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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0년 전엔 있었던 시험이 갑자기 없어졌다

지난해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이 팔린 차는 무엇일까요? 도로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톤 트럭 '포터'입니다. 무려 15,805대나 팔렸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싣고 나를 수 있는 짐칸도 넓어 특히 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런데 포터를 비롯한 소형 화물차가 아무런 충돌시험 없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저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정면충돌, 측면충돌 등 충돌 유형을 분류해서 '충돌사고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안전한가?'를 평가하는 게 충돌시험인데, 그동안 시험 대상에서 소형 화물차는 쏙 빠져있었습니다. 포터와 봉고 등 3.5톤 이하 소형 화물차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성 평가조차 거치지 않고 도로를 달렸다는 겁니다. 물론, 처음부터 안전성 평가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러니까 지난 2012년을 마지막으로 아무도 모르게 없어졌습니다.
 

소형 화물차는 안전할까?

 
사실 소형 화물차는 승용차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구조적으로 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게끔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화물차는 일반 승용차와 달리 엔진룸이 운전석 아래에 있습니다. 운전자 다리와 차체 앞부분이 닿는 공간이 상당히 좁죠. 트럭 앞부분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앞서가던 차량과 부딪혀 소형 화물차 앞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진 모습
 
이렇다 보니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그 충격은 고스란히 운전자에게 전달됩니다. 실제로 교통사고 발생 시 소형 화물차 운전자의 사망률(1.92%)과 중상률(6.54%)은 일반 승용차의 사망률(0.8%), 중상률(3.91%)보다 2배 정도 높습니다. 소형 화물차가 위험하단 사실은 통계뿐만 아니라 시험으로도 증명됐습니다. 지난 2009년에 소형 화물차 안전성을 평가한 결과, 4등급이 나왔습니다. 최하 등급이었죠. 취재진이 만난 화물차 기사들도 '화물차는 상당히 위험하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김철래 | 소형 화물차 기사
"무릎을 먼저 우선적으로 다치게 돼 있고요. 그 다음에 사고가 좀 더 심하게 나면 핸들이 가슴 쪽으로 들어와서 가슴, 갈비뼈대나 이런 쪽으로 많이 다치게 (되죠.)"
 
A 씨 ㅣ 소형 화물차 기사
"(소형 화물차는) 앞부분이 없으니까 바로 그냥 밀고 들어갈 거 아니에요? 박아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한테 바로 오지. 솔직히 이야기하면 굉장히 위험한 차죠."
 

'위험성' 알고 있었는데도…

 
이렇게나 위험한데, 소형 화물차 충돌시험은 최근 10년간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지난 2012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져버린 겁니다. 심지어 마지막 충돌시험 대상 모델은 2007년 식이었습니다. 지금 도로를 달리는 소형 화물차들은 아무런 충돌시험 없이 판매된 건데, 정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진 않았습니다.
 
지난 2007년 진행한 충돌 시험 사진
 
국토교통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소형 화물차는 자동차 안전기준에서 규정된 각종 충돌시험에서 면제·제외돼 안전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고 써있습니다. 상당히 위험한데도 충돌시험이 없었단 것, 그리고 개선이 필요하단 것까지 알고 있었지만 10년 내내 바뀐 게 없었던 겁니다.

일주일 전, 국토교통부는 '3.5톤 이하 소형 화물차도 충돌시험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소형 화물차 안전성을 확보하겠다며 대대적으로 홍보도 했습니다. 이제라도 충돌시험 대상에 포함한다니 다행이긴 합니다만, 무언가 찜찜합니다.

국토교통부는 고정벽 정면충돌/변형벽 부분 정면충돌/기둥측면충돌 등 6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충돌시험을 진행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보도자료를 자세히 보면, 정작 평가하는 '충돌 형태'는 6개보다 더 적습니다. 정면과 측면 충돌시험만 진행하고, 변형벽에 부분적으로 정면충돌하는 경우나 75도로 기둥을 측면 충돌하는 경우 등은 아예 평가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즉, 6가지로 나눈 충돌 유형을 나눠놓긴 했지만 실제로 시험에 적용되는 충돌 사례는 더 제한적인 겁니다. 또, 현재 판매하는 차종들은 2년 뒤에나 시험하기로 했습니다.
 
몇 가지 충돌 유형은 아예 빠져있다.
 
늦었지만 충돌 시험을 도입한 건 환영할 일이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구조적으로 사고에 취약하게 만들어진 소형 화물차를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선 충돌 유형을 다양하게 나눠 세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또, 평가 대상 차종도 넓혀가야겠죠. 언젠가 소형 화물차 운전자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끔 안전성 평가는 충분히 이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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