는 첨단, 비닉(秘匿)에 전념하고, 일반무기체계는 업체에 맡기는 ADD 개혁입니다.

일반 무기체계의 업체 주관 개발안은 국방부 방위사업추진위 보고에 이어 2020년 국방백서 그리고 방사청과 ADD의 국정감사 보고자료에 적시됐습니다. 국방장관, 방사청장, ADD 소장의 여러 연설에도 언급됐습니다. 이와 반대로 장거리공대지 같은 중요 무기는 ADD가 개발해야 돈도 아끼고 전력화 시기도 맞춘다고 주장하는 기사와 기자에 대해 방사청은 언론중재위 제소로 맞섰습니다.

그런데 2021년부터 늦봄 즈음부터 방사청은 자신들이 가짜뉴스라며 제소했던 기사의 논리를 은근슬쩍 자기 것인 양 둔갑시켜 ADD 주관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갈지자 행보를 하다 보니 사타 재검증도 유례없는 변칙으로 진행된 것 같습니다. 사타 재검증 보고서를 받아본 기재부, 국방부 당국자들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눈치챌 만도 한데 별다른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사흘 뒤인 3월 3일 사업분과위라는 무기 개발 관련 정부 기구가 소집됩니다. 지난 17일에 이어 또 장거리공대지의 체계개발안을 다룰 예정입니다. 분과위원들은 눈앞에 있는 사타 재검증 보고서에 위법성은 없는지, 개발 주관 기관은 왜 이렇게 자꾸 바뀌는지 꼭 좀 면밀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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